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세계문학 마음바다 2
조지 오웰 지음, 안경환 옮김 / 홍익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트로츠키 주의자로 볼 수 있는 조지 오웰이, 전체주의 사회로 나아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실체를 통렬하게 꼬집은 소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TV로 방영되기도 했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과 손을 빌려 옮겨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라 긴 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저자인 "오웰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여 러시아어로 팸플릿 형식의 번역본을 대량 제작하여 철의 장막 속에 갇힌 병사들에게 배포하도록 주선했다"고 하니 분량도 어느 정도인지 알 것이다. 

 번역은 비교적 맛깔나게 한 것 같다. 모든 장이 끝난 후 역자가 첨언하는 해설도 내용을 심화해서 읽는데 꽤 도움이 된 듯 하다. - 해설의 내용중 인물에 관한 부분은 10장의 해설 뒤에 '등장인물(사건)과 러시아 역사 대비표'로 깔끔하게 정리해두기도 했다.

 부록인, 오웰의 영문판 서문과 우크라이나판 서문, 에세이 2편도 작품을 심화해서 읽는데 도움을 줬다.

 개인적으로 《조영래 평전》과 이력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역자이기에 '번역자 인터뷰'는 내심 한편으로는 무척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품의 이해를 위하여 풍성한 부록까지 곁들여진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가진 사회주의적 의식의 기반을 추측해보았다. 그는 '모든 인간이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고, 인간적인 권리와 생활을 향유하는 것'과 같은 꿈을 꾸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에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는 어울리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다음으로 사회주의가, 그 다음으로 공산주의로 진행됨은 필연이라 보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역시나 독재의 한 형태임은 분명하며, 영국의 액튼 경의 유명한 경구대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과두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실험한 적 있었다. 문제는 그런 '이상화된 인간'으로만 사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는 데 있다. 따라서 불순하고 탐욕스런 인간들이 언제 어느때나 그러한 이상적 실험을 깨뜨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에 따라 권력을 보유하여 행사하는 조직은 견제와 균형이 없으면, 실제 그 임무와 기능을 수행할 때 오염되거나 변질되기 쉬워진다. 대개 권력이 집중된 조직이 -견제와 같은- 의식적인 개입없이는 시간이 지날 수록 부패하는 현상은 인류 역사에 굳이 비춰보지 않아도 -인간의 본성에 관해 성악설이 아닌, '종합설'의 관점에 서더라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소련이 보여준 것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심화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의 그림을 보고 우리가 꿈꾼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와 반대의 것이었다. 아니, 자본주의 경제체제만도 못한 것이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수십만개라면 하나의 경제체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부품이 있을진대, 선구자인 마르크스가 초안만 잡아놓은 계획을 가지고 그것의 실험에 들어간 결과는 참혹했다. 부족한 장치와 미숙한 작동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 실험의 희생양이 되었다. 피의 숙청과 대규모 기근의 희생자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가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수정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들은 우리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혹자는 절대왕정체제나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체제를 만들어 바꿀 수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역시 '수단'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산주의를 표방하나 실제로는 절대독재정체제 내지 절대과두정체제였던,- 민중을 수탈하고 살해하는 최악의 정치체제를 지닌 소련은 저자 조지 오웰의 이상에 걸맞지 않은 정도를 넘어, 격렬한 비판의식을 가동케 하였던 듯 하다.

 그러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할 당시에는, 나치즘에 물들어 군국주의 국가로 변한 국가 독일의 침략에 맞서 같은 연합군으로 손을 맞잡은 소련에게 지식인이든 그 누구든 비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중잣대로 -인간의 악한 본성과 부패권력집단에 의해 공산주의의 현실적 모습이 최악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 소련을 옹호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더 컸던 듯 하다. 저자는 이에 더 분노했으리라.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서 이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 그렇다고 고전 자본주의가 좋다는 이들도 많지 않으리라.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나마 알려진 체제 중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아닐까. 여기서 좀 더 변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세계 사회가 달라졌으니 이 책은 더 이상 읽어볼 가치가 없고 '한 땐 그랬었지'하는 고전으로 남겨둬야 하는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종막을 내린 지금에도 유효한 것은 -남한에 있어서- 비단 북한정권때문만은 아니리라 본다.

 책을 읽어보면, 결국 민중은 거대 집단적 체제가 수립되어 운용되는 한 피수탈자인 것은 변함없다는 것, 따라서 체제가 변하는 것은 권력층만 변하는 것이지 달라지는 게 없다는 슬픈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의 역사와 닮아있다. 혹자들은 말한다. 왕정에서 일제로, 일제에서 남한이나 북한으로 된 것은 지배층과 수탈 체제가 교묘하게 변한 것이지 민중의 입장에서는 그 구조상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어렸을 적 나의 의식 형성에 영향을 준 《동물농장》을 이 기회에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읽혀져 더 흥미로웠다.  

 어릴 적에는 해피 엔딩이 아니면 불쾌감이 짙었기에 불편했다. 하지만 이젠 문학작품이나 비문학적 표현물에서 비장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거나, 불쾌감의 효용을 인지할 수 있기에, 이 작품의 결말이 딱 적합했다고 본다.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동물농장 속에서, 순수하게 꿈꾸고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복서와 클로버, 스노블을 생각하면 말이다.

 

 

 

 

  #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로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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