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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인문학, 역사적 깊이가 별로 없어서 인지 이 책을 완전히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정말 재밌게 읽었다. 내 취향. 저자의 문체가 내가 좋아하는 문체다. 뻔하디 뻔한 글이 아니라서, 건너뛰며 건성으로 읽을 수 없다. 그렇다고 꼼꼼하게 분석하며 읽어야 하는 소설도 아니지만, 한 줄 한 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고 해야 할지. 내가 좋아하는 딱 그런 유의 외국소설이었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중간에 인문학, 역사적 이야기가 나오고 이걸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그런 스타일(여기서 유머러스하다는 건, 독자들마다 느끼는 바 다를 거다. 어떤 독자들은 이 책이 전혀 유머러스하지 않다고 느낄 테니까) .




 이 소설의 작가, 요스트 더프리스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언론학과 역사학을 공부했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을 작품에 십분 녹여 넣고 싶었는지 소설 속엔 미국, 칠레, 유럽 등 대륙을 휙휙 넘나들며 많은 역사적 이야기와 인물이 나오기 때문에 서양(유럽 및 유럽인이 이민을 가서 세운 아메리카 포함하여) 문화나 역사를 어느 정도 알면 문장의 맥락, 뉘앙스, 저자의 의도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모른다면... 안타깝게도 옮긴이가 정성스레 단 주석을 읽어도 이게 여기서 왜 나오는지 의아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서양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소설의 흐름을 타서 읽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좀 어려울 수 있는 작품이다. ㅡ 작품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이런 난관에 봉착할 수 있으므로 주의 ㅡ 저자의 지적 유희(!!)를 느끼고 맛보는 걸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좋아하고도 남을 작품이라 할 수 있다(개인적으로 줄리언 반스나 산티아고 감보아 등등의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또 뭐랄까, 자유연상법이랄지 갑자기 말하는 화자가 바뀐다고 해야 할까 그런 부분이 있다. 시공간을 휙휙 넘나든다. 아마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식 흐름을 작품에 녹여낸 게 아닐까 싶다. 가령 이런 부분이다. 화자는 친구의 권유 혹은 학장 부인의 추천으로 해외에 체류하게 되는데 그 체류하는 방에서 갑자기 옛날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거나, 생각난 사람과 과거에 있었던 일을 꼭 현재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이건 우리의 의식 흐름과 비슷한데, 우리 역시 어느 특정한 장소에 가면 불현듯 옛날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한다. 의식적일 때도 있고 무의식적일 때도 있고. 생각 대부분이 금방 스치고 지나가지만, 더 기억하려고 하면 더 기억할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의 의식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문학, 거기에 산문이므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해버리는 회상을 문자로, 언어로 길게 서술하고 묘사해야만 한다. 그래서 옛일을 기억하는 것을 꼭 현재의 일처럼 혼동되게 저자는 쓴 것 같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실험적으로 사용한 기법이지만, 그럼에도 새롭고 매력적이다(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나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무슨 수수께끼 풀듯이 문장에 의문을 가지고 찬찬히 읽게 된다).

실제의 히틀러와 칠레에 히틀러라는 이름을 가진 벽화가, 화자 프리소 더포스와 그에게 위기의식을 주는 필립 더프리스, 그리고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히틀러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과 사물들. 사람들의 착각과 오해들. 저자가 초반에 중요한 의미로 쓴듯한 '상상'과 '환상'의 차이. 프리소와 피파(핍)의 관계... 뭐랄까, 이 책은 분명 책 한 권인데 홀로그램처럼 어떻게 비춰서 읽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책이다. 아마 재독, 삼독을 한다면 그때마다 느낌이 달라질 작품. 애매하고 모호함을 잘 활용하는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내 취향.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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