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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연대기 -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진화와 적응이란 일상에서 접하기 쉬우면서도, 막상 생각해보면 어렵다고
느껴지는 용어들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하며 과학적, 의학적 지식까지 총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라
“ㅇㅇ이는 더 좋은 사람으로 진화했네.”, ‘얼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지.’와 같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이 두 용어를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인류 진화사부터 문명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과학 교양서를 꺼려하던 나도 읽기 좋았다. 물론 과거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깊이 파고드는 부분은 이해하기에 마냥 쉽진 않았지만, 3부 ‘현재와
미래’에서는 실생활과 결부하여 흥미로웠다. 당뇨병, 심장병, 골다공증, 매복
사랑니, 평발 등, 현대인의 질병까지 다루어 꽤나 유용할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느낀 것이 많았던 부분은 인간은 단기적 손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태생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으며, 안락함을 추구하는 것을 진화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해로울 수 있는 행동을 피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할까?’라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우선 인간은 장기적 손익보다는 단기적 손익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기 목표에 대해서는 더 이성적으로 평가하면서, 당장의
욕구, 행동, 쾌락 관련해서는 덜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근본적인 진화적 이유도 있는데, 우리는 새로운 행동들을
새롭게 여기지 않는 탓에 그것들을 해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우리 주변 세계가 정상적으로
해롭지 않다고 여기는 심리적 성향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익숙해지지는 것은 우리의 습성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의문을 품으면
매우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 역사에서도 평범한 사람이 정상이라면 생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행동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건강하지 못한 새로운 행동과 환경이 일상이 되면 인간은
거기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은 진화적 논리로도 알 수 있다. 주변 세계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려는 타고난 성향은
뜻하지 않게 불일치 질환과 역진화라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안락함을 좋은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편안하고자
하는 본능이 더 현명한 판단을 이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더 편한 것을 갈구하는 욕망에 호소하는
제품 광고를 하루 종종일 보고 듣는다. 그 결과 온도 조절이 잘 되는 공간에서 아늑하게 지낼 수 있고, 두통을 호소할 때는 진통제를 챙겨 먹는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누리는
비정상적인 안락들 가운데 인간들에게는 너무도 새로운 것이 많아서 건강에 나쁠 수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저자는
신발을 신게 된 인류의 모습을 통해, 신발을 신기 시작하면 신발에 계속 의존하게 된다는 악순환의 관점을
내세웠다. 신발이 아니라 본래 굳은살이 발바닥을 보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한 번도 맨발이 더 좋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오히려 신발 때문에 더 발이 불편한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무용수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맨발을
선호한다는 내용을 보고 납득이 갔다.
요즘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예컨대 화장 등 나를 치장하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일종의 꾸밈 노동이었다는 것이 가장 충격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도 글이나 모니터 화면을 얼굴 가까이에 놓고 몇 시간이나 본다든지, 신발을 신는다든지 하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 결과 얻게 된 근시는 현대의 병이라는 것도 놀랍지
않다. 저자의 말대로 과거만 해도 근시는 심각한 단점이었을 것이다. 사냥하거나
식량을 채집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위험 요소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놓치기 쉬웠을 것이다.
이 책 마지막에서는 혁신과 안락의 질환을 해결하는 방법은 현대의 이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증상만 치료할 때 일어나는 ‘역진화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긴 원인이 아닌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수습하기 바쁘다면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일만 반복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원인을
알아보는 데 진화의 관점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고,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 문명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깊어짐을 느꼈다.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한번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