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들을 위한 곳이 되어버렸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고 큰 소리로 자기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깊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잘 갈무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섬세하고 진중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루저' 취급을 받고 있다. 내향성/외향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성격의 분류가 아닌 사회적 가치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저자 수전 케인은 외향성이 이상으로 간주되는 현대사회의 모습에 의문을 갖고 내향적 성격이 정말 사회에 부적합하고 해를 끼치는 것인지, 사실은 내향적인 사람들도 외향적인 사람들과 똑같이, 혹은 더 많이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으나 저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파고든다. <콰이어트>는 이러한 저자의 노고의 성과이다. 이 책에서 케인은 최근의 과학적 연구들과 역사적 사례들, 그리고 그녀가 수집한 실제 사실들을 바탕으로 내향적 성격은 외향적 성격과 마찬가지로 사교활동을 하거나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적합하며 외향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간과하거나 실수하는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외향성이 이상적인 성격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도시화 이전 사람들이 대부분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거의 평생 동안 한 지역에서만 살아가던 때에는 오히려 신중하고 절제할 줄 아는 성격, 즉 내향적 성격이 훌륭한 인격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도시화로 인해 인구의 이동이 잦아지고 낯선 사람과 만나 사업을 하고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물건을 팔아야하는 때가 오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는 것은 더 이상 이상적인 소양이 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처음 본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온갖 얘기를 떠들어 댈 수 있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성격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 즉 인격의 시대는 물러가고 성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같이 외향적인 성격이 경제적 능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되는 현대사회에서 낯선 것을 경계하고 차분하게 숙고하기를 좋아하는 내향적 성격은 소심하고, 수동적이며 사회성이 부족한 것으로 폄하된다.


하지만 외향성 이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 예술, 발명품 중 많은 것들이 내향적인 사람들에 의해 탄생한 것임을 상기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외향성을 롤모델로 삼아 외향적 성격에 맞는 활동들, 가령 브레인스토밍이나 열린 사무공간에서의 작업 등이 일의 능률을 높이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창의성을 죽이고 업무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 설명한다. 즉 내향성의 힘이 무시되고 외향성 만능주의가 만연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내향성/외향성이라는 성격이 타고난 기질인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 소개는 매우 흥미롭다. 제롬 케이건 교수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의 연구를 통해 내향성과 외향성의 차이는 외부 자극에 대한 민감도라는 타고난 기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자극에 노출된 아기들 중 자극에 대한 반응이 큰 아기들일수록(예를 들어 자극에 반응해 기운차게 울고 팔다리를 힘껏 휘두른 아기들) 내향적 성격으로 자랄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즉 내향적인 사람들은 주위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극에 둔감한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자극에 대한 노출 정도가 약해야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낯선 환경과 인물을 만나는 것을 더 꺼리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내향성/외향성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생물학적 기질이라고 해서 이를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도(또한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도) 자유의지에 따라 외향적으로(또는 내향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내향적인 사람이 억지로 가짜 외향성을 보이는 것은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고 때에 따라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가짜 외향성을 보여야하는 분야가 자신이 좋아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저자는 이를 핵심 프로젝트라는 단어로 지칭한다) 외향성을 연기하는 일은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핵심 프로젝트에서 외향성(외향적인 사람의 경우 내향성)을 연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 환경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회복 환경은 사교 활동 중간에 화장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직장에서 큰 회의가 잡혀 있을 경우 주말에 사람들 만나는 계획을 취소하기 등에 해당한다.


저자 수전 케인에 따르면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보상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 보상이란 섹스나 초콜릿, 돈과 지위 등을 말한다. 따라서 외향적인 사람은 보상을 얻기 위해 열의에 빠질 때가 많고,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하는 일에 좀 더 열광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광은 경고 신호나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무시하게 만든다. 이것은 결정적인 과오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두려움, 불안, 의심과 같은 경고 신호를 무시하는 태도가 지적되기도 한다. 반면 위험을 꾸준히 회피한 세스 클라먼, 워렌 버핏과 같은 인물들은 2008년 금융시장 붕괴 때도 번창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들의 특성인 두려움, 조심스러움, 의심, 신중함 등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다.


한편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들은 비사교적이다라는 생각 또한 편견이라고 말한다.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교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친밀감을 형성하려는 욕구, 즉 사교성은 내향적인 사람이나 외향적인 사람 모두에게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만 내향적인 사람이 시끌벅적한 파티보다 진지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좋아한다면 외향적인 사람은 사회적 충격(자극)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날 경우 우리는 상대방의 성격과 기질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서로가 공생하며 함께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사람들의 성격을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분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스펙트럼의 양 극단 외에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사람(예를 들어 필자 같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외향성이 롤모델이 되어버린 현재의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성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외향성 이상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사회적 차원의 해법보다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응해 살아갈 것인가 하는 개인적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한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삼분의 일에서 절반가량에 해당할 내향적인 사람들(과 외향적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내향성/외향성의 원인과 특징, 장점과 단점을 이해한 후에 해야 할 일은, 우리사회에서 내향성의 가치가 존중받고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함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저자의 다음 책은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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