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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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보다 <여행자의 인문학>, 혹은 <여행자의 역사 이야기>가 더 적절한 제목일까. 요즘 '인문학'이라는 어휘가 많이 쓰이고, 나도 많이 쓰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문학'이 애매한 그 무엇이다.


저자는 여행을 기기 전에 먼저 해당 여행지와 관련된 예술가나 작품을 찾아보는 것이 하나의 버릇이라고 한다. 이런 버릇(?!)은 비단 저자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닐 터. 저자는 자신이 찾은 정보를 정보 수집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글을 써서 한 편의 '에세이'로 묶는다. 여기서 에세이는 '수필'보다는 미국 학교에서 흔히 쓰는 대로 '한 편의 글'에 더 가깝다.


사실 여행을 가서 유명하다는 곳을 그냥 보고만 오면 뭔가 심심하고, 크게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추억과 사진'이 남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은 옅어지고 사진은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찍을 수 세상이라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여행한 곳을 더 의미있게 기억하는 방법은, 여행길에 맞춰 마주친 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물 흐르듯 부드럽게 엮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럼 여행지에서의 기억도 오래가고, 역사나 예술가에 대한 기억도 오래갈 것이다. 아니, 기억하는 것을 넘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새롭게 느끼고, 여태 하지 않았던 생각을 새롭게 할지도 모른다.




책 표지의 부제처럼 이 책은 '천천히 걸으며 유람하고, 관련 인문학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인문학'이라고 하지만, 인문학보다는 살짝 역사에 가깝다. 사람들이 흥미로워하고, 여행지로서 자주 찾는 곳을 다루며, 읽기에 말랑하고 부드러운 문체에, 유익한 지식이 곳곳에 스며 있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프랑스 리옹을 다룰 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장미 캐릭터는 실제 모델이 있었다고. 그건 생텍쥐페리의 부인이었던 '콘수엘로'라고 한다. 장미는 언제나 까탈스럽고 예민하며 사랑을 하기보단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캐릭터다. 관심을 받기 위해 기침을 하며 아픈 척도 한다. 생텍쥐페리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많이 힘들었을까. 사실 『어린 왕자』를 읽으며 매 캐릭터마다 모델이 있었을 것 같았지만, 장미가 실제 그녀의 부인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니 좀 놀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의 잘못된 기억력을 조정하기도 했다. 생텍쥐페리가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비행기 사고로 실종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가 실종된 곳은 유럽에서였다(그가 한 번 아프리카에서 조난당하는데 그것과 헷갈린 듯). 그것도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실종설과 사망설이 분분했는데 2000년에 잠수부가 마르세유 근해에서 정찰기 잔해 일부를 발견, 마침내 2004년에 수중 탐사팀이 정찰기의 잔해를 찾아냈다고 한다.


이 책은 유럽 중세, 르네상스 시대부터 근현대의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책으로 여행 기분도 내며, 인문학적 지식도 쌓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나아가 직접 여행을 간 장소나 여행을 가본 장소에 대한 역사적, 인문학적 이야기를 저자처럼 엮는다면 더없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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