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테리 이글턴 지음, 정영목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극>

테리 이글턴 /을유문화사


이 책은 비평서이기 때문에 언급된 작품들을 다 알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하물며 어떤 한 시대도 아닌,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에 이르는 비극의 예술적, 철학적, 윤리적, 정치적 흐름의 모든 것을 훑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바는 확고하다. 나는 <비극>이 현대에 가지는 의미와 그것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에 방점을 찍고 읽었다.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철학자는 단연 니체이다. 그 다음은 헤겔, 자크 라캉, 소포클레스, 쇼펜하우어, 칸트, 플라톤 등이고 작품은 <오이디푸스>, 작가로는 셰익스피어와 입센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저자는 왜 이토록 많은 지식들을 나열했을까?


이글턴은 비극은 “위대한 예술과 가장 근본적인 도덕적. 정치적 쟁점들이 긴밀하게 맞물린 곳”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가 역사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비극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시도이며 그것은 결국 이 책이 독자들뿐아니라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현실의 비극과 예술적 형태의 비극을 구분한다.


고전적 관점에서 실생활의 참사는 날것 그대로의 고난의 문제이기 때문에 비극적이지 않다. 그런 고난이 예술에 의해 형태가 잡히고 거리가 두어져 어떤 더 깊은 의미가 풀려나올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본격적으로 비극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비극적 예술은 견딜 수 없는 것을 제시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에게 그 견딜 수 없는 것에 관해 사유하고 그것을 기리고 그것을 기억하고 원인을 조사하고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그 경험을 일상생활로 흡수하고 그 공포에 의지하여 우리 자신의 약점이나 필멸성과 마주하고 또 가능하다면 그 핵심에서 어떤 잠정적인 긍정의 순간을 발견하도록 권유한다. (p.23-24)


하지만 현대의 삶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겪으면서 영웅적 서사의 비극적 운명이 아닌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며 딜레마들로 가득하다. 자유주의 사회는 “자기를 완성할 권리”가 절대적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아직 전통적인 윤리를 거부할 수 없다. 사회적 이데올로기나 윤리가 나 자신이 되는 것을 방해할 때, 사회의 선이 나의 선과 충돌할 때,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대치될 때. 우리의 비극은 영웅의 운명에 비해 하찮게 여겨지는 이중비극의 고뇌를 야기한다. 때문에 현대의 우리에게는 비극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비극적 주인공의 자격은 무엇인가?


비극적 주인공으로 자격을 갖추기 위해 궁지에 처한 인간이기만 하면 된다. 고결할 필요도 없다. 그런 비참한 상황을 맞이해도 싸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만 고결하면 된다. 비극은,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빌리면, 위대한 불행의 우화다. (p.48)


그리고 비극의 역할은 “실존의 잔혹이나 부조리에 관한 이런 구역질 나는 생각들을 감당하며 살 수 있는 관념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이글턴은 “세계는 그렇고 그런 환각일지도 모르지만 예술 (특히 비극)은 구원적 환각”이라고 이야기한다. 니체 또한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진리 때문에 소멸할지도 모른다. 비극은 카타르시스라기보다는 영적 치료제다.”라고 주장했다.


비극적인 것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결국은 복구가 불가능한 공격을 맞이한 사람, 결국은 대립물의 통일로 환원될 수 없는 갈등에 사로잡힌 모든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다 그것은 위로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존중하지 않는다. (p.248)


책의 마지막 문장은 근대 비극 예술의 한계와 그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결국 현대의 일상의 비극을 현대 예술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찾아 고전에 다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 문장은 왜 비극은 죽었다고 이야기하는지 그의 첫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에 충분하다.



