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면 좋겠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겠어."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잊을만하면 하고, 또 잊을 만하면 해서 정말로 이 친구가 전쟁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넘겼는데,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같아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해줬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옛날 6.25 같지 않을 거다. 그때는 부자들이 그냥 한마을의 유지에 지나지 않았고, 다른 나라와도 교류도 거의 없었고 교통편도 불편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떠나면, 부자나 같은 동네 거지이나 보통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돈 있는 사람은 외국에 시민권도 있고, 땅도 있고 집도 있고, 자식이나 친척, 지인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 살아서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외국으로 떠나면 된다. 하지만 돈 없는 자들은 그냥 여기서 총알받이가 되던가, 이 나라 안에서만 피난 다닐 수밖에 없다. 옛날 전쟁은, 사람들이 똑같이 힘들었으나, 지금 이 시대에 전쟁이 나면, 빈부격차가 더 고착화될 수밖에 없고, 너나 나 같이 없는 사람들만 죽어나갈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한 후에는 내 친구는 더 이상 전쟁이 나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팽배한 모순, 갈등이 일순간에 해소되길 바라는 희망을 아직도 계속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 나면 좋겠어'
이 말은, 내 친구만 하는 말이 아닌가 보다. 이 책 초반에 보면, 글쓴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바람(...) 소망(...)을 들었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좋겠어.' 우리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엉망인지 알 수 있는 한 대목인 것 같다. 어떤 울증, 어떤 답답함이 가슴이고 목에 꽉 막혀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서 빨리 이 답답한 속을 확 뚫어버릴 만한 어떤 강력한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전쟁'일수도 있고, 미국 트럼프나 필리핀의 두테르테 같은 사람(이 책의 비유로 말하자면, 답답증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메시아'적 존재)의 등장을 염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전쟁-중동-도 아니고 메시아-미국이나 필리핀, 유럽 우경화-도 아닌,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 하나둘 보도되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또 기득권 세력 중 하나인 국회가 국민의 등쌀에 못 이겨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것을 보고 그동안 꽉 막혔던 답답하고 억눌려 있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낸 것 같다.)
이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라는 책은,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는 생각, 세상이 확 바뀌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와 현대인들의 다양한 모습, 이 세상에 대항하여 각기 취하는 행태, 태도를 설명하고 분석한다. 요즘 사람들이 왜 무기력한지, 왜 단절에 가까운 혼자 지내기를 하는지 등등.
그리고 이번 정권에 들어서서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 세월호, 메르스 사태, 강남역 살인사건, 구의역 젊은 노동자의 죽음 등의 사건들도 짚으면서 우리 국민들이 어떤 상처와 불신, 무력감을 느꼈는지 이야기한다.
141쪽. 이 시대는 위와 아래가 아니라 안과 바깥이라는 신분제적 위계가 다시 등장했다. 이를 가장 실체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다.
143쪽. 이것이 위와 아래가 아닌 안과 바깥으로 신분을 분할하여 통치하는 새로운 계급 사회, 아니 신분제적 사회의 실체다. 안으로의 유혹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을 경계에 배치하고 그 경계를 갉아먹는 것으로 움직인다.
166쪽.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만 보장되는 '안전'은 인간의 존재방식인 공동 세계에 대한 파괴에 다름 아니다. '사이'를 만들고, '사이'를 통해서, '사이' 안에서 추구하는 안전이 아니라 '사이'가 사라진 상태를 안전이라고 기만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187쪽. 혁명과 달리 리셋은 불신의 산물이다. 이들은 세상의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책의 뒤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쓴이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그건 우리 인간. 이 인간(人間)이라는 뜻처럼 인간은 혼자, 홀로가 아닌 '사이'로서 관계를 구축하고 여기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19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가능성'이다.
209쪽. 그러므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사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똑똑한 소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말을 듣고 새로운 제안으로 돌려줄 줄 아는 '협력'의 기술자다.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이 좀 산만해서 정확하게 글쓴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좀 단번이 파악하기 힘들었으나, 하고 싶은 말은 이건 것 같다. 이 사회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래서 이 세상은 이제 아무것도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으며, 그리하여 '전쟁이 나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이는 곧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와 같은 말을 한다고... 그렇다, 책 제목만 보면 글쓴이가 사회를 리셋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사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리셋하고 싶어 한다는 걸 서술하고 있으며, 리셋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리셋하는 것은, 가능성 없는 사회에 대해 가지는 어떤 소망 같은 것. 그러나 이는 위험한 소망이라는 것이다.
글쓴이는 '세상을 리셋'하고자 하는 소망을 품기보다, 인간 사이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재정의함으로써 서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비루한 공급자와 소비자에 머무길 그치고, 함께 살 수 있는 협력의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글쓴이가 주장한 이 부분은 많이 공감 되었다.
왜 요즘 사람들이 혼술혼밥을 하며, 왜 무기력한지, 왜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하는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이 책만으로는 글쓴이가 정확히 뭐 하시는 분인지는 파악할 수 없는데 추측하기로 학교 선생님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 외 다른 공부 자리를 마련해서 학생이든 일반인들과 많이, 그리고 치열하게 공부하시는 분 같은데 그 전공과목이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사회문제에 있어서 인문사회학적으로 접근할 뿐 경제학적, 통계학적 뭐 이런 설명은 없다. 그래서 '현상'에 대한 주관적 설명과 생각의 나열로 인한 비약적인 부분도 꽤나 있다. 그래서 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위에 한 번 언급했듯이 책이 조금 산만하다. 그래서 글쓴이가 무얼 주장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파악하기 힘들다. 목차를 깔끔하고 명확하게 정했더라면 책 내용이 한결 일목요연했을 거다.
게다가, 책 제목이 임팩트 있어서 좋으나, 글쓴이가 책에서 말하는 내용과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어떤 암시와는 차이가 있으니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무기력한 것 같은 우리 사회, 온통 화가 난 사람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읽은 기간/ 2016년 12월 7일~10일
/주제 분류/ 사회과학-비평/칼럼
/읽은 동기/ 우리 사회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