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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
정병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표지가 인상적이다.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파랑과 초록으로 그려져, 우리가 뉴스나 TV 프로그램에서 들어온 북한 상위 계급이 인민들에게 행하는 악행과 같은 것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북한을 상징하는 것들은 다 그려져 있다. 핵, 주체사상 탑, 개선문 그리고 금수산기념궁전. 그러고 보니 모두 평양에 있는 것들이다. 참고로 금수산기념궁전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고난과 웃음의 나라>를 읽고 든 생각은, (1회차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이 한 권을 독파하면 북한 사상, 사회, 정치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남북문제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논리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을 정도로 '북한'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인데, 이 책 한 권의 내용을 전부 내 머릿속에 넣기에는 입력 과부가 일어나서 아쉽다.
초등학생 때 배웠던 '통일'이라는 교과서 그리고 뉴스나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통해서 자주 접해 이제는 좀 익숙한 줄 알았던 북한. 난 국내에서 이슈가 됐던 북한 관련 사건에 대해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었다. '임수경 평양축전참가사건'도 어젯밤에 알게 돼서 밤새 이걸 찾아본다고 잠을 놓쳤다. 그 일이 발생한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89년의 임수경이 2015년까지도 제19대 국회의원에 재임했다는 것을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이분도 역시 뼛속까지 정치인이고 생각보다 아주 먼 옛날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았구나 싶었다. 언뜻 북한 식당 종업원 탈북에 대해 뉴스에서 들었던 적이 있는데, 이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정치적으로 활용됐던 사건이라고 해서 또 관심 있게 찾아봤다. 남북 관계에 대해 이산가족 상봉이나 정상회담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놀랐다. 남북 관계가 ups and downs 하는 게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될지 더 알고 싶어졌다.
사회주의 사람들은 아마도 자존심이 강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베트남 다낭에 놀러 갔을 때, 베트남 사람들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서 동냥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민들의 자존심이 세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도 자존심이 강해 아무거나 구호 받지 않으며, 북한이 쌓아온 북한 고위급의 이미지 (단호하고 도발적인)를 잘 이용해 다른 나라 사람들을 잘 휘두르기도 했다. (정상회담을 하면 자주 결렬이 되는 게, 국제 행사 같은 것을 크게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하여 자기 성격을 잘 이용해 정치와 국민 선동에 잘 이용하고 있는 것도 같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북한으로 구호물품을 보내면, 그 물품들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고위급 사람들이 쓰거나 핵 개발에 사용한다고 종종 들었다. 이 책을 읽으니, 어느 정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충제'처럼 국가 체면을 손상시킬 수 있는 물품을 받게 되면 문책당할 수 있다 할 정도로, 이를 '건강증진제'라는 이름으로 바꿔 물품을 구호 받을 만큼 자존심을 세우는 국가다. 다른 나라에서 좋은 물품을 자꾸 가져다주면 북한 인민들은 자본에도 눈 뜨게 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뛰어넘는 게 있다는 걸 알고 탈북하여 국가가 난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 대표는 구호물품을 그냥 배급하지 않을 것 같고, 또 자기 나라 잘 못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체제 유지를 위해 결국 핵 개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그 구호물품을 이용할 것 같다. 그러면 북한은 또 핵 개발해서 다른 국가들에게 겁주고 그걸로 이익 받고 국민 선동하고... 반복하겠지. 아. 이게 도발의 원리구나.
개인적 자선과 마찬가지로 국제원조도 대상국의 상태와 실력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참혹한 모습으로 도움을 청해도 가난한 걸인에게는 동전을 던져줄 뿐이다. 입성이 반듯하고 갚을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는 단위나 지원 방식이 달라진다. 실력과 배짱이 있는 상대가 '나'를 해칠 수 있는 힘까지 가지고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대기근 상황에서 발사한 미사일 광명성은 바로 그런 길을 가기로 했다는 선언으로 들렸다.(p. 24)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3장 아버지 나라의 교육'이 제일 인상 깊었다.
북한에서는 직업과 지위의 세습은 가능성일 뿐이지 자동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북한에서도 엄마가 아이가 어렸을 적부터 공들여서 인생 플랜을 계획해 줘야 그 아이도 그 (잘난) 부모처럼 될 수 있다. 북한도 무수한 경쟁과 선발과정을 거쳐야 일찍부터 국가적 관심과 지원을 받는 재능교육기관을 다닐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평양에 사는 엄마들도 아이 잘 되라고 과외나 학습지를 시키고, 상급학교 추천을 위해 뇌물과 부정이 오가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잘 교육받은 아이들은 자라서 또 지금과 같은 북한을 일구겠지... 아니면 국가의 반역자가 될 지도.
지은이가 언급한 북한 노래 「단숨에! 」란 곡을 들었다.
"쉴 새 없이 쏘아 올리는 거대한 로켓 발사 장면을 배경으로 "단숨에!"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며 격렬한 음향으로 연주... (중략) 젊은 남녀 관객들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중략) 무대 앞에서 일제히 폭죽과 불꽃이 터져 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춤을 추던 모든 관객들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열렬히 환호했다"라고 쓴 걸 보고, 영상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비주얼 충격이었다. 평양 걸그룹 모란봉악단 멤버(특히 김솔미)가 예뻐서가 아니라, 무대 위 스크린에 뜬 핵 발사 장면이며 그 핵이 미국에 떨어져서 폭발함과 동시에 실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 참 자극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이를 보니 지은이의 말을 빌려 북한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라는 최강의 제국주의 세력과 맞대결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임에 틀림없었다. 일렉 사운드는 흥겹기도 했지만 충격적이었고, 정말 단숨에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가사는 "단숨에!" 밖에 안 나왔다. 인상적이어서 이틀은 생각났다.
이 책으로 북한을 알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김 씨 왕조의 신격화는 아직 이해가 안 된다.
조선혁명박물관에서는 제너럴셔먼호를 화공으로 격침시킨 평양 인민들의 용감한 전투 그림에는 그 전투를 앞장서서 지휘하는 김일성의 그림이 높이 걸렸다 하고, 3·1운동을 소개하는 전시실에서는 김일성이 만세 행렬을 이끄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렇듯 역사도 다르게 배우는데, 우리 통일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