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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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느끼고 있는 우울감이나 슬픈 감정이 정확히 어떠한 이유에서 찾아왔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어 나도 모르게 그 감정에 잠식되기도 한다. 저자 역시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생각이 바탕이 되어 나오게 된 프로젝트가 바로 <슬픔에 이름 붙이기>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있지만 아직 이름은 없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명명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리하였다.

책에서 정의한 용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니즘(onism)"이었다. 그 뜻은 바로 <한 번에 한 곳밖에 있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다. 이 감정이야말로 그동안 내가 겪어왔던 가장 커다란 감정이 아닐까. 나는 한 곳에만 속해야 한다는 사실이 꽤 답답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내가 학교에 속해있는 학생이기 때문에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다른 일에 흥미를 느낄 때면 죄책감을 가지곤 했다. 저자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로 확장해, <당신이 경험할 세상이 얼마나 작을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정의하였다. 오로지 내가 경험한 것으로만 세상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유일한 관점이다. 이러한 감정을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면서,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회의감도 함께 들었다.

그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용어는 "올레카(oleka)" 였다. 뜻은 <기억할 만한 날들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한 깨달음>. 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잊힌다. 기록을 통해 그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감정은 굴뚝같지만, 시간이 흐르게 되면 그 감정은 무뎌지게 되고 기억에서 점차 잊힌다. 빛나는 순간들을 간절히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들도 언젠가 잊힐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날들이 있었다. 그 감정을 정의한 용어를 직접 마주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슬픔>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읽으면 오히려 더 우울감이 몰려오게 되진 않겠느냐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슬픔의 어원은 본래 '충만함'을 뜻했던 단어로, 그 어원은 라틴어 sati(충분한, 만족스러운)라는 말에 신기하였다. 진정한 슬픔은 단순히 "기쁨의 오작동"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얼마나 찰나적이고 신비롭고, 무제한적인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활기 넘치는 솟구침"을 뜻한다고 한다. 인상적인 문구가 있어 아래에 같이 공유하고 싶다.

“당신은 이 책의 곳곳에서 우울함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겠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상하리만치 기쁨으로 충만한 기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운 좋게도 슬픔을 느끼게 된다면, 음,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의 무언가에 마음이 쓰여 그것에 사로잡힐 정도임을 의미한다면, 슬픔이 지속되는 동안 그것을 음미하시길.”

책 속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껴왔던 정말 많은 감정이 있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하나의 용어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속의 혼란도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쳐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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