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생의 한가운데에서 - 이제 당신을 위해 살아야 할 시간
엘리자베트 슐룸프 지음, 이용숙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우리의 시간은 흘러간다. 읽는 분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식후 양치질하는 순간, 함께 고구마를 캐는 순간, 햇볕쬐러나온 나를 반기는 개를 지켜보는 순간 모두 과거속으로 흘러간다.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인력만큼 무력한 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나온 순간순간이 우리 삶의 일부이기에, 다시 오지 않기에, 뒤돌아보면 매 순간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어찌됐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노년기는 생각지도 못하게 빠르게 찾아온다. 원대한 꿈, 열병을 앓듯 지나가는 사랑을 꿈꾸던 소년소녀들은 어느덧 성년이 되고, 학업 · 연애 · 취업이나 창업을 거치면서 눈깜짝 할 사이에 중년이 된다. 생계활동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어느덧 인생의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여름날의 화려했던 잎사귀는 떨어져나간 뒤 가지는 갈수록 앙상해져가고 볼품없어진다.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한, 나뭇결같은 피부에는 검버섯이 생겨난다. 노년기는 어느날 문득 오는 게 아니라, 점차적으로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마음의 한켠에 놓아둔 거울 속 자기의 모습은 언제나 소년소녀다. 겉과 속의 이 괴리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쯤에는 생을 다할 때가 다가온다.

 

 앞서 말했다시피 노년. 정신을 차릴 때쯤에는 이미 그 속에 발을 푹 담근 뒤다. 그만큼 우리는 노년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다. 요즘 세상에서는 은퇴 후 경제생활을 위해 이런저런 대비를 하라고 재촉한다. 아예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어느날 벼랑끝에서 떠밀리듯, 누구의 관심이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매력이 퇴색한채 주위의 관계망도 상당히 끊어져나간 고독한 노년기에 대한 심리적 준비에 대해서는 관심이 소홀하다.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고, 돈만 있으면 젊은 시절 못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아는 건지.

 

 내 마음은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어도 세상은 내 나이와 내 외모를 보고 판별한다. "젊음을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해도, 노쇠와 죽음이 우리를 덮친다는 사실은 벗어날 수 없다."(p.13)

 더구나 피할 수 없는 노년은 대책없이 길어졌다. 그렇다면 인생의 마무리 시기가 아니라 또 다른 단계인 노년기에 대한 연구가 풍성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빈약했다고 한다. - "거의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한 미국 학자가 인생의 과정 중 중장년 및 노년에 관한 상세한 개념을 개발했다."(p.24) 그러나 "(책을 집필하고 출간하던) 사이에 노년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광범위한 문헌들이 출간되었고, 노년과 관련된 세부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책들도 세상에 많이 나왔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다양한 주제를 다룬 새로운 연구결과를 담은 책들을 끊임없이 읽을 수 있었다.(p.257)

 이러한 혼란과 무지의 허허벌판에서 이 책은 심리적 상담결과를 토대로, 노년기에 대한 지도 역할을 해주려 등장한 듯하다.

 

 전체 3부 가운데 "1부는 나이가 들어가는 일반적인 과정을 정리"했다.

 노년기의 특징,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회적 인식을 이야기한뒤, <늙음을 인식→나이가 들어서도 힘을 주는 근원을 파악→지나온 삶을 검토하고 "남은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대안을 생각하게 하고, 노년이 주는 선물을 언급한다. 

 2부는 "개별적인 테마들을 다루고 있다". 

 즉, 노년기의 성장, 남은 시간, 신체의 변화, 인간관계, 임종과정, 죽음의 수용, 죽음 이후(영성을 중심으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3부는 다양한 삶의 단계와 상황들을 거쳐온 두 여성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p.15) 3부에 등장하는 "두 인물 모두 가공의 인물"이다. 여기서의 주안점은 "젊은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의 일기를 통해 자신이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의 단계를 점점 더 이해하게 되는 것,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p.16)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설명해보지만, 책을 읽어보면 전반적으로 뚜렷하게 세울 수 있는 생각의 구조물이나 손에 잡힐 듯한 체계를 그려내긴 힘들었다.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게 명료하게 드러나지 못한 듯도 하다.

 그것은 아마 이 책의 성격 때문이 아닐런지.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서 뚜렷하고 간명한 메시지를 얻었다기보다, 노년기를 음미하고 심리적으로 준비자세를 취했다고 할지, 여하튼 그랬다. 섣부르게 또 자의적으로 풀이하자면, 책을 읽으며 "노화와 죽음을 품위있게 맞이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게 만드는 것 같다. 더불어, 고정관념처럼 내면화된 노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인간적 가치에 걸맞게 새롭게 정립할 계기를 만들어주는 듯 하다.  

 

 

 책을 읽어가는동안 노년기의 생을 조감하며 많은 상념과 복잡다단한 감정이 찾아들었다. 그렇게 평면적으로만 읽는다면 책에서 노년기를 '잘 보내는' 즉 그런대로 품위를 유지하면서 -남은 시간,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종극을 맞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딱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여기서 딱 한 걸음만이라도 더 나아가본다면 -비록 나는 서두에서 노년을 볼품없이 그렸지만- 인간이 노화와 죽음에 관련한 일반적인 과정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면에서 얼마든지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책의 말미인 '나오며'에서 짧게 이야기하는 바에서 얻을 가능성이 크다. 노년에 대한 인식, 부정적인 자세가 -운동, 성인병 수치, 비만 여부, 금욕생활 등 수명과 관계있다고 보고되는 다른 요인을 제외하고서- 7년 반의 수명을 연장 가부를 결정짓는다는 연구가 그것이다. 

 이 책은 서서히 온도를 높여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죽음을 맞이하라고 조언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기에 2차원적으로만 읽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인다. 

 

 여기까지 말하면, 나같은 사람이 이 책을 집어들어 미리부터 노년기를 염두에 두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핀잔이 이어질지 모른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 당장 내일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극언까지 통용되는 오늘날이기에, 발밑의 돌을 무시하고 멀리 내다본다는 비아냥도 들을 수 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노년기가 인간 누구나에게 다가온다는 엄숙한 사실, 인생의 끝을 생각해보며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며 소중한 것인가를 찾는 것이 후회없는 인생을 사는 최상의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조언만이라도 종합해서 생각해본다면 지금 당장 읽고 숙고하며 인생의 계획을 재점검해보는 것이 누가 뭐래도 필요한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에 있기에.

 

 

 

 

 

 

 

  #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로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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