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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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 출판사에서 선정한 소설 3개와 김윤식, 신경숙, 김애란 작가가 각각 박완서 님 작품 중에서 한 편씩 골라 실은 책이다. 


박완서 작가는 1930년 대에 태어나 현대사를 몸소 겪어 살아내신 분들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면서 다른 삶을 살았고, 박완서 작가는 당신이 쓰실 수 있는 글을 적어 내셨다. 오랫동안 가정주부로 있다가 아이들 학교 보낸 후인 마흔에 접어들 무렵 작가가 되셔서 그런지 어딘가 20세기식 규방문학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님이 연대별로 쓰신 글만 봐도, 우리 현대사를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에 해당하는 1930년대와 40년대, 그리고 한국전쟁, 전쟁 직후 온 난리 통에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성공하려면 서울로 서울로!'라는 믿음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촘촘히 움직였고, 개발독재와 군사정권 말기, 그리고 완전 달라진 새 천년의 시대... 글이 다룬 시대마다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정말 맞다. 10년을 주기로 대한민국은 휙휙 바뀌어갔고, 시대와 세대에 따라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진다. 


단편집 제목을 따온, 이 책의 수록 소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전통을 받들고, 새 세대 치이는 낀 세대를 잘 보여준다. 박완서 작가보다 조금 아래 연배이신 '김수현 드라마 작가'님의 드라마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을 흐르고 흘러, 이런 이야기도 이제 옛날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가 2008년에 발표되었는데, 발표된 지 현재 15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와 동년배이신 분들의 이미 많이 돌아가셨고 살아계시다고 하여도 그리 사실 날이 머지않았다. 「카메라와 워커」에 나오는, 자식뻘 되는 조카들이 이제는 일흔 살을 넘겼고, 꾸역꾸역 자기 윗세대들의 빈자리를 메우거나 함께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시기 때문이다. 옛날이야기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자전적 소설이다. 박완서 작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사랑받았던 일, 엄마의 학구열로 서울 학교에 입학한 일, 한국전쟁으로 삼촌과 오빠를 잃은 일, 남편을 만나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중산층 삶으로 들어간 일, 모두들 기쁨과 즐거움에 들떠 있던 1988년 남편에 이어 막내아들을 잃은 일 등. 마음이 아리는데, 이 모든 아픔과 슬픈 일들도 지나가고 결국엔 잊히며, 이 글을 쓰는 작가도 죽는다는 사실이 왜 이리 내 마음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좀 전까지 젊었는데, 정신 차리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듯한 느낌. 



하루는 길어도 인생은 짧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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