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세트 - 전3권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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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작가, 그리고 현재를 모두 고심한 번역이 좋습니다. 특히 제인 오스틴에 관한 번역가의 에세이 『디어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의 세계를 더욱 폭넓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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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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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간단후쿠』 김숨 / 민음사


『간단후쿠』는 김숨이 지난 10년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써왔던 것들의 체화이다. 10년간 많은 것을 보고 들은 눈과 귀는 많은 글자를 토해내고 싶었을 거다. 그럼에도 그 중 고르고 고른 절제 된 언어로 김숨은 모든 것을 보여준다.

김숨은 요코가 되어, 간단후쿠가 되어, 귀리죽이 되어, 조센삐가 되어, 나를 잊어버리는 병에 걸려 그것 말고는 무엇도 아닌 채로 강물에 편지를 흘려보내고, 집 주소도 없는 편지를 땅에다 쓰고, 지우개 손으로 지평선을 지우고, 돌림노래를 부르고, 수건 떨구기 놀이를 하고, 널뛰기 놀이를 하고, 나나코 되기 놀이를 하며 만주의 바늘 장수를 기다린다. 그러나 결코 개나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오토상은, 요코의 집도 모르는 오토상은, 요코의 진짜 이름도 모르는 오토상은, 요코를 개나리의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나도 요코가 되어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요코가 감각하는 것을 나도 함께 감각한다. 분절 되어있는 김숨의 시적 언어는 요코를 체화하지 않고서는 쓸 수도, 읽어 낼 수도 없는 글인 것만 같다. 이 정도는 돼야 체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분절, 시상의 연결. 함축적이고 담담한 어조가 모두 시적이어서 더 슬퍼서 나는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 요코를 놓지 못했다.


목차 역시 돌림노래처럼 옆으로 흐른다. 돌림노래가 끝이 없는 것은 여기가 끝났나 싶으면 저기에서 계속되고, 저기가 끝났나 싶으면 또 여기에서 계속되기 때문이다. 노래는 왜 계속될까. 그 누구도 어디에서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꽃을 따던 소녀는 전쟁터로 끌려가고, 옳게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군인이 되고, 옳게 태어난 여자아이들은 조센삐가 되고, 소년들은 소녀들을 ‘세에후쿠(정복)’하고, 무덤이 된 땅은 그들을 품고 다시 꽃을 피운다. 그러나 이러한 유기적 연결은 마치 자연의 섭리인양,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기를 바라고,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라고, 전쟁통에서 돈 벌기를 원하고, 굶주림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 여자아이들을 팔고, 콩알만 한 참새의 살을 먹는다.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순환은 노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의 꽃->어린 소녀들->젊은 남자들->군인->무덤->꽃의 반복을 연상시킨다. 군인들의 달밤의 줄서기는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해 강강술래가 되지 못하지만, 위와 같은 순환은 원을 이루어 강강술래가 된다. 바야흐로 모든 군인이 죽고, 이윽고 전쟁이 끝나야 비소로 끝이 나는 돌림노래와 함께.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랜 시간 지나.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아주 오래전에.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린 여자아이들이 모두 꺾어 갔지.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어린 여자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랜 시간 지나.
어린 여자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아주 오래전에.
어린 여자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젊은 남자들에게 갔지.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랜 시간 지나.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아주 오래전에.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군인이 되었지.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군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랜 시간 지나.
군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아주 오래전에.
군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무덤으로 갔지.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무덤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랜 시간 지나.
무덤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아주 오래전에.
무덤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모두 꽃이 되었지.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


“무지와 무사유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듣기의 시간은 계속돼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직접 듣지 못한다면 적어도 계속 읽기라도 해야 한다. “여전히 곳곳에 있”는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과 학살” 들을 언제 끝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아직도 돌림노래처럼 부르고 있는거라면,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대체 언제쯤 깨달을까(when will they ever learn).”


어스름도 지평선을 덮지 못한다. 밤도 지평선을 지우지 못한다. 눈을 못 뜰 만큼 매서운 바람도 지평선을 날려 버리지 못한다. 폭설도 지평선을 덮지 못한다. 종일 퍼붓는 장맛비도 지평선을 쓸어 버리지 못한다. 한여름 한낮의 해도 지평선을 태우지 못한다. 오줌을 누자마자 고드름이 돼 매달리는 추위도 지평선을 얼리지 못한다.
군인들은 지평선 너머에서 온다. 지평선을 밟고 올라서서 떠밀고 떠밀리며. (p.23)

나는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됐으니까. 군인도 군복을 입고 군인이 된 걸까.

