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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침묵 - 불가능한 고백, 불면의 글쓰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1월
평점 :
<릴케의 침묵>중에서 '수줍음의 미학'에 관한 부분을 읽고 확~빨려들어갔다. 가슴이 다 뛰었다. 나는 공감도가 높거나 새로운 깨우침의 글을 만날 때마다 흥분으로 눈빛이 반짝이곤 하는데 작가의 경험담이 친밀감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내용이 없더라도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는 통찰력에 감탄을 거듭했다. 생생하고 팔딱이는 살아있는 언어로 이 기쁨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은데 나의 문장력이 미치지 못함을 통탄할 뿐.
언제부턴가 생명력을 잃고 신음하는 '수줍음의 미학'을 살려내고 숨은 보석의 진가를 발견해 내는 작가의 심미안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남들이 잊었던 것, 보지 못하는 것, 그러나 가치있는 것을 볼 줄 알고 살려내어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 진정 인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나는 수줍음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문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수줍음이 돌연 사랑에서 제거되어버렸다. 사랑뿐 아니라 삶의 모든 국면에서조차 수줍음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수줍음이 사라진 자리를 메운 것은 대담함이 지나쳐 외설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솔직함이라는 이름의 뻔뻔스러운 노골성과 당당함이다. 사랑은 감출만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져버렸다. 직접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필요 이상으로 '자연스러움'을 내세운 나머지 포르노와 가까운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릴케의 침묵>, 김운하 지은 따끈따끈한 신간 중에서 마음에 콕 꽂히는 내용들을 옮겨본다.
'수줍음은 욕망을 감추는 것이다. 감춤을 통해 욕망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유혹에 덧붙여지는 마법적인 힘이다'
'수줍음은 욕망보다는 유혹에 더 친화적이다..... 유혹이 유혹인 것은 욕망의 실현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줍음이 그렇듯 욕망을 지연시키고, 감추고, 빙빙 돌면서 방황하게 만듦으로써 영혼의 샘에서 솟구쳐 오르는 한 대상을 향한 욕망의 샘물이 결코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수줍음은 은근하면서도 내밀한 것이다...... 은근함과 지연, 감춤은 수줍음의 본질이다. 그리하여 욕망은 더 부풀어 오르고, 지연이 초래하는 기다림과 고뇌로 인해 매혹은 더욱 커진다.'
수줍음이 오해를 많이 받는 세상이다. 말하는 데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소극적이고 못난 모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수줍음에서 나오는 어색한 표정과 몸짓, 말투는 자연스러움의 매끈함에 비교되어 덜 떨어진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것이 위선과 가면, 자기 기만이나 비겁함, 행동하지 않는 사변적인 태도와는 구별되어야 하는데 나조차도 수줍음에서 머뭇거리는 것과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는 것을 구분치 않고 나를 다그쳐왔다. 지금이라도 반갑고 기쁘다.
종이 한 장에도 항상 양면이 있듯이 모든 것에는 긍부가 함께 있다. 그 둘을 보아내고 사람의 마음결을 살펴 양면을 잘 조화시켜 쓰면 수줍음이 오해를 벗고 밝은 데로 가볍게 나설 것이다.
그렇다고 당당한 솔직함에서 오는 유쾌함과 시원함, 감추지 않고 밝히는 용기 같은 것들을 폄하하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수줍음이 우리에게서 미덕이 아닌 것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는 현실을 돌아보고 싶을 뿐.
수줍음은 은근하고 내밀한 것이라 하는데 이 단어들은 정서적으로 내게 착 안기는 단어다. 좋아한다. 노골적인 것보단 은근한 것이 좋고, 갑자기 훅 들어오는 깜짝 이벤트 같은 것들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듯 다가오는 게 좋다. 이것은 은근하고 뭉근하게 데워지고 식어도 천천히 식는 온돌의 문화처럼 한국인의 정서가 아닐까. 그랬던 우리가 요즘엔 광램의 속도에 빛나는 신속, 조급, 재촉, 재깍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서 은근하고 내밀한 것에 이르기까지의 느린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문학의 매혹은 이 수줍음에 빚지고 있다. 문학이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발하는 언어들이 수줍음의 표지 아래에 머물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학이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사회가 더 이상 수줍음을 인내할 여유나 느긋함을 상실해버린 탓이다'
이 문학의 매혹을 매혹으로 느끼지 않고 성질내고 감질내고 조바심내는 자들과는 기꺼이 불화하리라. 문학의 언어는 그래서 서양식 사고가 아니라 동양식 사고다. 논리라기보다는 통찰의 언어다. 애매모호하고 이질적인 것을 하나에 품는 모순과 역설의 언어다. 여성의 언어다. 그래서 즉각적이거나 명쾌한 답을 좀처럼 내놓지 않는 문학 세계가 사실 우리 삶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면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