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 특수한 시대의 핵심이었을까? 과감하게 단순화하자면 독서 사회의 한복판에 ‘대중‘이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등장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20세기를 독서의 황금시대로 만든 최대의 사건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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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예가인 마리는 "인간은 생산적이어선 안 돼. 쓰레기나 만들 뿐이니까"라고 말했다. 본인은 실로 아름다운 유리공예품을 만들면서도 이런 말을 한다. "난 불가연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거야." 자각 있는 예술가는 훌륭하다. - P42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사코 씨에게는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닌 듯해서 나는 요리에서 손을 뗐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지만 사사코 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지나치게 많다. 사람 성격은 변하지않는다. 십수 년 전에는 내게 랩 크기랑 자르는 방법, 랩 상자뚜껑 닫는 방법을 지적했다. 알 게 뭐람.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너랑은 같이 못 살겠다." 사사코 씨는 요즘도그 일을 들추며 당시에 몹시 상처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엉덩이 닦는 법까지 지적했다. 비데를 쓸 때 물을 틀기 전에 휴지로 한번 닦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 P45

일을 의뢰받으면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가며 버틴다. 그 전에는 아무리 한가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위장이 뒤집힐 듯 배배 꼬여서 이따금씩 위산이 역류하기도 한다. 몇십 년을 매일같이, 공휴일 명절 할것 없이 뒤틀리는 위장의 재촉을 받으며 내 인생은 끝나리라.
일이 좋다는 사람이 있다면 얼굴 한번 보고 싶다.  - P65

"참나"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자기혐오로 똘똘 뭉쳐 있다.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화나서 내뱉은 말을 스스로가 견딜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성격이 나쁜 인간은 바로 나라는 확신이 들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 P80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셋 중 하나는 암으로 죽는다. 당신들도 시간문제야. 나는 암보다 우울증이 몇 배나 더 힘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몇 배나 더 차가웠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점점없어져갔다.
사람들이 없어지게끔 내가 변하는 것이다. 이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폐인이 되어 몇십 년이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내심 암에 걸린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입밖으로 꺼내면 몇 안 남은 다정한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고 말겠지. 내 우울증은 평생 낫지 않는다. 지금도 앓고 있다. - P112

<친구> <실미도> <엽기적인 그녀> <봄 여름 가을겨울 그리고 봄〉 등의 영화도 보았다. 훌륭하다. 그 나라는 어쩌면 이다지도 정이 두터울까. 그들은 사랑을 믿는다. 일본인은 사랑을 믿으면 촌스럽다고 한다. 영화도 소설도 부유하는 인물뿐이다. 순애보를 비웃는다. - P120

섹스라면 지긋지긋하다. 남편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자기 싫은 것이다. 설령 잔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전개를 꿰뚫어볼 정도의 지혜는 충분히 지녔다. 몸이라면 더 이상 안 써도괜찮다. 귀찮고 성가시다. 하지만 사랑은 받고 싶다. 애정으로한가득 채워지고 싶다. 그것도 두 사람에게 죽도록 사랑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드라마가 이루어지려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섹스 장면이없다. 키스조차 드물다. 얼굴을 맞대고 껴안는 정도가 딱 좋다. 한국 드라마의 남자는 일본 남자라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을 태연하고 당당하게 해치운다. 장미꽃으로 하트를 그리고,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서도 이름을 부르며, 눈이 먼 여자를 위해 목숨을 끊어 자신의 각막을 이식한다.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와 그런 게 바보 같다고 여기는 건 이성이다. 이성은 모순을 허락하지 않지만 감성은 모순의 마그마다. 무엇이든 들어오라. 어서 들어오라. - P135

나는 아줌마다. 아줌마는 자각이 없다. 미처 다 쓰지 못한감정이 있던 자리가 어느새 메말라버렸다는 사실도 눈치채지못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서야 그 빈자리에 감정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 드라마를 몰랐다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브라운관 속 새빨간 거짓말에 이렇게 마음이 충족될 줄몰랐다. 속아도 남는 장사다. - P137

치매에 걸리기 전 엄마는 난폭하고 거친 데다 기운이 넘쳤다. 그때 나는 엄마의 옹고집 때문에 괴로웠다. 엄마가 사람이아닌 존재가 되자, 비로소 엄마를 용서했다. 정상일 때 용서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사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왠지 나만이득을 본 것 같다. - P141

