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 히가시노 게이고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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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집.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일본 작가가 아닐까 싶은데,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무서울까 봐. >ㅁ< (살인, 시체 등등 이런 소재들 넘 무서워 ㅠ) 그래도 유명한 작가이니, 읽기는 읽어야 할 테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의 에세이집이다. 에세이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에세이가 따뜻하다면 그의 소설도 추리 소설이지만 따뜻하지 않을까 기대해 볼 수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재밌게 잘 읽었다. 책 제목이 『사이언스?』 이고, 책 띠지에 '과학책이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세요.라고 되어 있듯이 이 말이 이 책을 관통한다.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다. 말랑말랑하고 재밌는 에세이집이다. (사실 에세이집을 내겠다고 낸 책이 아니고, 2000년 대 잡지에 연재한 글을 옮긴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취미로 글을 적다가 작가로 등단했다. 젊었을 때 자신만만한 성격이었는지, 자신이 전업작가로서 먹고 살 수 있을 가능성을 보고 직장을 그만두고 이과적 삶에서 문과적 삶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과는 이과다. 이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히가시노 게이고가 모 소설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갔다가, 작품 속 인물이 교통사고를 당해 전선 있는 데까지 붕 날아올랐다가 떨어졌다는 부분을 읽고 발끈한다. 이는 물리학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고, 그래서 이 작품을 뽑는 건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문과 출신인 다른 심사위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이런 부분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그런 사소한(?!!) 부분은 그냥 넘긴다. 이 작품은 결국 떨어졌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적한 물리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설정 때문이 아니라, 작품성이 밀려서 떨어진 것이다. 문과 출신들에게는, 사람이 차에 부딪혀 하늘로 붕 뜨는 건 실제로 그러하든 말든 아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혈액형 관련 이야기도 재밌었다. 요즘에는 유행이 좀 지나간 것 같지만, 혈액형으로 나누는 성격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인기를 끄는데, 이과 출신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은 정말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인의 친누나는 혈액형으로 나누는 성격의 신봉자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런 누나를 설득하기 위해 누나와 매형 혈액형을 예로들며 조카의 성격을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더 누나는 요즘 자기 아이를 이해 못 했던 게 혈액형이 달라서 였구나라고 받아들인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히가시노 게이고 아버지는 오래도록 안경사를 하셨다. 직접 렌즈를 깎아서 안경을 제작하셨는데, 단골손님이 대단히 많았다고 한다. 안과 분야도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달해서, 눈을 기계에 갖다 대면 바로 시력이 측정되고 그걸로 바로 안경 렌즈를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기계로 시력을 측정하고 새로 안경을 맞춘 사람들이 써보니 자기 눈에 맞지 않더라며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 아버지가 손수 깎은 안경알을 사러 찾아왔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신기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는데, 아버지는 그들이 '기분 탓'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기분 탓일까. 한평생 안경을 제작하신 아버지, 아버지는 안경을 맞추러 온 손님들의 사소한 습관과 물건을 볼 때 어떻게 보는지 잘 관찰하고, 그에 맞춰서 안경렌즈를 제작하셨단다. 그래서 기계로 일률적으로 매끈하게 깎은 것보다 그의 아버지가 만든 안경이 사람들에게 더 잘 맞는 것처럼 느껴진 것. 그리고 아버지는 이 일을 오래 하셔서 신통방통한 능력도 갖고 계셨다. 사람을 보면 시력 검사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 시력을 안다고.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그냥 안다고.... 아무래도 '감'은 아직 인간이나 의학, 과학 분야가 밝히지 못한 뇌의 능력 같은데 어쨌든 신기하다(이것도 언젠가 과학으로 밝혀질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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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 소설의 최강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과적 생각을 말랑말랑한 에세이로 읽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글을 읽으면 정말 추리 소설가(항상 살인을 생각하는 작가)인가 싶을 만큼 따뜻하고 인간미 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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