밤 1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책 표지가 신비스럽기도 하고, 책 내용이 인류의 첫 밤을 찾는 것이라고 알고 책을 펼쳤기 때문에,

굉장히 기대가 컸던 책이었다. 이 소설은 낮 1, 2 두 권의 책 다음 편으로 나온 것이라서, 낮 편을 먼저 읽고 밤 편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낮 편을 읽진 않아서 사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조금 헤맸고, 이해 안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쭈욱 읽어나가다 보니 어떤 내용인지 금방 감이 잡혔다. 하지만 역시 낮 편을 먼저 읽고 있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 처음에 약간 지루하고, 몰입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ㅠ_ㅠ

 

 

고고학자와 천체물리학자 커플이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우며,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뒤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흥미로워지며, 과연 마크 레비 작가가 상상한 우리 인류의 기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하고 궁금해지고 단숨에 끝까지 책을 읽게 하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두 권이지만 제법 빠른 시간 안에 책을 읽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떤 점은 1권에서 아드리안과 키이라의 러브 라인이 어떻게 보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낮 편을 읽지 않아서 인 것일까 ㅠㅠ 사랑하는 연인이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인만큼, 그 안에는 러브 스토리가 들어가야 맞겠지만, 그것이 어쩌면 조금 길고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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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팻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표창원 감수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독립 프로파일러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다루는 사건들이 전부 다 실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1990년대~ 2000년도 초반이다. 그래서 지금의 경찰 수사가 어떤지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진 않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술이 보다 진보되었을 뿐. CSI 등의 수사물들을 보면서 과학수사라는 것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내게 팻 브라운은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수사에 혼선을 주는지도 일깨워 주었다. 우선, 경찰 수사는 너무나도 허점이 많다. 정치적 문제의 개입이 있을 것 같으면 수사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리고(설사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더라 할지라도), 형사의 개인적인 가정 문제로 수사가 등한시 될 수도 있으며, 범인이 아닌 자의 거짓 자백을 받기 위해 모든 수사력을 그 한 사람에게 쏟아 붙는다던지, 살인 현장 보존을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살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던지.. 등등 셀 수 없는 경찰 시스템의 문제들을 이 책은 고발한다. 정말 경찰들이, 형사들이, 제대로 사건을 보고 심혈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밝혀 낼 수 있는 범인인데도, 눈 앞에 범인을 두고 기소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몰아 피해자 가족들에게 상처만 준다. 이 책을 읽을 때, 우리 나라 경찰 수사도 미국과 다를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등한시 했던 증거품들 때문에 범인들은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며, 결국 피해자 유족들에겐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수사에 지쳐 프로파일러인 그녀에게 요청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프로파일러인 그녀에게 극소량의 증거만이 넘겨져 재수사에도 어려움이 있게된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러한 답답한 마음이 들 것이며, 경찰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올 것이다. 게다가, 우리 주변에서 싸이코패스들이 쉽게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 끼쳤다.

     아무튼, 그녀가 풀어놓은 생생한 실제 사건들을 흥미진진하며, 우리들에게 많은 바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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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코 가나에의 '고백'을 읽어본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왜 그랬을까. 그렇게 인기가 많던 그 책을 반쯤 읽고 나서 더 이상을 못 읽겠다.. 싶어서 내려놓았었는데. 그런데 그 같은 작가가 쓴 이 '야행관람차'의 경우는 180도 다르다. 한 번 손에 쥐면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작가의 스토리 전개 방식에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언덕 위에 있는 고급 주택가 히바리가오카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놓고 엔도 가족, 다카하시 가족, 사코토 부인의 시점으로 나뉘어져 전개된다. 하지만 단순히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그 살인 사건을 보기 때문에 이 소설이 그토록 중독성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담고 있다.

 

 우선 엔도 가족부터 살펴보자. 무능력한 아버지, 딸의 히스테리를 묵묵히 참고 있는 어머니, 이상할 정도로 광적으로 어머니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딸. 그 어떤 사람 하나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히바리가오카에 세우자고 강한 의견을 피력한 어머니, 마유미. 하지만 그들은 고급 주택가 히바리가오카에는 어울리지 않는 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유미의 남편 게이스케는 마유미가 원하는대로 집을 지어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집을 짓는데 찬성한다. 그 곳으로 이사가고 나서, 아유미는 부모에게  명문 사립 S여고 입시를 권유하지만, 아유미는 떨어지고 만다. 이 때부터일까? 이 가족은 절대로 평범하지 못한 일상을 시작하게 된다. 그 히바리가오카라는 곳으로 이사한 이후부터 말이다. 히바리가오카로 이사오면 본인들의 자식 또한 그 곳에 사는 아이들처럼 특별해질 것 같은 일말의 기대감으로 아유미를 언덕길 병에 걸려버리게 만든 것이다. 모든 것을 마유미의 탓으로 돌리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 또한, 고급 주택가, 즉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 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아유미에게 가져온 열등감때문이다. 엄마가 히바리가오카로 이사오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명문고 입시를 권유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매일 등교를 할 때, 하교를 할 때마다 언덕길 병에 걸린다. 본인이 갈 자리가 아닌데 올라가려고 낑낑대는 모습에 구역질이 나는 걸까.. 아니면 평등하지 않는 사회 구조에 환멸을 느끼는 것일까.