이글턴이 설명한 것처럼, 비극 예술은, 바로 지금 그 죽음을 맞았고, 비극의 근친상간적 특성에 따라 그것이 진실이자 환각이며, 눈이 멀게 됨에 따라 현실을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의 이행에 따라 비극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반대로 재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즉 비극은 비극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종류의 자기 이해‘를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비극 예술은 비극적 삶 속의 위로할 수 없는 자들을 구원적 환각을 통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루스트의 질문
이화열 편역 / 앤의서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앤의서재에서 출간 된 <<프루스트의 질문>>은 프루스트가 어느 질문 게임에 적은 답들이 적힌 노트이다. 어릴 때 재미 삼아 했던 앙케이트 처럼 단순하지만 철학적인 질문들을 만난다. 독자들은 '나'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적어 내려가며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887년 어느 날, 프루스트의 학급 동료인 앙투아네트 포르가 가정교사로부터 아라베스크 무늬가 박힌 작고 빨간 가죽 앨범을 선물 받는다. 프루스트는 친구 앙투아네트가 가져온 ‘고백Confessions’이라는 글자가 찍힌 앨범의 질문들에 조심스럽게 답을 적는다.


<<프루스트의 질문>>에 적힌 질문들을 따라 지난 일주일간 적어내려간 나의 대답들을 함께 올려본다. 답을 적을 당시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솔직하게 답을 하다보니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만의 답을 쓰게된다.



 








나의 답뿐 아니라 푸르스트가 직접 달았던 답과 유명 인사들이 답을 한 것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어떤 질문에는 짧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느껴지는 답을 목격하기도 한다.

Q18. 가장 큰 비참함은?
A : 두려움 속에 사는 것 (데이비드 보위)
A : 인종차별과 빈곤 (레이 찰스)

프루스트는 23번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Q23. 당신의 가장 결정적인 단점은?
A:무지, 원하지 못하는 것.

프루스트의 작품들을 읽으며 그의 예술에 대한 조예와 사회 현상들에 대한 관심, 연구에 감탄을 했었는데 자신이 꼽은 단점이 ‘무지’라니. 그리고 그토록 많이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던 작가가 ‘원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답을 적었다니. “작품과 작가를 동일시 하지 말라”고 했던 프루스트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실로 많은 것을 욕망하면서도 실제로는 마음 놓고 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두 가지 반대되는 질문에 같은 답을 달아놓은 움베르토 에코의 그것도 인상 깊다. 그에게 정적은 때로는 가장 편한 상태이기도, 때로는 가장 불편한 상태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질문과 답을 보며 삶의 다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Q32. 가장 좋아하는 소리, 소음은?
Q33. 가장 싫어하는 소리, 소음은?
A : 정적




단순하지만, 평소에 스스로 생각해보거나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오가기 어려운 질문들을 마주하며 독자들은 현재 자신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새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다이어리 북은 같은 질문에 여러 번 답을 기록할 수 있게 구성되어있다. 몇년 후에 다시 펼쳐 내가 남겼던 답을 읽어보고, 그 아래에 또 새로운 답을 적어 본다면 부제 <감정과 취향의 보관 앨범>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솔직한 감정과 취향이 차곡차곡 쌓여 소중한 한 권의 앨범이 될 것이다.

1년 후, 5년 후의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책장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펼쳐보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라큘라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브램 스토커 지음, 진영인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 윌북

"우리 집에 온 것을 환영하오. 자유로이 들어왔다가 안전히 돌아가시오. 당신이 안고 온 행복을 조금만 남겨놓고 가면 좋겠소."(p.38)


영하 17도의 날씨에 읽는 호러 컬렉션은 더욱 스산하다. 윌북 호러 컬렉션 세 권 중 가장 두껍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드라큘라>를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새로운 번역 덕분에 책장은 금방 넘어갔다.

이야기는 런던의 변호사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 백작의 의뢰로 트란실바니아에 출장을 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19세기 고딕 호러 소설의 계보를 잇는 <드라큘라>는 편지와 일기 등의 기록을 엮은 형식의 서간체 문학이다.

