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써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 더 이상 충고라는 이름의 오지랖은 사절합니다
유민애(미내플)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만만하게 보이는 이유는 ‘쫄았기’ 때문이다. 왜 쫄았을까? 평가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만한 우리는 사정없이 평가를 당한다. 외모를 평가당하고, 성격을 평가당하고, 능력을 평가당한다. 그 과정에서 ‘쫄보’인 우리는 착각을 한다. 평가하는 사람이 평가할 자격이 있는 줄 아는 것이다. (63쪽)
인간관계에서 주인-노예의 관계가 생각나는 글이다. 평가 당하는 사람은 노예, 평가하는 사람은 주인. 책의 제목 『신경 써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도 나를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에게 ‘됐어요, 당신의 노예 따위는 거절하겠습니다’라고 딱 잘라 거절하는 느낌이 든다. 한발 더 나아가 ‘반격’하는 느낌.

우리는 스스로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자신의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 ‘무리 생활’을 선택한 순간부터 그렇게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것 같다. 사회화가 끝난 ‘만들어진 성인’보다 본능에 충실한 어린아이들을 보면 확실히 와닿는다. 아이들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자기보다 약하거나 만만한 친구들을 단숨에 파악하고, 말로 놀리거나 심하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괴롭힌다. 이건 의도적인 행동이라기보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충동, 행동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애만 보면 못마땅하고, 보기 싫고, 실컷 괴롭혀야 마음속 분이 풀릴 것 같은 그런 욕구 불만 상태. 아이들은 거의 정확히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골라내고,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해 상대를 더욱 심리적으로 약하게 만든다. 그들의 관계는 곧장 주인-노예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이런 관계는 짧게는 며칠이나 한 학기, 길게는 졸업할 때까지 이어진다. (괴롭힌 당한 아이의 트라우마는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 어떤 아이들은 다 큰 성인이 된 후에도 심리적 노예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인간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은 이 본능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구’라 불러야 할까.

대체로 사회화가 끝난 성인이 되면 이런 괴롭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주인-노예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인간의 마음은,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이 보다 우위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관계’에 대한 책이다. 상대방과 나의 관계, 나와 나의 관계. 저자는 현재 유튜브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는 방송을 운영 중에 있다. 몇 번의 취업과 퇴사, 연애 경험, 대인 관계를 바탕으로 저자가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송인 듯하다. 저자의 유튜브 방송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책으로 읽기에 사람들의 고민 대부분은 ‘관계’에 대한 것이다다.

저자 역시 ‘관계’로 늘 애먹고 힘들어했다. 언론사 퇴사, 스타트업 취업,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에서의 활동 등등. 대부분의 문제는 ‘관계’에서 왔다. 열악한 노동 환경, 정당한 보상을 못 받은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오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회사에서 자신의 역할을 뚜렷이 하지 못했고, 대표(혹은 상사)에게 정당한 보상 및 노동 처우 개선을 요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우이지만, 연애에 관하 어떤 상을 그려놓고 그에 맞춰서 상대방에 의지하거나 요구한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고민은 이렇게 관계에서 오는 문제다. ‘말을 꺼내기가 애매한’, ‘나도 그 사람 사정 아는데 그래서 요구하기가...’ 등등의 생각으로 자신을 ‘사려심 있는 乙’의 입장에 둔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乙을 딱 ‘노예’라고 부르겠지.

어쨌든 이 책은 저자가 ‘노예’의 입장에서 ‘주인’의 입장으로 변해갔던 경험담과 이제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느껴졌다. (유튜브도 그러할 것 같다) 이제 ‘주인’의 입장에서 누군가 자신을 노예로 만들려고(영향력을 미치려고) 조언을 하려 하는 사람에게 ‘신경 써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라며 일침을 놓는다.

제목만 보면, 세상 오지라퍼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구구절절 쓴 책 같지만 이런 내용보다는 ‘개인의 관계’에 집중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내용이 더 많다. (제목은 요즘 ‘언니들’의 유행에 편승하여 제목을 이렇게 단 것 같다) 또 저자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음.

평소 다른 사람 이야기에 관심 있고, 똑 부러지게 말 잘하는 사람의 글을 즐겨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 내가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기에,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때 나는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내가 생각한 '자아실현'에 더 열을 올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39쪽)

- 내가 성장할 기회보다 등에 질 수 있는 책임을 더 중요히 생각하게 됐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공짜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51쪽)

- 나는 그건 사과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구체적인 사과를 받으라고 조언했다. (...) 피해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면 채무자의 채권처럼 든든한 압박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67-68쪽)

- 밀고 당기기를 잘하는 그들은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솔직하고 당당했다. 원하는 것을 내보이며 연인과 타협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행동했다. (93쪽)

추가> 비영리단체 대표인 아는 동생을 이제 더 이상 탓하지 않는다고 적었는데 바로 그다음에 나오는 ‘피해야 할 나르시시스트의 특징 3가지’를 읽으면 그 아는 동생을 조곤조곤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처럼 읽힌다. 말로는 이제 탓하지 않는다 해도, 나르시시스트 특징을 적을 때는 어떤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음. 생각과 말로 탓하지 않는다는 것과 진심으로 탓하지 않는 것의 괴리는 크다. 나 역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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