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그리폰 북스 15
레이 브래드베리 지음, 박상준 옮김 / 시공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불사른다? 가장 먼저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떠오른다. 진시황이 책을 불사른 이유는 법가의 정치 사상을 비판하는 유생들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다. 책이 없으면 배우지 못하니 법가를 비판하는 유생들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없어질 것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원천봉쇄가 어디 있겠는가? 책의 존재 의의와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Fahrenheit 451에서는 Faber의 입을 빌려 책을 중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책에는 3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는 정보 제공이다. 책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둘째는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은 책을 읽고 사색하는 즐거움이다. 세째는 책을 통해 얻은 정보와 사색으로 얻어진 생각들을 재료삼아 발생되는 논쟁과 행위들이다.'

책을 태우는 일은 정보 습득과 사색의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행위이다. 또한 정보와 사색으로부터 얻어진 생각들에 기반한 논쟁과 행동들을 원천봉쇄하는 무시무시한 행위이다. 그럼 왜 이런 사회가 도래하는가? 왜 책을 읽는 것이 불법화된 사회가 도래하는가? 우민화 정책을 기도하는 강력한 독재자가 등장하는가? 다시 Faber의 말을 빌려보자.

'처음에는 사람들이 책 읽기를 귀찮게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했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고전과 명작을 몇 페이지, 극단적으로는 몇 줄로 요약하여 소개하는 책들이 등장했어. 사람들은 몇 줄의 문장을 읽고는 햄릿을 읽었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지. 그래도 사람들은 행복했지. 그들에게는 스포츠와 TV가 있었으니까. 그들은 삶을 즐겼지. 진지한 논쟁도 서서히 사라져갔지. 특정 집단의 심기를 건드리는 책들도 사라져갔지. 백인, 흑인, 침례교도, 이탈리아인, 러시아인, 아시안인 등을 비하하거나 미화하는 책들은 사라져갔지. 특정 집단의 반발이 문제 되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였어. 재미만을 목적으로 하는 통속 소설과 만화만은 살아남았지. 그런 것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사람들의 행복에 도움을 주고 있다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사라져갔지. 책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자 대학의 학생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네. 시간이 지나면서 책은 쓸데없는 논쟁과 문제만을 일으키는, 없애버려야 할 것이 되어버렸지.'

분서는 대중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아이러니다. 논쟁과 비판이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 이것이 그들이 선택한 세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그 대가는? 핵전쟁. 그리고 멸망이다.

Fahrenheit 451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2002년 한국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진지한 논쟁과 비판은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 되어버리고 TV와 스포츠와 오락물이 종교가 되어버린 세상. 오로지 즐거움만을 쫒는 사람들. 그리고 즐거움만이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 이성보다는 감성, 감성보다는 감각이 중요시되는 사회.

주변을 돌아보자. 그리고 TV와 스포츠와 오락물을 숭배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조용히 한 마디 해 주자. 책 좀 읽으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