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긍지>를 읽고,
“서정 속에 감춰진 다채로운 고독”
콜레트의 <슬픔의 긍지>는 깊은 내면의 이야기와 섬세한 문체가 돋보이는 산문집이다. 첫 번째 「포도 덩굴손」에서 시작된 자연의 감각적 묘사는 마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도 독자는 이 작품에 감춰진 내면의 갈등을 금세 감지할 수 있다. 첫 산문 「포도 덩굴손」은 포도 덩굴이 자라는 동안 잠들지 않겠다는 듯, 밤새 노래하는 밤꾀꼬리처럼, 콜레트의 내면의 문을 연다. 내가 독자로서 걱정되는 건, 처음 「포도 덩굴손」만 보고, 이 책을 섣불리 판단할까 봐, 이 글을 쓴다. <슬픔의 긍지>는 생각보다 매우 ‘다채로운 콜레트의 글쓰기’로 가득 차 있다.
“넌 내게 발톱 없는 꽃들을 주었어”
-<슬픔의 긍지> 「하얀 밤」 중에서
관능과 욕망의 공간을 상징하는 침대는 감정과 욕망을 깊이 들여다보는 장소로 변모한다. “발톱 없는 꽃”이라는 표현처럼, 「하얀 밤」는 그 어떤 공격성도 없이 온화한 사람과의 순수한 밀애를 그린다. 야한 단어 하나 없이 어쩜 이렇게 물감이 물에 퍼지듯 썼을까 하고 감탄했다.
「흐린 날」이라는 산문은 마치 콜레트의 페이스북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일기 같으면서도 그녀의 다짐이 담긴 글이었다. 처음에는 담요로 자신을 감싸달라고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담요를 짓누르는 억압으로 느껴 벗어던지고자 하는 구절이 나온다. 히스테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보호를 원하다가 결국 그것이 자신을 억압한다고 느껴 벗어던지려는 자유의 갈망처럼 느껴졌다. 영화 『콜레트』를 보고 이 책을 읽으니, 그녀의 첫 번째 남편, 그녀에게 심한 가스라이팅을 하던 ‘윌리’라는 작자가 떠올랐다.
내용은 연륜이 느껴지는데 문체는 스레드인 산문도 있었다. 「마지막 불」에서는 불의 시각과 촉각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불나방 같은 사랑이 나른한 목신의 오후처럼 꺼져가는 순간을 슬픔이 아닌 수용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책 중반부에 나오는 「사랑」, 「어떤 꿈」, 그리고 「토비, 개가 말하다」에서는 개와 고양이의 대화를 통해 콜레트의 솔직하고 다중적인 내면을 드러낸다. 이 산문들은 위트가 있고 희곡적 성격을 띠며, 마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느껴진다. 특히 「토비, 개가 말하다」에서는 “슬픔”과 “긍지”라는 단어를 불독인 토비가 직접 말한다.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화장」과 「나팔꽃」이었다. 화장을 통해 변하지 않는 외모를 유지하려는 욕망은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를 직시하게 한다. 이러한 모순적인 욕망이 불러오는 내적 갈등을 그녀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삶의 무상함도 함께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작품은 「나팔꽃」이었다. 콜레트는 말벌이 꿀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친구가 티타임에 찾아온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더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린다. 남친 말로는, 화장하고 가짜 머리를 붙인 여성보다 있는 그대로를 원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성의 놀라운 허영, 맹목적인 오만,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남자를 만족시키려 드는 그들의 우매한 자만”이라고. 그런데 콜레트는 속으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콜레트가 공감해 주지 않자, 그녀는 실망한 듯했으나, 남친에게 다시 연락이 올 것이라고 말하니, 희망에 찬 모습으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 이 이야기에는 ‘나팔꽃’이 언급되지 않지만, 제목은 “나팔꽃”이다. 이것이 콜레트만의 흥미로운 시적 도약이며, 이 산문 말고도 곳곳에 상징이 숨겨져 있다. 나팔꽃은 아침에 피고 해가 지면 금방 시드는 꽃이다.
「어떻게 보일까?」에서도 「나팔꽃」에 등장했던 친구 발랑틴이 다시 등장한다. 그녀는 사회적 기대와 자신의 외적 평가에 매우 신경을 쓰고, 사교적 언변에 능하다. 그런 그녀를 맞춰주며 느끼는 콜레트의 생각을 담은 글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의 「쏨므 만에서」, 그녀의 풍경 묘사가 절정을 이루고, 「뮤직홀」에서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예술가들의 일상적 삶을 냉정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하며 책이 마무리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추천사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처음엔 와닿지 않았던 강정의 문장들이 이제야 한올 한올 직조되어, 그 형상을 드러내는 기분이 들었다.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내면의 섬세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낭독하기 참 좋은 책’이다. 당신만의 슬픔의 긍지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분명하고 날카롭게 나 자신을 기억해요.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우수와 함께요.”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