문득 돌아보니 나는 요즘 시대에 완전히 뒤처져 있었다.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나도 끝났다. 이시대에서는 더 이상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이를 어쩌나 하지만 내 심장은 아직까지 움직이고, 낡아빠진 몸으로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 P145

뒤를 돌아보니 전망대 안 통유리 커피숍에서 요즘 젊은 커플이 마주 앉아 데이트를 한다. 우와, 살아 있는 인간이 데이트를 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어쩌면 저리도 더러운지. 갑자기 배설물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특출하게 더러운 인간이다. 이곳에는 번쩍번쩍 빛을 내며 철컥철컥 걸어 다니는 로봇처럼 먹지도 배설하지도 않는 인간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도 없고 분노 같은 감정도 없는, 오로지 기능적으로 반응하는 금색 은색 인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P150

나에게도 이처럼 젊은 시절이 있었던가. 청춘이란 자신의 젊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너도 머지않아 나처럼 되겠지. 아, 고소하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처음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 사람처럼 흥분하며 사랑스러운 침대 위로쓰러졌다. - P151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알고 있었다. 부부생활중 몇십년은 몹시도 괴로우리라는 것을. 하지만 고통스러워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후 때문이다. - P221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수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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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애국자를 자처한다. 중국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애국심은 늘 예술과 예술가를 비판하는 가장 좋은 구실이다. 나는 이것은 진정한 애국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침 튀기는 애국심이거나 애국병일 뿐, 실제로는 인간의 허영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실제 삶에 폐허가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전시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름다운 공원이다. - P132

나는 시종일관 외국 고전문학에 입문할 때는 뒤마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여겨왔다. 책을 읽는 인내심을 기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뒤마는 흡인력이 크므로 그로부터 시작한 뒤 디킨스 같은 작가들을 거쳐 숲보다 무성하고 넓은 문학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후에 독자는 이제 인내심을 가지고 형형색색의 독서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 P152

어제 샤킬 오닐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 녀석은 거친 덩크슛으로 농구대를 무너뜨렸고, 싸움도 많이 하고 스캔들도 적지 않았으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권투 시합에도 나갔다. 별명을 셀 수가 없고, 문제점도 셀 수가 없다. 하지만 못된 행적투성이인 이 자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도 있다. 그런 사람은 아무런 문제점이 없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진 않는다.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과 사귀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 P200

중국이라는 절제 없는 발전이 누군가가했던 말을 생각나게 했다. 자신의 무지를 알면 완전한 무지가 아니다. 완전한 무지는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무지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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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장편소설을 더 쓰고 싶은데, 단편소설을 쓰는 것은 며칠 혹은 한두 주에 완성하는 일종의 일로서, 스토리와 언어를 완전히 자신이 통제하므로 어떤 의외의 것도 출현할 수 없어서이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일 년 혹은 심지어 몇 년에 걸쳐서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고, 창작하는 도중 작중인물의 생활이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 작가 자신의 감정과 생활도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창작 과정에서 원래의 구상은 갑자기 버려지기도하고 다른 새로운 구상이 출현하기도 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마치 생활처럼 뜻하지 않은 것과 정해지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다. 나는 생활이 좋지, 일이 좋지는 않다. 그래서 장편소설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 P60

나는 제재가 다르면 표현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굳게 믿는 까닭에 내 서사 스타일은 늘 변화할 수밖에 없다. - P61

여기서 독서를 할 때 중요한 문제가 부상하는데,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토대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잘못이며, 위대한 독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읽는 것이란 점이다. 그것은 텅빈 마음을 품고 읽는 것으로, 독서 과정에서 마음은 빠르게 풍성해진다. 왜냐하면 문학은 언제나 미완성이고 부조리 서사의 특징도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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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예가인 마리는 "인간은 생산적이어선 안 돼. 쓰레기나 만들 뿐이니까"라고 말했다. 본인은 실로 아름다운 유리공예품을 만들면서도 이런 말을 한다. "난 불가연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거야." 자각 있는 예술가는 훌륭하다. - P42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지만 사사코 씨에게는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지나치게 많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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