사쿠라코 언니의 남편이 그녀를 판 건 여자애들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읍내 국숫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사내나 오토상처럼. 여자애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있는 건 여자애들을 ‘세에후쿠’하고 싶어 하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을 세에후쿠하는 것은 닭장 속 닭을 세에후쿠하는 것보다 쉽다. 여자애들은 담요 위에 깃털이 뽑힌 닭처럼 누워 있다. 그런데도 군인들은 만주 땅을 세에후쿠한 것처럼 우쭐해한다. (p.162)

군인들이 스즈랑 마당에서 왁자지껄 벌이는 ‘달밤의 줄서기’는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해 강강술래가 되지 못한다. (p.44)

군인들은 요시에를 번개처럼 들어 트럭으로 던져졌다. 금방 딴 목화 솜 꽃을 손에 든 그녀가 들어 올려질 때 엄마는 그녀의 발을 재빨리 붙잡았다. 그러나 친척 아저씨가 휘두르는 팔에 떠밀린 엄마는 요시에의 발에서 벗겨진 고무신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목화 솜꽃 대신 눈발이 날리는 만주에서 요시에를 기다리던 것은 ‘양철 오리 주둥이’를 손에 들고 전봇대처럼 서 있는 간호사였다. (p.59)


몸이 없어지면 몸에서 놓여날 수 있으려나. (p.119)

스즈랑에서는 여자애가 여자애를 때린다. 레이코 언니가 손바닥으로 내 뺨을 때릴 때 그녀의 얼굴은 화가 난 군인의 얼굴 같았다. 기분이 이상하다. 군인에게 맞았을 때보다 덜 아프다. 오토상에게 맞았을 때보다 덜 화가 난다. 그런데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을 만큼 서럽고 슬프다.

레이코 언니에게 양 뺨을 얻어 맞으니 몸을 더 없애고 싶다.
몸이 없으면, 그래서 입이 없으면, 배고픈 것도 모르겠지.
몸이 없으면, 그래서 얼굴이 없으면, 내 얼굴이 엄마 얼굴보다 늙은 것도 모르겠지.
몸이 없으면, 간단후쿠를 입지 않아도 되고 군인들을 데리고 자지 않아도 될 텐데.
몸이 없으면, 트럭으로 기차로 날 던지지 못했을 텐데.
하지만 몸이 없으면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몸 없이 집에 어찌어찌 돌아간다 해도, 내가 돌아온 걸 엄마나 동생들이 모른다. (p.121)

하나코 언니는 본다는 것이 뭔지 모른다. 모르지만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말을 스즈랑의 어떤 여자애보다 많이 한다.
스즈랑의 여자애가 되고 그녀는 엄마가 보고 싶다. 아버지와 동생들이 보고 싶다. 스즈랑의 여자애가 되기 전까지 그녀는 하늘, 나무, 구름, 치자처럼 향기 나는 꽃, 나비, 눈송이, 까치, 참새...... 그런 것들이 보고 싶었다.
그녀가 고향 집에서 중얼거리던 ‘보고 싶어.’와 스즈랑에서 중얼거리는 ‘보고 싶어.’는 다른 말이다. 앞의 ‘보고 싶어.’에는 눈이 멀어 태어났다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뒤의 ‘보고 싶어.’에는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p.131)


전투에서 여러 번 살아 돌아온 군인의 모습이 전쟁의 모습일까.
단골처럼 나를 찾아오던 군인이 있었다.
처음 날 찾아왔을 때 그 군인은 지나가다 ‘길을 물으려’ 내 방에 든 사람처럼 굴었다. 쑥스러워하며 꾸벅 인사를 해 온 뒤 공손히 내 몸에 다녀갔다.
두 번째 찾아왔을 때는 ‘지나가다 목이 몹시 말라 냉수를 한 잔 얻어 마시러’ 내 방에 든 사람 같았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황급히 내 몸에 다녀갔다.
세 번째 찾아왔을 때는 ‘도둑맞은 닭이나 염소를 되찾으러’ 내 방에 든 사람 같았다.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내 몸에 다녀갔다.
한참이 지나 다시 찾아온 군인은 내가 ‘바람나 자식새끼를 내팽개치고 집 나간 마누라’라도 되는 듯 날 목 졸라 죽이려고 했다.
나도 전쟁의 모습일까. (p.142)


아버지가 머슴살이를 하러 집을 떠나기 전이었다. 어린 자식들이 분홍빛 입을 한껏 벌리고 배고프다고 배고프다고 배고파 죽겠다고 징징거리자, 아버지는 부엌으로 들어가 광주리를 가지고 나왔다. 싸릿대로 짠 광주리에 실을 잇고, 광주리 밑에 보리쌀 여남은 알을 놓아두고 참새를 기다렷다. 참새가 보리쌀을 먹으려 날아들자 재빠르게 실을 놓았다. 실에 강겨져 하현달처럼 떠 있던 광주리가 땅에 떨어지며 참새가 그 안에 갇혔다. 광주리를 덫 삼고 보리쌀을 미끼삼아 잡은 참새 네 마리를 아버지는 한 마리 한 마리 모가지를 비틀어 죽였다. 두 다리를 쭉 뻗고 죽은 참새들을 팓대에 놓은 불에 구워 자식들 손에 들려주었다. 나는 참새의 다리에 붙어 있던 콩알만 한 살점을 떼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훌쩍거렸다. 참새가 불쌍해서. (p.260)

