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주먹 (성난황소) - 아웃케이스 없음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출연 / 20세기폭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는 나에게 어렵다라는 좌절을 안겨줬던 첫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라마타라는 인간에 대해, 영화에 대해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나에게 한 편의 텍스트가 던져졌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눈 뜨게 된 소경과 바리새인과의 대화. 이게 이 영화의 내용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난 주인공처럼 분노했다.(우리나라 출시명은 그땐 '분노의 주먹'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도 잘 연결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은 언제나 타인의 삶을 보고 평가하고 어떨 때는 깎아 내릴 때도 진실을 왜곡하려 할때도 있다. 그 소경의 말처럼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가 아는 것은 그저 소경이었던 자신의 눈을 예수님이 만져 떠진 것이다. 그게 소경의 고백이다. 이 영화 안에도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미국의 단면(라마타의 첫 경기장면에서 마치 미국 사회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듯한 난잡함과 광기어린 폭력과 혼란속의 경기장이 보인다. 짓밟히는 여자의 모습은 잔인하기까지 처절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한 경기에서 결국 질수밖에 없는 라마타의 사투 역시 부패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영상으로 강조되는 것은 그런 치열함을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성공을 이루려 했던 한 남자의 인생의 절정과 쇠락을 영화는 객관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라마타의 짐승같은 면이 강조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는 있는 힘껏 살아가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옹호할 수는 없지만 우리네 인생의 단면처럼 그 순간의 라마타의 삶을 진솔되게 고백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말이다. 주인공 역시 자신을 옹호하지 않는다. 후회도 하고 용서도 빌지만 그것들과 뒤엉켜 삶은 그저 흘러간다.(그의 삶은 과거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마지막 장면에서 챔피언이 었던 때를 회상하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내면의 고백이 아닌 지금도 역시 그렇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도 그런 의미로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의 서두와 마지막을 차용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여전히 황소다. 겹겹이 쳐져있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한 마리의 황소. 광대처럼 변해버린 삶이 처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주먹을 내지르는 복서다. 마감독님은 그 진실을 포착하려 하지 않았나 싶다. 그게 텍스트와 영화가 연결되는 고리이지 않을까 유추해 본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계속 보면서 어느 정도 지루함을 느꼈다. 잠깐 다른 영화를 볼까 싶었지만 성난 황소를 보며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그가 가족의 단란함(또는 행복해 보이는 한때)을 다루려고 할때마다 이용되는 홈비디오(비열한 거리에도 나온다.)형식의 영상(이 때가 과연 즐거운 한때 였는지 의문이 든다. 단지 그렇게 기억하고 싶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다른 부분들과 같은 톤으로 그려졌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명확하게 기억을 저장한 수단으로만 표현 된다), 그리고 한 인물을 지독하게 쫓아가는 연출법(가끔은 극적인 구성을 해도 좋으련만)은 철저하게 인생을 해부하려는 그의 의도적인 노력에서 나온 수단이지 않을까 싶었다. 감각적인 시도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로워 보이는 이유는 단지 그가 표현하려는 지점을 드러내주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성난 황소'를 보며 그가 진정한 거장임을 깨닫는다.(얼마전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서 어쩌면 그는 테크니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