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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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었다.
잠들기 전에 누워 읽다가 잠이 달아나버렸다.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소설.

상황 묘사가 굉장히 세밀해서 장면과 캐릭터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물에 젖은 듯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와 해조류 냄새가 났다.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비극적인 장면을 작가는 그저 목도하듯이 건조하게 묘사한다.
등장인물에 적합한 배우를 떠올려 볼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싶었더니, 역시나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낯선 단어들과 신선한 표현들로 써낸 문장들이 너무 좋았다.
등장인물의 생각의 속도를 그대로 따라가며, 한 문장을 긴 호흡으로 썼는데도 전혀 막힘 없이 쉽게 읽혔다. 오히려 그 인물이 하고 있는 생각을 내가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작가와 제목을 듣고 듣다가 이제야 읽게 된 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곧 세상에 홀로 남을 이 아이가 겪게 될, 종류와 정도를 가늠 못 할 폭력과 곤궁을 떠올렸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골몰하는 거야말로 무의미하나 가능성만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었으며,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가혹하고 비참한 일인지를 저울질하다가 결국 이 아이에게 삶이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 늘리는 일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이 아이의 앞날은 뜨거운 물에 뿌려진 한 줌 설탕의 운명만큼이나 명백해 보였다.

비좁은 세상을 포화 상태로 채우는 수많은 일들을 꼭 당일 속보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 없고 속도를 내면화하여 자기가 곧 속도 그 자체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아다지오와 같은 삶. 그 어떤 행동도 현재를 투영하거나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어떤 경우라도 과거가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도 속하지 않는 삶이었다.

노인의 마음은 해토머리의 잔설처럼 녹아내렸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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