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교회 이야기 - 21세기 한국교회의 비전
최승호 지음 / 대장간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평신도 교회 이야기" 이 책은 내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1998년 초판을 발행하고 2008년에 개정판을 낸 것으로 되어있는 책이다. 물론 나는 1998년에는 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에 서점에서 대하게 되는 책이다.

그런데 금번에 이 책을 대하면서, 나는 내 자신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것은 저자는 일선학교의 교사로서 교회를 섬기는 성도로서 평소에 고민하는 문제를 성경말씀과 역사를 통하여 더듬어 보면서 심층적으로 연구한 서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즉에 보았다고 한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올해부터 내 자신의 고전을 만들고자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는 고전과 현대서적의 시대를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가까이 두고 봐야될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 번으로만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생각날 때 마다 펼쳐 보고 도움을 받고 묵상할 수 있는 책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평신도 교회 이야기를 그러한 범주에 두고 싶은 책으로 생각해 본다. 물론 이 책이 내가 아는 부분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기본적인 사상에는 충분히 동의하기 때문이다.


보다 세부적인 부분에 들어가서 살피기로 하겠다. 많은 지적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물론 지엽적인 문제이지만)만 더듬어 볼 것이다.


먼저 저자의 성직에 관한 정의, 하나님 앞에 직업으로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모두가 성직이다. 라는 말에 동의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다. 만일 교회의 일, 특히 말씀을 증거하고, 심방하고 교회에 관련된 일만 하는 것이 성직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 성직(聖職)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성스러운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목회가 신령한 직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하나님 앞에 구별되어 사명을 감당한다면 그것은 성직이다. 여기에 동의한다.


그리고 저자가 지적한 검증되지 않고, 목회적 소명과 , 사명 없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두가 목회자가 되는 시대, 요즘 주로 신학대학, 드물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 가운데 자신의 의지와 소명에 상관이 없이 들어오는 자들이 있다.


분명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부모님이 목회자라, 목회자가 되기를 권유 받아서, 아니면 주변에서 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등등,,,, 각종의 이유로 자신의 소명과 응답과 확신이 없이 종종 그렇게 신학교에 입학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목회자 지망생들은 나름대로, 목회에 대한 소명을 받고 입학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지망생들 대다수는 그렇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신학을 하면서 영성적인 부분, 하나님과의 관계, 인격적인 부분의 훈련을 게을리하기 때문에 처음 받았던 소명감과, 영성을 다 상실하고 일반 직업과 같이 직장을 찾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변질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생각을 한다.


신학교의 교수님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교수님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개인의 영성훈련을 하지 아니하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교수님들, 그리고 목회자들은 영성 생활에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되고, 더욱 더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또한 저자는 신학교가 언제 있었는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고 한다. 물론 신학교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목회자를 양성하는 그러한 것이 이미 구약시대 부터 존재했다. 엘리야 시대에 "선지 생도"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 표현을 현대의 이미지로 바꾼다면, 이미 그 때 부터 목회자를 양성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를 흔히 선지 동산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저자는 마치 신학교가 유명무실한 기관인 것 처럼 표현하고 있다.(물론 나의 이해 부족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인식이 되어진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부르심에 대한 소명과, 영성이다. 하지만, 영성으로만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학적인 배경과 학문적인 연구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 선교단체를 통한 제자훈련 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가르쳤던, 그리고 그 선교단체들이 현재까지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바탕에 신학자들은, 목회자들은 없었는가?


나 역시 대학 재학 중에 선교회에 들어가서, 졸업후 까지도 선교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도 부분 부분, 좋은 점을 도입하려고 구상중에 있다. 그런데 선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의가 신학을 기초로 하신 분들이다. 만일 신학적인 기반이 없이는 교회도 선교회도 결코 유지 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신학, 특히 조직신학은 건물의 뼈대와 같은 것이다. 어떻게 건물이 뼈대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 저자의 염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회(아니 교회의 존립)를 신학적인 배경 없이 유지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요즘같이 이단이 한국 교회를, 더 나아가 한국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이 때에 바른 신학으로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요즘 이단의 횡포가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절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이단의 세력을 대항하는 중심부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주변에서 바라보는 이단의 폐해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그리고, 저자는 앞으로 북한이 통일되면 그들이 평신도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목회자는 감당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일면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저자의 우려 또한 한국교회가 직시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정답 역시 아니다.


저자는 어려운 북한의 형편에 목회자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현재의 목회자들이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하면서 그 부분을 평신도(훈련받은 성도)들이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논리로 들어간다고 하면, 만일 통일이 되면, 성도들이 일할 곳이, 직장이 그곳에 세워지는가? 물론 세월이 지나면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결코 쉬운 부분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을 목회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은 자급자족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저자의 주장대로 한다면), 그런데 통일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당장에 되어질 수는 없다. 그런데 교회는 일례로 내가 몸담고 있는 장로교회(통합측, 합동측)에는 이북노회가 존재하고 있다. 내가 속한 곳도 이북노회이다. 이 노회들은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러면 통일이 되었을 때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기반을 가진 교회를 중심으로 목회자가 전도하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직업을 가지고 부차적으로 활동하는 성도들이 낫겠는가? 그것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저자 '최승호'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동감을 한다. 그리고 우려하는 부분에 대하여 반드시 문제점을 가지고 인식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제도적인 문제 역시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위험한 부분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교회가 저자의 지적과 우려사항을 충분히 인식해서 사명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복된 교회로 세워갈 수 있을 줄로 믿는다.


평신도교회 - 분명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 서로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기 위하여 열심을 내고 노력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는,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이 읽고 공감하고 반성하면서, 또한 서로가 격려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