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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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대표작이자 <철학적 콩트>라는 독특한 특색을 가진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생각보다 얇고, 술술 읽히고, 재미있는 막장 블랙 코미디와 같다. 책을 든 채로 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지만 어이없어하며, 주인공 캉디드(candide : 천진한, 솔직담백한, 순진한)와 그의 스승 낙관주의자 팡글로스(Pangloss : 모든 혀/언어, 수다) 둘 모두에게 분통을 터트리며 훌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웃기고 당황스러운 인물들의 행태를 가볍게 즐기기에는 배경이 너무 처참하다. 일종의 지옥도와 다름없다. 중간에 잠시 모든 것이 완벽한 지상 낙원 엘도라도도 등장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당시의 유럽 각국의 상황, 가치관과 종교를 실랄하게 풍자하고 있으므로, 엘도라도를 빼고 전부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는 지점이다.

 

아마도 많이 알면 알수록 이 책은 더 재미있게, 더 실랄하게 와닿지 않을까? 재밌게 읽고 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유는, 뭐든지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내가 알듯 말듯하고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캉디드가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자꾸만 책장을 넘겨서 그런 듯 하다. 뒷이야기가 아무리 궁금해도 팡글로스의 어원을 찾아보고, 누구를 풍자한 것인지 서칭하고, 리스본 지진(1775년)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마, 더 깊이 더 많이 찾아볼 수록 캉디드는 양파처럼 계속 다른 면을 보여줄 듯 하다.




캉디드가 맞딱드린 전쟁과 자연재해, 인간의 악랄한 면, 여성과 약자의 착취 등의 상황은 현재에도 변주되는 일이다. 따라서 소설 속 캉디드의 소뒷걸음질 치는 듯한 선택과, 스승 팡클로스의 대책없는 낙관주의는 우스운 코미디로 볼 수 만도 없다. 주변 인물들의 약아보이는 선택도 그들을 제대로 구제하지는 못한다. 서로에게 은인이 되기도, 유용한 방법을 제안할 때도 있지만, 세상사 많은 풍파 속에서 어떠한 선택도 임시방편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철학적 교훈을 주고자 하는 친절한 책이기에 후반부로 갈 수록 해결책을 내어준다.

 

심하게 딱하고 원래로서는 10페이지도 못되어 죽고도 남았을 캉디드는 모든 상황에서도 주인공 버프를 제대로 받아 살아남는데, 소설속 캉디드가 진화하여 계몽주의 시대의 가르침을 주창하기에 이른 것은 차라리 감동스럽다. 우습고도 잔혹한 코미디를 읽다보면 신분제도 웃기고, 종교의 신봉이 얼마나 위험한지, 낙관주의도 참 말도 안된다고 생각될 뿐더러,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 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계몽주의의 철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책이다.




18세기는 볼테르의 시대, 프랑스는 볼테르의 나라라고 하는 만큼, 볼테르를 환호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분명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조금은 빛바랜 가르침일 지라도, 이에 이르는 과정을 한 편의 철학적 풍자 소설로 읽는 경험은 짜릿했다. 배경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채로 한 번 읽어서는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굵직한 사건들과 풍자의 강렬함을 남긴 작품이라, 자주 꺼내어 음미하게 될 듯 하다.

 

잔혹한 세상에 필요한 가치관을 점검해 볼 수 있었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재미있는 콩트로 깊은 생각을 하며, 더불어 배경지식도 무한히 넓히고 싶은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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