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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소년의 신발 ㅣ 푸르른 숲
이성주 지음, 김수현 옮김 / 씨드북(주)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는 평양의 노동당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양에서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94년 김일성 사망 후 정치 숙청으로 인해 97년 평양 밖 경성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평양과 전연 다른 참혹한 경성에서의 삶을 맞는다.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난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와 연락이 끊기며 4년의 시간 동안 꽃제비로 거리 생활을 통해 죽음과 고통의 시간을 겪다가 2002년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적도기니 초대 대통령은 그의 사촌의 쿠데타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우국이었던 북한의 김일성에게 두딸과 아들 한명을 부탁하였다. 그후 그 세 자녀는 16년간 평양에서 외국인 우대 및 보호 가운데 자라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막내였던 모니카에게 평양과 대동강변은 향수 어린 고향이고 평화로운 곳이다.
물론 두 책 저자의 북한 생활 시기가 94년 김일성의 사망 시기 전후로 약간 엇갈림이 있긴 하나, 왜 모니카의 북한에 대한 기억은 내가 만나고 듣고 알았던 일들과,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의 이야기와 그다지도 상반되었을까 했던 물음이 이 책을 통해 명확해졌다. 저자의 평양에서의 유년기와, 평양 밖에서의 삶은 소름끼치도록 대비되는 것과 같은 까닭이리라.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새삼 다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정부와 언론이 다루지 않으나 명백한 사실, 북한 주민의 인권이 회복되는 그 날을 바란다.
(306p) 끝맺는 말 미국은 사악하다고 세뇌당하며 자랐다. 그 결과 나는 백인들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 내게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에는 미국이 철전지 원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웠지만, 결국엔 가게 되었다. 백인들의 머리에 뿔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따. 지금은 미국인 동무도 많이 생겼다. 우리의 차이점은 오로지 피부색만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도 다르다. 내게 진정한 자유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대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미국에서 그동안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북한 정부가 내 인생에서 16년을 빼앗아 갔다고 느꼈다. 그 빼앗긴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 탈북민의 인권에 대한 내 관심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를 찾는 읽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중국에 살고 있는 브로커가 어느 아주머니의 정보를 주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아버지와 나는 그분을 만나러 중국에 갔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나는 공항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출발하는 곳으로 가던 중, 아버지가 뒤돌아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아까 그 여자는 네 어머니가 아니지만, 나 같은 남편과 너 같은 아들이 어딘가에 있겠지. 만약에 우리가 그 여자를 구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영영 희망이 사라질거야. 우리한테 돈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그 여자를 구해 줄 정도는 있잖니. 우리가 구해 주자."
... 그 때 이후로,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우리의 수입으로, 중국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탈북민들을 구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탈북민들을 인권이 유린당한 난민으로 보지 않고, 불법 밀입국자로만 보고 있다. 중국에서 적발된 북한 사람들은 여전히 조선으로 추방되고 수감된다.
중국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은 위험한 삶을 살고 있다. 지하경제에 있는 불법적인 일을 하도록 꾐에 빠지거나 노동력 착취, 가난, 열악한 주거 조건 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이다.
2015년 봄, 나는 중국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탈북민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재중탈북자구호사업단 컨설턴트가 되었다. 나는 전 세계를 다니며 연설을 하고, 북한에 강제로 보내질 위험을 떠안고 중국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들을 위해 모금 활동도 하고 있다. 명철이가 만약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기 전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라. <거리 소년의 신발>은 내 신발이다. 그 신발은 북한과 전 세계에 있는 수천명의 거리 소년들이 신었던 신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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