서간체 문학은 연대기 순으로 짜 맞춰져 있더라도 편지의 특성상 시공간의 갭이 존재한다. <드라큘라>는 여러 사람의 편지와 일기, 보고서 등을 시간 순서로 엮어 우리는 시점의 변화로 인한 혼란과 여러 시선에서의 다각적 이해가 상충하는 틈을 가지게 되는데 그 속에 숨겨진 복선과 암시를 유추하며 그 틈을 메워가게 된다. 그리고 말하는 듯한 서술 방식으로 더욱 실감나는 묘사를 가능하게 해준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미신보다는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중요시했던 것에 반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표출 된 고딕 소설은 당시의 낭만주의 문학사조 틈에서 태어났다. 고딕 소설은 춥고 습한 영국, 아일랜드, 동유럽의 겨울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19세기 빅토리아 양식이 어우러져 더욱 음산한 기류를 만드는데 <드라큘라>에도 고딕 소설의 클리셰인 고딕 건축양식, 첨탑, 오래된 대저택, 안개, 달, 늑대, 박쥐, 창백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신비한 요소들에 힘입어 고딕 소설은 명확한 인과관계나 논리적 설명보다는 초자연적 믿음을 굳건히 한다.

“자넨 똑똑한 사람이야, 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대담한 생각도 던질 줄 알지. 그렇지만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따라가지 않지. 그리고 일상의 삶 바깥에 있는 것들은 말이 안 되는 일이고. (...)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 과학의 결점이야. 그리고 설명이 안 되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버리지.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매일 새로운 믿음이 자라나고 있어. 믿는 사람들이야 새롭다고 믿겠지만, 사실은 새로운 척하는 오래된 믿음일 뿐이야.” (p.368)


이성의 시대에 비이성적인 존재라니! 뿐만 아니라 소설에는 당대의 전통적인 순종적 여성상과 스스로 신여성이라 칭하는 진취적인 지식인 여성, 드라큘라 백작으로 상징되는 절대악, 비이성, 모호함과 그 반대편에 있는 절대선, 이성의 확신의 상징인 남성들이 대조되며, 미신이 팽배한 트란실바니아와 산업이 발달해 합리적 이성을 중시하는 런던이라는 지리적 배경 역시 대조된다.

반 헬싱은 작가의 의식이 만든 가장 완벽한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데, 이성적인 지식을 대표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나 현상에 대한 편견이 없는 유연한 태도를 지녔고, 신여성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칭송하는 깨어있는 의식과 약자를 보호하려는 신사적인 면모와 이타적인 성품을 갖추었다.

“미나 부인은 우리 인간이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이 있고 그 천국의 빛이 지상에도 내려올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손수 빚으신 사람입니다. 이토록 의심 많고 이기적인 시대에 미나 부인처럼 정말 진실하고 상냥하며 고귀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있는 거요.” (p.362-363)

브램 스토커는 이 소설을 통해 "언데드"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드라큘라" 라는 고유명사를 "뱀파이어"라는 일반명사와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정말 대단한 파급력이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소설 앞부분에만 등장하는데도 말이다. 보이지 않기에 생각만으로 더욱 무서운 그의 존재감은 과학적 믿음 뒤에 가려진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과 비합리적 욕망과 맞닿아있다. 이를 브램 스토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와 그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으로 잘 풀어내었다. 비록 당시에는 드라큘라 백작이 이교도와 절대악의 존재로 표현되었지만 현대에는 더욱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 을유세계문학전집 123
막심 고리키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머니>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산업화의 폐단과 그 속에서 의식화되는 노동자의 삶을 어머니라는 한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있다.

🔹️그렇다면 왜 어머니인가?

