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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되어 남동생의 자살을 겪은, 작가 코트렐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주인공 헬렌이 같은 가정으로 입양된 남동생의 자살 이유를 밝히고자 고군분투했던 3일 간의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은 '위화감'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헬렌의 일인칭 시점은 너무나 불안합니다. 한 감정을 오래 파고드는 저와 달리 주인공은 감정 변화의 폭이 큰 사람이라 몰입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양부모님과의 서먹한 관계도,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남이라지만 동생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비일반적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엔 동생이 죽었으니 당연히 감정이 격해지고,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고 이해하려 했으나 헬렌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헬렌은 누군가에게 사과할 때도 (상대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음을 알고도)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인물이니까요.
이렇다보니 헬렌이 동생의 자살 원인을 파헤치려는 이유도 그를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부 스스로 이 상황을 납득하기 위한 게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어느 장면에서는 자신이 동생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고 싶은 것이 더 커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헬렌은 헬렌대로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방식이었을테니 그것을 나쁘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저는 불편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주인공보다도 주인공의 동생에게 더 깊게 이입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자신의 회고록은 아니라며, "내게 일어난 일을 염두에 두고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어려웠습니다. 헬렌의 동생이 그랬듯,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는 자신을 위해 죽음을 철저히 준비했던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주변인 입장에서는 가슴에 사무치는 일이지만 분명 죽음이 그의 평생소원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헬렌도 동생의 묘를 보고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뜻을 담아 경례합니다. 저는 마지막 문장 한 줄에 그간의 위화감을 떨치고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제야 제목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이라는 제목도 헬렌이 자신의 동생에게 전하는 인사로 읽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