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식탁 -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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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정치'가 들어가지만 진짜 정치를 다루지는 않는다.
또한 제목에 '식탁'이 들어가지만 맛이나 요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음식보다는 '먹기'를 둘러싼 인간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은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저자는,

식사에 얽힌 기억, 역사, 예술, 차별을 이 책에 녹여냈다.

 

 

같은 식탁에 앉아있어도 사람들이 속한 세계는 저마다 다르다. 여성, 흑인, 장애인, 아동.

저자에 따르면 먹거리를 기르고, 만들고, 먹고, 치우는 모든 문제가 정치적이다.

밥상을 뒤엎는 사람. 수저를 먼저 들 수 있는 사람. 식사 중에도 계속 시중을 드는 사람.

성별에 따라 먹는 입과 노동하는 손의 역할을 구분하는 등 식탁에는 권력이 오간다.

즉, 식탁에서의 약자는 곧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책은 가부장적, 남성중심적(그중에서도 특히 백인 남성)인 사회를 간결한 문장으로 조목조목 꼬집는다.

 

 

대부분의 글들이 여성에 대한 글이라 나도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젊고 날씬하지 않으면 여성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아이가 남긴 밥을 먹지 않으면 모성애가 없다고 평가받으며,

신체 부위마다 먹거리로 비유되는 성적대상화의 존재.

 저자가 워낙 명료하게 잘썼으니 심오한 주제도 어렵지 않았거니와,

이 모든 것이 애석하게도 나의 현실이라 글이 술술 읽혔다.

내가 피부로 느꼈던 바를 이토록 똑똑하게 말해주니 속이 시원하다.

 

 

한편 백인들의 음식을 차리느라 자신들의 음식 문화는 남기지 못한 흑인들,

외식 한 번 하기 쉽지 않은 장애인들, 민폐로 여겨질까 식당에 나타나지 않는 아이와 노인 등

여타 소수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식사-식탁-먹기 라는 주제로 이렇게 풀어냈다는 것이 감탄스럽다.

 

 

독자들 중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많아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은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역시 앞에서의 감동이 쌓이고 쌓여,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에필로그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의 권리를 생각하는 정치적인 식탁은 누구든 환대해야 한다.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동물적 존재에서 말하는 권리를 가진 정치적인 인간으로, 나아가 타인과 온전히 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랑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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