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나의 집밥 - 나를 응원하는 오늘의 요리
유키마사 리카 지음, 염혜은 옮김, 이나영 그림 / 디자인하우스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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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2월 6일~7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일본)
/읽은 동기/ 아, 요즘 음식 에세이가 너무 좋아요!!! ♡ㅅ♡ 하트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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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 듣는 이야기가 참 좋다. 
나는 이 책을 표지만 봤을 땐, 그냥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 상 차려준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묶은 '엄마의 집밥'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많이 멀었던 책. 더 정(情)이 가득하고, 더 사랑이 가득한 책이었던 것이다. 

글쓴이는 30대 중반까지 혼자 지내다가 30대 후반에 결혼, 어린 두 딸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의 일을 하며, 취미생활(음악, 영화 감상 및 요리와 와인)까지 열심이다. 이 책에는 두 딸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부모님과 친여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게다가 어린 나이로 미국에 갔을 때 숙식을 제공한 미국 양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생각해 보니, 이 책은 음식 에세이라기보다, 가족 에세이라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가볍고 가벼운, 긍정적이고 밝은 문체. 
전혀 구김살도, 어두움도, 찌푸림도, 걱정도 없다. 쨍하게 맑다. 글쓴이의 심성을 닮아서일까, 인격이 문체에 드러나서일까. 참 좋았다. 

물론 이야기만 보면, 실상 무거울 수 있는 죽음과 이지메, 정신적 장애를 앉고 태어난 조카 이야기 등도 쓰고 있지만 전혀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은 당연지사 겪을 수 있는 것이고, 그것과 싸워서 이기면 된다고, 으쌰 으쌰 힘내자고 쓰고 있다. 글쓴이가 사랑하는 딸들에게도,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도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154쪽. 생활을 위해 독립하려고 생각했다면 별로 주저할 '여유'는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찾아 일단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 길을 탐구하기 시작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거든요. 아빠도 엄마도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의 자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워도 힘들어도, 결국은 자신의 발로 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힘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157쪽. '맞아. 그냥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참기만 해서는 안 돼. 아니라고 생각되면 스스로 다시 고쳐야 하는 거야.'

166쪽. 흔히 와인은 사람과 같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와인을 기른 사람의 인격이 포도에 스며든다는 뜻입니다. (...) 결국은 작업하는 사람의 인격이 그 상품의 가치를 좌우하는 법이니까요. 

184쪽. "아이들은 부모가 평생 열심히 즐겁게 살아주기만 하면, 그 뒷모습을 착실하게 보면서 쫓아오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196쪽. 신기한 건, 굉장히 힘들었던 일들도 전부 다 괄호 안에 넣고 덧셈, 뺄셈을 하면, 결국에는 플러스 추억밖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완성된 플러스 추억과 그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들의 진짜 가치는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듯합니다. 

197쪽. 월급 쓰는 방법 중 가장 좋았던 건, 어떤 물건을 사는 것보다도 누군가와 마시는 술이었다는 사실. 디자인, 음악, 술, 식사, 삶의 방식, 이런 모든 것들을 가르쳐준 사람이 많이 있었던 건 그때 그 한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으리라는 것. 

198쪽.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내일은 더 잘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223쪽. 일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는 점, 즉 모든 사물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는 명쾌한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집에 한 명씩 엄마 같은 사람이 있으면 모두의 인생도 편안해질 겁니다. 

226쪽. 게다가 부모님이 자신의 아이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은 적당히 자립할 수 있게 되지요. 

229쪽.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마리아. 나의 이상적인 어머니상. 어떤 시를 읽어줘도 다 공부가 되고, 매일 즐겁게 보내는 본보기를 보여준다. 아, 정말 멋져. 

240쪽. 부모님은 아이들만 바라보고 힘들게 아이들을 키운다지만 제 생각에는 아이들은 의외로 형제자매 사이에서 저절로 크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251쪽. 어떤 이별이라도 이별이 슬픈 법이지만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산뜻한 이별이 있습니다. 피짱과의 이별처럼 서로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서로에게 잘해줬을 때 누릴 수 있는 이별도 그렇습니다. 

252쪽. 좋아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하고, 피짱처럼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256쪽. 언젠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그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 너무나 공포스러운 나머지, 자신에게 남겨진 아름다운 시간을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달랐습니다. 
좋아하던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좋아하던 음악을 더 근사하고 훌륭한 오디오 세트로 듣고, 항상 웃으셨습니다.

단순히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 생각들을 쓴 거지만,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뭐, 어디서 다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조곤조곤한 말투, 따뜻하고 티 하나 없이 맑은 문체에 똑같은 다른 누구의 말들보다 더 나에게 힘을 주고, 우유부단 결정 장애의 나에게 어떤 결심의, 결단의 계기를 마련해줬달까. 

책을 읽으면, 그냥 책을 덮는 순간 글쓴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책도 있고, 때로는 작가로서 기억하고, 그의 말을 간직하고 싶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유키마사 리카 씨는 나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나에게 거의 이모 뻘, 우리 엄마 동생 뻘이지만, 이모보다는 알고 지내고픈 '언니'랄까. 적당히 거리를 뒀지만, 더없이 세심하고 따뜻하면서도 진솔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언니. 적당히 거리를 둔 그 거리 덕분에 더 부담 없고, 스스럼없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언니. 

이 책도 참 잘 읽었다.
마음이 차분해 지면서, 내 마음 속 어딘가 삶에 대한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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