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B 사감 같은 여자, 고복희. 그녀는 캄보디아 프롬펜에서 전혀 장사가 되지 않을 곳에 호텔(이라 쓰지만 거의 민박 같은)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시간은, 시계보다 더 정확하다(응?! 그게 가능해?!). 매일 다섯시 정각에 일어나 호텔 로비를 청소하고, 마지막으로 그녀 특유의 스트레칭을 한 후 제시간에 업무를 시작한다. 호텔 매니저 면접 때도 다른 거 묻지 않는다. 결석, 지각은 안 하는지 이것만 묻는다. 결석이랑 지각만 안 한다고만 하면 다른 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일에 있어서 시간 엄수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시간을 잘 지키는 건 좋은 건데, 매사가 이런 식이다. 뭐든지 정확해야 한다. 소위 융통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손님들은 여행 온 기분에 취해 밤에 술도 먹고, 함께 어울리며 놀려고 하지만 호텔 주인인 고복희는 언제나 NO다. 그래서 별로 없던 손님마저도 발걸음이 뚝 끊기고 말았다. 호텔이 곧 망할 것 같으니까 호텔 매니저이자, 호텔에 하나밖에 없는 직원인 '린'이 묘수를 짜낸다. 한 달 장기 숙박 손님을 받자고.
고복희는 세상천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당연히 있다. 늘 실패만 거듭해온 '박지우'. 인스타그램으로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자격지심을 느끼다가 큰마음 먹고 자신도 해외여행하겠다며 고복희의 호텔 광고를 보고 이곳에 온 것이다.
어딜 가나 사람이 사는 곳은 비슷하다. 한국이나 캄보디아나 다 사람 사는 곳이고, 특히나 한국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모여 있으면.... 그곳은 흡사 대한민국의 축소판이 되는 것이다.
고복희의 호텔이 있는 곳은 소위 캄보디아 한인촌인데, 다들 캄보디아에서 큰 부자가 되기를 꿈꾸며 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못하다. 망하기 직전에 사업을 접고, 근근이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거액을 사기당하고,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자살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처럼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 저렴하게 샀는데 이제 땅값이 40배나 올랐다느니 그런 말도 많다. 그래서 목 좋은 곳은 호시탐탐 노리기도 한다. 바로 그 대상이 된 장소가 고복희의 호텔. 한인 사람들은 고복희가 호텔 땅을 내놓기 바라며 따돌리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비춘다.
하지만 고복희는 그런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복희는, 한 평생이, 이런 압박 속에 살았고, 그 압박을 당당히 무시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했기 때문이다. 따돌림받아도, 험담을 들어도 이런 것들에 끄덕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호텔 직원 '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장기 투숙자 '박지우'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개발 독재에서부터 현재의 한국, 그리고 꼭 과거의 우리나라처럼 가난하고 헐벗은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그런 와중에 올곧은(너무나 올곧은) 고복희라는 캐릭터로, 주위에 흔들림 없이 자기의 선택에 따라 살아야 함을 주장하는 소설이다. (물론 강하지 않게, 은근하게)
과연 우리는, 아니 나는 고복희처럼 살 수 있을까. 그러기엔 나의 멘탈이 너무나 깨지기 쉬운 유리 멘틀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휘둘리지 않고, 당당히 내 길을 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