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평점 :
아내에게 배신당한 페르시아의 어느 왕은, 아내에 대한 증오심이 모든 여성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다. 왕은 신붓감을 구해 결혼을 했을 했으나 매번 첫날밤을 보낸 다음날 새 신부를 무참히 죽였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딸을 둔 모든 부모와 처녀들은 왕과 결혼하여 죽임을 당할까 봐 전전 긍긍이었다. 하지만 어느 대신의 영특한 딸, 세헤라자데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자진하여 왕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의 안위가 걱정되어 처음엔 반대했으나, 딸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버지도 딸의 결혼을 승낙했다. 사랑하는 딸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세헤라자데 아버지의 걱정은 기우였다. 세헤라자데는 결혼을 한 다음날 죽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죽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천일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페르시아 왕의 여성에 대한 증오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세헤라자데가 왕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천일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이야기' 덕분이었다.
고 박경리 선생님이 어렸을 때 온 동네 사람들이 여름 피서를 떠날 때 선생님과 선생님의 어머니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돈도 내지 않고 말 그대로 피서지에 '모셔져 갔다'라는 일화를 읽은 기억이 있다. 박경리 선생님의 어머니는 이렇다 할 유머도 없고, 사람들과 어울려 잘 노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셨지만, 이야기 하나만큼은 맛깔나게 잘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꾼으로 피서지에 모셔갔던 것이다. 더운 여름철 시원한 피서지에서 듣는 재미난 이야기는, 마을 사람이 돈을 갹출해서 들을 만큼 가치가 있던 여흥이었다. 그런 이야기꾼의 피를 박경리 선생님이 물려받지 않았을까 싶다.
또 언젠가 읽은 이야기도 생각난다. 실화다. 아프리카 어느 오지에 고립된 비행기 조종사. 어떤 이유로 비행기를 띄우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인 상태인데, 그런 그에게 누가 찾아왔다. 근처 어느 숙소에 죽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당신을 급히 보고자 한다. 조종사는 무슨 일인지 의아해서 그 사람에게 찾아갔다. 죽어가는 사람은 기력이 매우 쇠하여 말만 겨우 조금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며 들어달라고 조종사에게 부탁한다. 조종사는 자신이 들어줄 수 있는 일이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죽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소원은 큰 소원이 아니고, 단지 지금 바깥에서 일어난 일들 즉 뉴스거리들을 알려달라고 한다. 조종사는 이런저런 뉴스를 들려주었고, 죽어가던 사람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이야기를 듣고는 후련한 마음으로 죽는다.
재미난 이야기를 다음날에도 듣고 싶어서 아내를 죽이지 않은 페르시아의 왕, 타고난 이야기 재주꾼으로 모셔 다닌 박경리 선생님 어머니,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단지 바깥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는 무명 씨. '이야기'는 인간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별것인지도 모르겠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602/pimg_7766111932563005.jpg)
13쪽│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뇌는 희망에 찬 목표로 삶을 가득 채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삶의 냉혹한 진실에 직면하지 않게 해준다.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서 삶의 혹독한 진실을 외면하게도 해준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리고 결국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는 모두 인간의 공통된 이야기다. (...) 어디에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곧 우리다.
15쪽│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이야기로 경험한다. 뇌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에 동지와 악당을 채워 넣는다. 뇌는 혼란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단순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바꾸고 그 중심에 주인공(근사하고 소중한 나)을 위치시킨다. 이때 주인공은 일련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이것이 삶의 플롯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 교수 조너선 하이트는 뇌가 '이야기 프로세서'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인 프로세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우리의 입술 사이로 숨이 새어 나오듯이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천재들만 이야기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미 그것을 만들고 있다. 단지 더 잘 만들려면 그저 자신의 내면을, 마음 그 자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질문을 던지면 된다.
이 책은 기자이자 소설가인 윌 스토가 스토리텔링 강좌를 준비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을 근거로 지필 했다. 그는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면 우리의 뇌가 삶이라는 플롯의 중심에서 우리 스스로를 도덕적 영웅인 양 느끼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미뤄 이 주장은 옳은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5~6살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 머릿속은 언제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만든 이야기. 나는 내가 본 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만들고 상상했는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였다. 나는 정의롭고 능력도 있으며 인기도 많고 도덕적이었다. 내 상상 속의 허구의 '나'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으로 못하는 게 없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어려움과 맞닥뜨리고 나쁜 놈들을 만났지만 나는 언제나 극복했다. 극복할 때마다(아니, 극복하는 것을 상상할 때마다) 나는 얼마나 쾌감을 느끼고 우월적 기분을 느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나만 했던 게 아닐 것이다. 지금도 길을 지나다 보면 아이들끼리 모여 애니메이션에서 본 걸 가지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따라 하며 역할극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보고 '논다'라고 생각하지만, 깊이 따져보면 아이들이 '캐릭터를 생성'하고, 일정한 플롯에 따라 '이야기를 만든다'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논리적이지 않고, 과학적이지 않지만, 나름 기승전결이 있고 극적 쾌감이 있다. 악당과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주인공(바로 나!)도 있는...
중학생에 접어들어 좀 더 사회화 교육을 받으면, 어렸을 때 왕성했던 이야기 만들기 놀이는 점차 사라지고 어느덧 이야기는 생성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이야기 소비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피 속에는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대체로 이야기 생산자에서 이야기 소비자로 변하지만, 소비자여도 인간에게 '이야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죽기 직전까지도 바깥세상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 무명 씨처럼.
이렇게 우리의 뇌 자체가 이야기에 특화되어 있다.
178쪽│ 스토리텔링 뇌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로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언어가 애초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선동적인 스토리텔링 양식, 곧 소문을 통해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
180쪽│ 소문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 관해 알려주고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대부분 도덕규범을 위반한 내용, 집단의 규율을 깨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의 도덕적 분노를 자극해서 소문 속 인물을 공격하든 방어하든지 간에 어떤 식으로든 행동하게 만듦으로써 집단에 우호적인 행동을 유지한다. 우리가 좋은 책이나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책이나 영화에서 이런 원시적인 사회 정서를 자극하고 이용하기 때문이다.
윌 스토의 『이야기의 탄생』은 우리 뇌가 얼마나 이야기에 특화되었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왜 이야기에 끌리는지, 그리고 어떤 플롯을 가진 이야기에 흠뻑 빠져드는지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그리고 저자가 기자 겸 소설가여서 그런지 책 내용 자체도 재밌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빠져들 듯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이야기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전락(?)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마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꾼이 된다. 바로 '꿈' 속에서... 꿈도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플롯을 띠며, 우리는 그 스토리에 따라 희로애락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직 과학이 '꿈'의 효용에 대해 밝히진 못했지만 '이야기'가 매일 밤마다 우리 뇌에 특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닌 '뇌'가 이야기꾼일지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흥미롭고 재밌게 읽은 책이다.
나는 오늘도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했고, 아마 죽는 그날까지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할 것이다. 내 삶의 이유, 내 삶의 가치 역시 '이야기' 덕분이다. 이야기가 없으면 나는 빈껍데기.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우린 모두 다 스토리텔러이자 스토리리스너이기 때문이다.
책, 영화, 드라마, 뉴스 할 것 없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