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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ㅣ Wow 그래픽노블
케이티 오닐 지음,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2월
평점 :
케이티 오닐의 문제작,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제목과 표지 그림에서 감이 오듯이 이 작품은 성소수자 및 유색인을 소재로 한 동화다. 유색인이 주인공인 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도 많이 나오니까, 유색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 이제 자연스럽고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공주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었는지 정말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요즘 성소수자의 결혼이나 인권 문제가 중요한 사회 이슈이고, 사람들의 의견이 여전히 뜨거우니까.
읽어본 소감은, 이 작품은 아이들보다 먼저 어른이 읽고 담론화해야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어른이 읽어도 혼란스럽다. 개인적으로 성소수자를 다룬 작품은 몇몇 영화를 제외하곤 문학작품으론 거의 접하지 못했다. 일부러 찾아볼 만큼 관심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주로 읽었던 작품은 해외 고전 소설들로, 해외 고전 소설들은 아무리 깨인 작가라 하더라도 기독교적 영향 아래 있었고 따라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 『보바리 부인』이나 『안나 카레니나』 등도 오래도록 파격적이라 평가받아 왔으니까.
나는 성소수자들을 싫어하지 않고, 그들이 탄압받기는 더더욱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뭐랄까, 무관심한 편이랄까.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주로 읽는 그림책 형태로 접하니, 뭔가 낯설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내가 성소수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체감했다고 할까.
이야기 자체는 경쾌하다. 중간중간 유머 요소도 있어서 웃으며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 책 속에서 성 역할의 변화는 낯섦과 동시에 혼란스러움을 준다. 성소수자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기에 혼란스러운 걸까 등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다 읽고 난 소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파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여성의 인권 신장, 고착화되고 고정된 성 역할 깨부수기는 다 좋다. 하지만, 동성 간의 사랑은 반대하지는 않지만 또 지지하는 것도 아니기에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이 작품의 백미는 사회 편견을 비트는 것이지만, 그건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 한해서만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세상은 본디부터 옳고 그름 자체는 없다. 그냥 사회 구조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 사회적 합의가 달라지는 것뿐이다. 사실 남녀의 사랑도, 유럽 낭만주의 영향을 받고 근래 만들어진 것이다(특히 20세기 자본주의와 만나 고도로 상품화되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남녀의 결혼은 대체로 '사랑'이 목적이 아니라 노동력과 대를 잇기 위한 '당연한 의무'였을 뿐이었고, 춘향과 이도령 같은 남녀 간 '사랑 이야기'는 극히 드문고 희귀한 사례였다.
시대와 가치관은 계속 변하고, 지금은 누구나 느낄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내가 낯설고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어쩌면 이 작품은 어린이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어른들에게 추천하는 그림책이다. 담론의 장을 열어줄지도 모를 문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