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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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은 이 암울하고 폭력적인 세상이 그저 작가의 상상일 뿐이라고 또렷이 인지하며 읽는다. 이런 세상은 결코 실제할 수 없다고...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만큼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현실적이어서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 때마다 오싹했다. ‘『시녀 이야기』 속 디스토피아는 우리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류 역사가 그걸 증명하지 않나’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여권 신장 운동이 요즘처럼 활발히 이뤄지던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에 바탕을 둔 ‘길리어드’라는 종교 집단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다. 그들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빌미로 국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국민들 인권을 제약한다.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인권 제약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제약받는 사항이 늘어나고, 급기야 여성들은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은행 계좌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남자만 은행 계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경제권은 완전히 박탈당했고 경제력이 없는 여성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이 남성에게 종속된다. 여자는 혼자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고 유럽 중세 때처럼 '남성을 유혹할 수 있는' 머리카락부터 발 끝까지 신체 모든 부분을 펑퍼짐한 드레스로 가려야 한다. 그리고 오래전 철폐되었던 ‘계급’이 길리어드 사회에 부활한다. 사람들은 각기 계급에 맞게 옷을 입고, 행동할 수 있다. 다른 복장은 금물.


몇 개의 계급이 존재하는 '길리어드'에 아주 독특한 존재가 있다. 바로 ‘시녀’다. 그녀들은 임신 가능한 여성들로 선별된 존재들로 오로지 아기 생산(임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존재 의미가 임신과 출산에만 있을 뿐, 실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아기 공장'.


『시녀 이야기』는 이런 디스토피아 세상을, 프레드 사령관의 시녀인 ‘오프프레드’의 시각으로 쓰여 있다. 그녀는 오로지 사령관의 아기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여성이다. 그녀에게 인권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녀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 가령 길리어드를 만든 사령관이나 그들의 부인, 그들의 자녀, 이 사회를 감시하는 '눈', 또 노동자 계급인 이코노계급까지 모두에게 억압적인 곳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정해진 규율에서 일탈할 수 없는 곳, 일탈하면 바로 심문 받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곳이다. 모두가 억압하고, 억압 받는... 도저히 나아질 희망이 없는 디스토피아 세상.


하지만 그 세상에도 희망은 있었다. 『시녀 이야기』후반부에서 희망이 흘러나온다. 철저하게 희망을 품을 수 없을 때 희망의 씨앗이 싹트는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벌어지는 의사의 강간,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사령관들의 추악한 욕망, 사령관 부인들의 삐뚤어진 질투들... 물론, 의사나 사령관, 사령관 부인에게 유린당하는 피해자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죽거나),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개인의 일탈이 철옹성 같은 길리어드에 균열을 내고 사회 붕괴의 기폭제가 되는 것이다.


 

 

『증언들』은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으로 근본주의 종교국, 길리어드가 어떻게 붕괴 되었는지, 『시녀 이야기』15년 후를 그린다. 『증언들』은 세 명의 증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길리어드에서 최고 위치에 있는 아주머니인 ① ‘리디아 아주머니’, 고위 사령관의 고명딸로 곱게 자란 ② ‘아그네스’ 그리고 길리어드와 이웃한 국가인 캐나다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③ ‘데이지’. 이 세 명의 증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시녀 이야기』 보다 읽기 수월했다. 무엇보다 길리어드가 붕괴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세 명의 증언자 중 길리어드의 질서를 만들고 규율을 창조한 ‘리디아 아주머니’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패한 권력층에서, 그 부패를 고발하고 이 권력을 전복시키는 이야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희망을 품게 한다. 이 희망은 『시녀 이야기』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 희망 때문에 『증언들』에서 어떤 암울한 이야기가 나와도 괴롭지 않았고 곧 길리어드가 전복될 기대를 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시녀 이야기』에서 이 사회가 붕괴될 조짐은, 결론을 알고 난 후에 알 수 있는 조짐들이었다)


그리고 사령관의 딸이지만, 입양된 딸로서 처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아그네스’, 아그네스에 대한 마가렛 애트우드의 심리 묘사가 섬세하다.


다만, 자유로운 캐나다에서 자란 데이지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예민함과 거친 모습이 섞여 있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라 작품 속에서 조금 겉도는 캐릭터로 느껴졌다.


길리어드의 지도자들은 사회를 철저히 통제해서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려 했지만, 오히려 엄격한 통제와 근본주의가 '위선과 허위로서' 길리어드의 붕괴를 일으킨 것이다. 길리어드에서 핵심 지도자인 리디아 아주머니의 철두철미한 복수는 실로 꼼꼼하고, 통쾌했다. 전직 판사로서, 악한 인간과 악한 사회를 심판한 것이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증언들』은 단순하 문학 작품으로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는 결코 세상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쓰여 있지 않다. 자유로웠던 국가가 갑자기 엄격한 근본주의의 종교 국가가 된 사례는 유럽이나 중동 국가에서 있어 왔던 일이며, 여성의 인권을 박탈하고 남성에게 완전히 종속 시킨 사례는 이슬람 국가 뿐만 아니라 중세 기독교 국가, 그리고 우리 조선 시대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와 단순히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이 아니라, 현실과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그린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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