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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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시간/ 2017년 1월 18일~19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일본)
/읽은 동기/ 사람들이 먹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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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미식 수업은 때때로 독자를 열받게 할 때가 있고, 글쓴이에 대한 반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 꺼려지시는 분들은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먼지잼 주 :-p]

187쪽 │ 어쩌면 저란 인간은 밉살스런 인간일지도 모르겠네요.

네, 그럴지도요, 후쿠다 가즈야 선생님.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자신이 밉살스런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물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솔직하게 적어나가던 것이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역시, 직업을 평론가로 선택하신 것이 상당히 적절했다 봅니다. 다른 직업은 뭐가 어울릴까요... 딱히 떠오르는 직업이 없네요. 사람들의 감정에 상처라도 줄까 전전긍긍하며 둥글둥글 에둘러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평론가로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죠. 

제가 생각하기에, 어떤 분야든 평론가(비평가)라는 사람은 자기가 평론하는 분야의 지식이 상당하고, 그 지식 외에 다른 잡식에도 꽤나 소양이 깊은 것으로 압니다. 보통은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혹은 역사 등 요런 고매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더군요. 때때로 과학이나 기계(컴퓨터나 음향기기)에 대한 지식을 뽐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여러 연유가 있겠지만, 지식을 쌓는 걸 좋아하고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이를 말로, 글로 설명하는 데 취미가 있어서 택했을 것이겠죠. 이런 분들에겐 날카로움은 기본, 통찰력은 덤, 그리고 까탈스러운 취향이 따라옵니다. 특히 이 까탈스러운 취향이, 평론가라는 직업인을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까탈스럽고, 집요하고, 모든 걸 비교/연구하겠다는 포부!! 보통 사람은 '비교할 걸 비교해라'며 그냥 넘어가는 것들도 평론가들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죠. 좀 더 깊이 알고자 발악하며, 다른 사람들은 음미하지 않는 것도 음미하는 변태 끼도 당연 옵션! 이런 희한한 사람들 덕분에, 그전에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것에 어떤 지식이 쌓이고, 하나의 분야가 생겨나고, 그것이 확산되면 문화가 되고, 좀 더 오래 지속되면 역사로까지 등극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취미에 의해서든, 정리 강박에 의해서든, 혹은 사명감에 의해서든 이렇게 극성맞은 사람들 때문에 인류가 향유했던 무언가가 이렇게 문화, 역사가 되어 기록되나 봅니다. 

선생님은, 문학평론에서 나아가, 매일매일 먹는 음식까지, 문학을 평론하는 것 마냥 음미하고, 분류하고, 순위를 매기고, 오직 먹고 평가하기 위해서 비행기 표를 끊어 프랑스로 잠깐 갔다 오기도 하는 참 극성맞은 분이올시다. 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 덕분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무언가가, 하나의 '분야'가 되고, 연구의 대상이 되고, 인류의 소중한 무언가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것과 저것의 다름, 그 차이, 그 차이의 연유, 그리고 그 자체를 음미하고 분석하고 기록에 남기는 것, 누군가는 극성맞아 보이고 쓰잘 데기 없는 짓,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걸 비교하는 억지스러운 인간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어느 면에서 인간의 문화는 당신네들 같은 극성 취미자, 섬세하고 까탈스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다듬어지고, 우대되고, 때로는 유네스코 유/무형 문화유산에까지 올라가나 봅니다. (인간을 재발견했다는 르네상스도 다 이런 극성맞은 사람들 덕분 아니었겠어요?!)


152쪽 │ 왜냐하면 모든 가치 판단은 결국 우열의 판단이고 그런 판단의 축적을 통해 가장 뛰어난 것을 찾아내고 동시에 자신이 그렇게 판단을 내린 배경과 근거를 계속 고민해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153쪽 │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 즉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시대, 작품, 작가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153쪽 │ 이런 질문은 난센스처럼 보이지만 문화를 생각할 때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게다가 물음 자체가 무리가 있는 탓에 그 사람의 편견이 나타나고 맙니다. 편견은 마이너스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편견을 통해서 사물을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문화적인 사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이 뭔지를 알고 그 편견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최고인가를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생님의 이 우열 판단에, 뒷목 잡거나 선생님께 반감을 가지실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의 길을 가야죠. 그래야만 하죠. 그것이 우리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겁니다. 설사 인류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사실 도움 안 될 확률이 더 높죠), 그냥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좋죠. 이런 성격이라면. 어쨌거나, 선생님의 프랑스 요리의 편애,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싸온 도시락을 "그런 장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정이 가득한 물건을 들고 올라타는 건 곤란한 일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태도가 저는 좋았어요. 이건, 제가 선생님 생각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선생님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듣는 게 저는 좋군요. "아, 세상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지요. 그게 억지스러운 생각이 아니고, 그냥 단순히 세상과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저런 말을 한 게 아니라, 당신 본인의 논리대로, 차근히 생각한 후에 저런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저는 좋았습니다. 더치페이에 관한 생각도, 프랑스 요리에 대한 생각도 다 마찬가지예요. 선생님만의 논리를 가지고, 요모조모 미식에 대한, 의견을 펼치신 게 참 좋았어요. 이런 분들 덕분에, 이 세상이 좀 더 다채로워지고 풍성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같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날카롭게 비교/분석/음미하시는 분들 덕분에, 뭔가 취향이랄지 지식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좀 더 넓게 보아 우리 인류 문화까지 깊어지고 넓어진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그냥 단순히 미식의 차원이 아니라, '취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어요. 나는 무엇에 취향과 취미를 두고, 그것을 음미하고 분석해서, 미약하나마 우리 '문화'에 격을 높일지... 그걸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 밤잠을 설쳤습니다.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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