오토상은 내가 계속 군인을 데리고 자게 한다. 열에 둘은 내가 아기 가진 걸 모르고 달려든다. 열에 셋은 내 부른 배를 보고는 재수 없어 하며 나가 버린다. 열에 넷은 화를 내며 내 발이나 종아리에 발길질을 한다. “가와이소다(불쌍하네).”
가와이소다는 나쁜 말이다. 그건 아리가토고자이마스보다 훨씬 나쁜 말이다. (p.263)

작가의 말
무지와 무사유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듣기의 시간은 계속돼야 한다. 내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누군가의 ‘있음’에 아지랑이만 한 상처라도 남기는 일이 없도록. (p.290)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과 학살.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된 소녀들은 여전히 곳곳에 있다.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을 뿐.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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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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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의 시작.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시리즈로 잘 읽어나갈게요. 만듦새도 통일성이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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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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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 기무라 류노스케는 도쿄대학 영미문학 전공으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한 연출가이다. 셰익스피어 전문 창작 집단을 설립하여 그의 작품을 연출했던 경험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셰익스피어 하면 그의 ‘말’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직접 극을 연출했던 사람으로서 이를 매우 실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약강 5보격 (iambic pentameter) 운율과 동음이의어(homonym)와 말장난(punning),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을 쓰면서 나타나는 리듬감 등을 자국의 언어로도 의미가 있게 번역하고, 발화하고,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엄청난 고뇌의 연속일 것 같다.

저자는 책을 프롤로그와 마치 연극과 같은 5막,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하였다. 작가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1막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말, 2막은 그의 이야기, 3막은 낭독하는 셰익스피어, 4막은 극 연출, 5막은 시대를 초월한 공감, 번외편으로 번역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현대의 독자들은 재미 삼아 부록에 실린 ‘성격유형별 추천 작품’을 따라 읽어 나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유희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1막 <말의 시간>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문장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외 수업 <번역의 시간>에서는 원문, 직역, 번역을 비교하면서 일본에서의 극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은 후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연극을 재관람했는데, 책 속의 문장들을 연극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연극을 연출자의 시점으로도 한 번 바라보게 되었다. 작년에 관람했던 <햄릿>과 <맥베스>의 장면들도 이 책을 통해 되새겨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를 혹은 그의 작품과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연극과 함께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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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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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유시민⎥웅진지식하우스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이야기하는 글이다. 이 책은 유시민이 청춘 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30년이 지난 후 다시 읽고 쓴 글들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책들을 읽고 생각했다는 사실도 물론 놀라웠지만, 나는 30년이 지나 다시 읽고 새롭게 느꼈을 그의 내면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런데도 이토록 다르게 읽히다니 (p.139)”

우리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을 때, 처음 보는 듯한 문장들을 마주할 때가 많지 않은가. 전에 밑줄 긋고 별 표시를 했던 부분은 대체 왜 그렇게 좋았었는지 모르겠고, 인생 경험과 세상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나서야 그게 이런 뜻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문장들도 있다. 유시민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것은 문명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위대한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위대한 책을 남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책들에 기대어 나름의 행로를 걸었던 나 자신과 그 과정에서 내가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 삶에 길고 뚜렷한 흔적을 남겼던 이 책들은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 내가 들었던 것과는 무척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독자도 같은 책을 두 번 읽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p.9)

이 말에 나는 백 번 동의한다. 같은 책이지만 독자의 시선이 달라지면 그것은 완벽히 다른 책으로 읽힌다. 나는 고전의 경우 10년마다 한 번씩 다시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혹은 수십 년 동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종종 내가 바뀌고, 때로는 세상이 바뀌기도 한다. 10년마다 작가들과 토론 하는 기분으로 책을 다시 읽는다. 그러면 그 책은 저자가 말했듯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p.349)줄 것이다. 나에겐 어떤 책이 그러했는지 가만히 목록을 작성해 본다.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때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문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지점이 있다. 소개하는 책 자체가 월등히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저자의 설명이 너무도 맛깔나고 책의 논점을 정확히 짚어주는 경우여서 그렇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책을 사게 만드는 책이라면 내 기준에는 인상 깊은 책이 된다. 『청춘의 독서』에는 내가 읽어본 책들도 있고, 읽어보지 못한 책들도 다수 등장한다. 유시민 작가의 글을 읽고 나서 새로 구매하게 된 책들이 있다. 또 책탑이 쌓인다.

📖 ‘만약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악덕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악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사회악을 완화하거나 종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와 벌』은 내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떠난 독서와 사색, 행동과 성찰,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p.22)

📖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글을 다시 읽으니 선생이 내게 묻는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p.51)

📖 푸시킨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든, 누군가의 시가 다른 시대 다른 민족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p.99)

📖 처음 맹자를 읽었을 때도 이 말들은 거기 있었다. 나는 분명 그것을 읽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공자님 말씀, 맹자님 말씀‘이었을 뿐이다. (...)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자유론을 다르게 평가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내 생각이 적지 않게 달라졌다. 한국 사회도 대통령이 만사를 결정하고 명령하는 수직적 ‘병영 사회’에서 만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수평적 ‘광장 사회’로 진화했다. 세계 질서와 인류 문명도 바뀌었다.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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