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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ㅣ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평점 :
수강생의 후기
이분은, 요즈음 시를 쓰려는 저에게 손수 가르침을 주고 계신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은 시를 쓰려는 사람이 어떻게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몸소 본을 보이십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저는, 선생님 말씀을 단 한 자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항상 연필과 종이를 들고 다녔습니다. 강의가 쉬는 날이면 잘 깎은 연필과 종이를 들고 저물어가는 강에 다녀왔습니다.
수강생의 메모
1.
나의 시는
어느날의 일이고
어느날에 썼다.
<어느날>
2.
먼 훗날
꽃이, 그런 빛깔의 꽃이
풀 그늘 속에 가려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찔레꽃>
3.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는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었다.
<받아쓰다>
4.
새벽에 일어나
시를 쓰고, 쓴 시를 고쳐놓고 나갔다 와서
다시 고치고
베고니아, 아무도 못 본
그 외로움에
나는 물을 주었다.
<베고니아>
5.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살았다.
글을 썼다.
<그동안>
6.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오래 한 생각>
7.
내가
저기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시인>
8.
책을 외상으로 사 들고
서점 문을 나서서
한시간 오십분 동안 완행버스를 타고
책을 보다가
차에서 내려 삼십분 동안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낭만주의 시대>
9.
어제와 오늘 여러가지 일들이
작은 동산의 잎 진 나무들처럼 다가와서
모양 없이 뭉개져 흩어지는 뒤쪽을 나는 돌아보았다.
<익산역>
10.
김제 가서 할머니들에게 강연하였다.
살아온 날들을 확인시켜주었다.
<오래된 손>
11.
한줄의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다른 땅을 밟고 있었다.
<한줄로 살아보라>
12.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13.
내가 산 오늘을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강가>
14.
쓸 때는 정신없어.
써놓고 읽어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시를 썼지?
놀라다가, 며칠 후에 읽어보면
정말 싫다. 사는 것까지 싫어
당장 땅속으로 푹 꺼져버리거나
아무도 안 보는 산 뒤에 가서
천년을 얼어 있는 바위를 보듬고
얼어 죽고 싶다.
<사랑을 모르나보다>
15.
마당에 떨어져 얹힌 감나무 실가지 그림자들을
풀어주고
내 방에
반듯하게 앉아
시를 쓰다.
<포의>
16.
우리들은 마루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어떤 날은 거지가 우리 밥상에 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
<산문>
17.
나는 어제 시를 읽었네.
한편의 희미한 길 같은 시와
애초에 길이 없었던 한편의 시를.
<어제는 시를 읽었네>
수강생의 강의 만족도
5점 / 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