자본주의와 산업화로 인해 주요 노동자들인 남성들의 지친 몸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재충전시켜 다시 사이렌이 울리는 일터로 이 일하는 기계들을 무사히 다시 내보내는 일. 그 일을 위해서 폭력도 무시도 참을 수 밖에 없었던, 자본주의의 피해자에 의해 다시 한 번 피해자가 되는 가장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 그 중에서도 배우지 못했고, 그렇기에 어린이들과는 달리 성장할 가능성으로부터 배제되고,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없던 인물인 가장 낮은 곳에 있던 것이 바로 여성이다. 사람은 보고 느끼고 생각한대로 말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경험이 적어 비교대상이 없고, 폭력에 익숙해져 무기력해진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판단하는 것의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들에 의해 사회의 역할을 맡게 됨으로 인해 인식이 깨어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더욱 극적인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가정이라는 것은 사회의 소우주이자 그것의 메타포이니, 가정 내의 약자가 각성하고 의식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사회의 약자가 성장하는 과정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내의 위치와 사회에서의 성장을 모두 이루어 낸 극적인 성공의 예라고 볼 수도 있겠다.
소설의 1부에서 어머니는 사실상 주체만 바뀌었을 뿐 그녀가 맡은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정의 독재자인 남편을 떠받드는 것 대신 아들을 떠받드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점차 아들과 안드레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자신의 삶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민중의 삶을 깨닫고 그녀는 주체적으로 ’활동‘을, 자신의 신념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정치적 신념을 말이다.

정치적 노선을 떠나서 오늘날 이 소설이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현재에도 진실인, 진실의 은폐와 권력의 남용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곳에서 진실을 알려고 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탄압당하고 재판을 받는다. 이들이 말하는 '진실'과 권력이 보여주는 '진실'의 차이에 가장 무지했던 인물이자 ‘진실’ 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은 인물인 어머니. 외부 이념과 내적 삶의 간극이 가장 큰 인물이 바로 어머니이다. 이 간극은 사람들의 대화로 묘사되는 외부 이념과 어머니의 심리묘사를 통해 점차 좁혀져간다. 외부의 이념과 매일의 삶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하며 혁명가들의 숙명과 같은 삶의 모순과 갈등을 이해하고 화해해 나가는 내적 성장도 목격할 수 있다. 순수하게 아들을 지키겠다는 내적동기만을 가진 인물이 외부의 상황을 만나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따라가보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19세기 남성작가가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삶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돋보였다.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자본주의의 폐단이 노동자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 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여성의 삶에까지 뻗어나갔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함께 느껴보면 좋겠다.

🔹️자본주의의 허상과 억압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사회의 병폐를 길게 묘사한다. 어떻게 돈의 노예가 되고, 삶을 잃고, 행복을 잃고, 미래를 잃어가는지를 묘사하여 혁명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피폐했는지 함께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고리키가 꿈꿨던 사회주의 유토피아
막심 고리키는 어머니와 같은 민중 한 명 한 명이 의식화되어 결국에는 스스로가 모두를 위한 새로운 신으로 탄생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그 역시 종래에는 권력자로 변질되었지만 이 시기에 그가 열망했던 세계는 이성에 의한 진실이 통하는 세계였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오르는 질문들 - 마거릿 애트우드 선집 2004~202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오르는 질문들>>
마거릿 애트우드 / 위즈덤하우스





📖 이것들은 지난 20년 동안 내가 남들에게 받았던, 그리고 스스로 던졌던 타오르는 질문들 중 일부다. 이 책에 내 답변들이 있다. 아니, 답변의 시도들이라고 해야 할까? 에세이란 결국 그런 거니까. 시도, 노력. (p.17)

📖 소설은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답을 제공하는 것은 지침서들의 몫이다. 대신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p.560)

이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2004부터 2021년까지 했던 강연들과 에세이 등을 모아 펴낸 산문집 <<타오르는 질문들>>의 문장들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책에 자신의 작품들, SF문학, 페미니즘, 정치, 기후위기, 사회 등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 썼다. 그 이유는 ‘우리의 개인사는 바깥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호작용 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쓰기의 힘은 바로 이런 끊임없는 질문이 아닐까?

