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의 딸>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 속편이라는 이 책을 자연스레 선택할 수 있었다. <아가멤논의 딸>이 좀 무겁고 정치성이 강한 작품이어서 속편도 그런 분위기를 이어가지 않을까 예상했는데(그래서 구입을 잠시나마 주저하기도 했다 -_-), 같은 작가가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 <아가멤논의 딸>에서 이야기의 핵심 역할을 하는 수잔나의 아버지 ‘후계자’가 어느 날 ‘자살’하고, 그 죽음에 관계된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책제목이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이지만,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는 게 작품의 핵심은 아닌 듯하다. 후계자의 자살을 둘러싸고 온갖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마치 법정에서 증언을 하듯 관련자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그 사건을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끝까지 모호하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적인 요소도 다분하다. 작품의 분위기가 심각하고 진지하게 흘러가다가도 작가가 설치해놓은 웃음 포인트에서 한번 피식 웃게 되는 것이 카다레 소설의 매력인 듯싶다. 또한 글의 전개에 전설이나 동화를 삽입하는 카다레의 솜씨는 여전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뿔이 나 있는 조르크 골렘, 왕의 여섯 마리 종마… 어쩜 그리도 딱 들어맞는 비유를 끌어오는 것인지. 괜히 거장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이같이 치밀하게 잘 짜인 작품을 읽을 때면, 마음속이 빈틈없이 꽉 메워지는 그 느낌이 참 좋다. 이것이 소설을 읽는 기쁨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