 

 다카하시 가족은 히바리가오카의 품위에 맞는 가족이었다고 사토코는 말한다. 의사 아버지, 아름다운 어머니, 의대생 큰 아들, 아유미가 떨어졌던 명문 S여고에 다니는 히나코,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얼굴 또한 아이돌 순스케를 닮은 막내 아들 신지. 그 누구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화목할 것만 같고 싸울 일은 없을 것만 같던 그 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살인 사건은 오히려 엔도 가족에서 일어나는 게 더 자연스러울텐데도... 바로 이 점에서 야행 관람차는 우리들의 호기심을 일으키고 의외성을 보여준다. 도대체 어쩌다가 저런 완벽한 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걸까? 게다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니!! 이 둘은 재혼했고, 큰 아들(요시유키)와 딸(히나코)는 아버지와 전 아내의 자식들이고, 막내 신지는 재혼한 두 사람의 아들이다. 신지는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를 쏙 빼닳아서 아름다운 얼굴에 운동 신경까지 굉장해 농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어서 말 할 수 없지만 신지의 어머니 또한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 올라가려고 아둥바둥했던 것 같다. 히바리가오카에 살고, 멋진 의사 남편과 하나같이 공부를 잘 하는 자식을 두었음에도, 첫째와 둘째만큼 공부를 잘 하기를 신지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의 아들 또한 전 부인의 자식들만큼 혹은 그 보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아둥바둥 대며 어떻게든 언덕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그 가족 안에서 본인이 부족하다고, 혹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거리에서 히바리가오카의 거의 모든 이야기들을 주워 담는 여자 사토코는 히바리가오카의 상징물이라고 볼 수 있다. 히바리가오카를 일궈왔다고 주장하는 사토코. 그렇기 때문에 히바리가오카의 명예를 실추 시킨 다카하시 가족을 용서할 수가 없게된다. 도대체 그 히바리가오카라는 주택가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권리를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히바리가오카를 일군 그녀이지만, 그녀는 외롭다. 그녀에겐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전화를 걸어도 반기는 기색이 없는 것 같고, 히바리가오카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해도 그 아들은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미나토 가나에 작가가 이야기 해주고 싶었던 것은 물질이 풍요로워도 가족의 유대감과 정신적인 만족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라는 것일까? 사토코 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공통된 점이 발견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들 내외에 전화해 수다스러울 정도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을. 그리고 새벽도 마다하지 않고 전화해 본인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다는 것을. 아마 그녀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이런 그녀가 외롭다는 것은 히바리가오카를 일군 토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는 사람 개개인을 그들이 세운 잣대로 평가한다. 학생은 공부, 혹은 학교.. 직장인들은 돈을 얼마나 벌어오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집은 얼마나 큰지, 몇 평인지.. 얼마나 예쁘고 잘 생겼는지... 수도 없는 평가 기준에 우리는 가끔 엔도 가족의 아유미처럼 현기증이 난 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게 그 잣대에 높은 점수를 받고 싶어 치열하게 언덕을 타고 올라갔었는지도 모른다. 그 언덕에서 떨어졌을 때의 실패감과 열등감 그리고 없어질 것만 같은 자존감은 우리를 공격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이미 언덕 위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이들은 그 곳을 언제나 침범 당할까봐 항상 긴장감을 유지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항상 우러러 보는 그 장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들 또한 그들의 공간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복합적인 감정들은 쌓이고 쌓여 마침내 폭팔하게 되면 살인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들을 침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야행관람차인지 알 것 같다. 소설에서 히바리 가오카에서 언덕을 타고 주욱 내려오면 따뜻한 오렌지 불빛이 감도는 바닷가 근처가 있다. 이 부분은 바로 신지가 묘사했던 것인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어머니의 강요에 언덕 아래에 늘어서 있는 평평한 평지의 평범한 집들의 불빛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마음 또한 편안하게 했을 것이다. 그 곳에 야행관람차가 들어선다ㅡ 

 

 히나코는 신지에게 산의 경치가 좋니, 바다의 경치가 좋니..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신지는 둘 다 보고싶다ㅡ 라고 했었다. 바로 그 바다 근처 부지에 들어설 야행관람차를 타면 둘의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 야행관람차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누가 아래고 누가 위도 아닌 계속 돌고 도는 둥근 모형. 올라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누구와 비교되지 않아도 되는 그 원형의 야행관람차는 히바리가오카도, 그 아래 동네도 굽어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위에서 보면 언덕도 언덕이 아니게 되는 것이고, 아래 동네도 아래 동네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야행관람차가 들어설거야.. 라는 신지의 말은 아마 우리 사회에서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메세지를 담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말정말 재밌고, 생각 또한 많아지게 하는 야행관람차

총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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