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모든 애인들에게 -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203가지 사랑 이야기
올린카 비슈티차.드라젠 그루비시치 지음, 박다솜 옮김 / 놀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건 사진 하나, 그 옆에 짤막한 사연.


한 페이지 남짓한 내용들인데 하나하나 모두 영화처럼 다가온다. -ing가 아니라 -ed이기에 몇 줄로도 몇 개월의 만남, 몇 년의 만남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인 듯. 많은 감정과 많은 사연, 굴곡이 느껴진다.


책의 저자는 4년 동안 만난 연인과 헤어지고, 그 사람의 남겨진 물건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이별 보관소'를 만들었다. 프로젝트는 점점 커져서 그녀의 물건만이 아니라, 그녀의 지인이나 심지어 모르는 사람의 이별 물건을 받았고 나중에는 전 세계의 여러 사람들에게 물건을 받게 되었다. 한국의 서울, 미국 로스앤젤레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오스트리아 빈, 영국 런던, 오스트레일리아 등 국경을 막론한다.



세계 어디에서 보낸 누구의 물건이든, <이별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은 한때 사랑하던 이들이, 서로 소중한 사연을 간직한 물건들이다. 여기서 '사랑했던' 사람들은 단지 사귀었던, 결혼했던 이성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가족, 동성 연인 등 모든 '사랑했던'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어느 사연이고 좋지 않았던 건 없는데, 그중 기억 남는 이별 물건. <바이올린 로진>


한 소년이, 한 소녀에게 반해버렸다. 대화에서 소녀는 '새'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해박한 지식에 놀란 소년은 그때부터 동물 관련 책들은 수없이 읽었다. 하지만 소녀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해박한 것과 관심사는 다른 것일 수 있다). 바로 악기. 소녀는 고등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비올라를 맡고 있었다. 소년은 단지 그녀와 함께 관심사를 나누고 싶어서 비올라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같은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들어간다(얼마나 치열하게 연습했을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몇 개월 후 소녀는 소년에게 이별 통보를 한다. 사실 소녀의 마음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식었는데, 소년이 너무 열성이라 자살할지도 모를 것 같아 이별을 얘기할 수 없었다고. 얼마 후 소년은 이사를 갔다. 그 사이 바이올린도 샀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아 처분해 버렸다. 그러다 얼마 전 집에서 <바이올린 로진>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은 다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모든 사랑 중에서 제일 순수하고, 제일 열정적이었던 사랑이 이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소녀보다, 소년에게 샘이 난다. 한 사람에 대한 그 노력과 열정이 부럽다.




책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사랑 이야기와 다양한 물건이 담겨 있다. 책 소개만 보고 선입견을 갖지 마시길. 한 이야기가 모두 단편 영화처럼 혹은 짧아도 장편 영화로도 상상이 되니 말이다. (내 직업이 영화감독이라면, 이야기 하나하나 다 영화로 만들어 볼 욕심이 생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은 따뜻하게, 차분해졌다.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