많은 질문들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타올랐던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SF / 디스토피아
애트우드 소설의 장르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애트우드의 말에 따르면 ‘장르소설’은 “매일의 수레바퀴가 일으키는 일상의 모래먼지에 우리의 코를 쑤셔 박는 대신 우리에게 유희를, 불온한 도피주의를 제공한다.”(p.29)고 한다. 경기가 호황일 때 사람들은 유토피아 소설을, 불황일 때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애트우드는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한 불쾌한 미래에 대한 책들을” 쓴다. “우리가 그런 미래를 현실에 허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p.645)

그녀가 늑대인간, 뱀파이어, 좀비의 계보를 바라보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좀비는 기억과 예지가 없기에 암울한 과거와 혼란스러운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대신 ‘걱정, 의심, 불안 등의 정신적 고통 없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기묘하게 축복받은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
이 문제에 대하여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공적 노력과 정치적 의지의 촉구이다. 그리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잊은채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이원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른 재앙들과 달리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있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번역
<번역의 땅> 2014
📖 어느 작가의 작품을 다른 언어권의 독자가 조금이라도 파악할 기회는 오로지 번역가에게 달려 있습니다. 번역가의 임무는 정확한, 또는 충분히 정확한 텍스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아가 흥미진진하고, 웃기고, 가슴 아픈 곳들을 똑같이 흥미진진하고, 웃기고, 가슴 아프게 옮기는 것입니다. (p.341)

★실존주의
시몬 드 보부아르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웠다. 양대 세계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은 프랑스의 실존주의자들을 바라보는 캐나다인의 모습과 그 반대의 입장에 대해 모두 공감이 가게 묘사되어 좋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철학은 뜬구름잡는 소리’라는 편견은 실존주의자 철학을 만나면서 산산조각 났었는데, 그 이유도 애트우드가 너무나 잘 설명해주고 있어 그녀의 말을 빌려 옮겨본다.

📖 오만한 무시! 세련된 경멸! 프랑스 스노비즘만한 스노비즘도 없다. 특히 좌파의 스노비즘. (...) 거기서 마침내 <제2의 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 이 시점에서 내 두려움의 일부는 연민으로 대체됐다. (p.617)

📖 우리가 보부아르에게서 발견하는 준엄함, 냉혹함, 실존의 추한 면에 대한 서슴없는 시선을 프랑스가 겪은 시련과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양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그에 따른 궁핍, 위험, 불안, 정치적 내분, 배신을 겪는 것은 지옥을 통과하는 것과 같았고 당연히 개인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따라서 우리 어머니에게는 냉철한 시선이 결여돼 있었다. 대신 어머니는 소매를 걷어붙인 쾌활함, 징징대지 않는 현실성을 체화했다. 이런 면모가 20세기 중반의 파리지앵들에게는 무례하리만큼 순진해 보였을 것이다. 존재의 가혹함에 압도당한 적이 있는가? 끝없이 산 위로 밀어 올리지만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에 직면한 적은? 정의와 자유 사이에서 실존적 갈등에 허덕여보았는가? (p.619)

★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치우치지 않은 저자의 균형잡힌 시선이 좋았던 부분이다. 그리고 아무런 해설도 남겨놓지 않은 셰익스피어와 달리, 작가에게 직접 듣는 <시녀 이야기>의 설명도 매우 좋았다.

내가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고발자들의 눈에 착한 페미니스트란 어떤 페미니스트일까? (p.513)

여성의 시민권과 인권이 존재하려면 우선 시민권과 인권부터 있어야 한다. 여성의 투표권이 있으려면 우선 투표권이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오직 여성만 그런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어야 착한 페미니스트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것은 남성만 그런 권리를 가졌단 과거 상황의 동전 뒤집기에 불과하다. (p.514)

우리 대부분은 이중으로 부자유하다. 우리의 ‘할 자유’는 승인과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들에 한정돼 있고, 우리의 ‘하지 않을 자유’는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다. (p.4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