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망, 로마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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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이자,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김상근 교수의 신작이다. 김상근 교수는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이탈리아와 명나라 교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와 신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저자가 신학을 전공한 건지, 역사를 전공한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역사 속의 신학을 전공하신 건가? 일단 책날개에 있는 저자의 이력만 보고, 로마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나의 오해였다. 이 책은 로마의 역사를 말한다. 로마의 첫 시작이었던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로마 창건 이야기에서부터 로마 왕정, 공화정, 제정 시대를 거쳐, 중세 시대로의 문을 열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까지. 그리고 시간을 건너 뛰어 그리스, 로마를 이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잇는다. 로마를 이야기하는데 종교 이야기는 빠질 수 없지만, 역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만 언급할 뿐이다. 저자의 전공만 보고 오해했던 나를 반성한다. 이 책은 로마의 역사와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오면 예술(건축, 조각, 회화)도 다룬다.

이 책의 부제가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이다. 로마에 갈 사람들, 혹은 로마에 다녀온 사람들이 읽으면 시야가 좀 더 확장되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현재 로마에 가서 볼 수 있는 유적들을 토대로 그 유적에 얽힌 인물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서 로마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면, '테르미니 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 역의 지하로 내려가면 맥도날드가 있는데, 그 맥도날드에 뜬금없이 성벽이 서있다. 이 성벽은 바로 '세르비우스 성벽'! 세르비우스 왕이 이방인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세운 벽인데, 재밌게도 지금은 이방인들로 북적이는 맥도날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모르고 테르미니 역에서 맥도날드에 가면 성벽이 그냥 인테리어처럼 느껴지겠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가면 역사의 아이러니에 보다 재밌게 로마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꼭 여행자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거의 교양 역사 서적에 가깝기 때문에 역사서로 읽어도 무방하다. (나는 이렇게 읽음) 게다가 단순하게 역사적 사실만 나열한 게 아니다. 저자가 인문학자로서, 로마의 유명 정치인이나 철학자에 대해 깊이 다루었다. 물론 이 사람들을 평가한다기 보다, 그들이 남긴 저서의 글 중 일부를 발췌했는데 그 발췌한 내용이 좋았다.

그대는 항상 없는 것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들은 무시하니 삶은 그대에게 완전치 못한 것으로 즐기지 못한 것으로 지나가고, 죽음은 예기치 않은 그대 머리맡에 다가서는 것이다. (...) 이제 그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을 떠나보내라.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자, 이제 다른 이들에게 양보하라. (135쪽,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재인용)

신은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원하는 것이 있다면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이고, 괴로운 것이 있다면 참고 견디라! (137쪽,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재인용)

인간이란 도움을 받는 데 보은하기보다 해 입은 데 보복하는 쪽에 더 쉽사리 기울어진다. 보은은 짐스럽게 여기는 반면, 보복에는 득이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 로마에서 원로원은 환희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과거 원수들이 관행적으로 누려온 모든 영예를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부여했다. (209-210쪽, 타키투스, 『역사』 재인용)

나는 내 부친의 모습을 통해서 성품이 더 온화해지는 법을 배웠고, 심사숙고한 후에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그것을 지키는 결단을 배우게 되었다. 그분은 언제나 자신을 다른 시민들과 동등하게 간주했다.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할 때 그들을 강제로 초청하지 않았고, 외국을 여행할 때 무조건 동행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만약 사정이 있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도 급한 용무 때문이었다면 그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분은 대중의 갈채와 박수, 신하들의 아첨과 아부를 즉각 차단하였다. 그는 주위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평범한 삶을 영위하셨다. 부가 허락되어도 교만하게 사용하지 않으셨고, 지나친 소비를 하지 않으셨다. 부가 허락된다면 그것에 대한 집착 없이 사용하셨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부를 탐하지도 않으시는 분이었다. 그분은 특별한 장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시기 질투하지 않고 그를 인정해 주셨다. 언변이 뛰어나거나,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특별히 인정해 주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셨고, 그들의 재능에 걸맞은 명예를 주셨다. (224-225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재인용)




이 책을 읽고 되게 다양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역사란 무엇인지, 한 사람의 인생은 무엇인지. 이 책에는 1,000년 동안의 로마 이야기와 르네상스 시대 특출난 인물들에 대해 다루는데 그 속의 인물들 이야기를 읽으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대단했던 로마, 그중에서 보석 같은 사람만 뽑아 언급했기에 그들의 인생이나 가치관에 비해 내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한 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 거냐고. 그렇다고 내가 역사적 인물이 되고 싶다는 건 아니고,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위에 발췌한 글을 직접 쓴 루크레티우스나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이 책의 뒷부분에서 다루는 미켈란젤로나 카라바조의 이야기를 읽으면, 이들은 정말 특출난 사람인데도 한 평생 동안 마음을 다해서 살았단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범인(凡人)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해 살고 있는지. 범인(凡人)이니까 더욱 마음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위대한 로마에, 위대한 사람이 있었다. 그 로마를 재발견하고 재현하려 했던 르네상스도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처럼 대단했다. 때로는 또 다른 거인인 미켈란젤로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해 본 시간이었다.

이 책이 단순히 로마에 대한 이야기나, 역사에 대한 이야기나, 건축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인물의 이야기를 다뤄서 참 좋았다. 겉만 훑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나 삶의 태도에도 조금 가닿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마음을 다해서 살고 싶다.

인문학이 곁들여진 이야기는 역시나 '나'를 비추고, '나'로 돌아올 수밖에 없구나.


+ 참, 나는 '로마'하면 독일의 아동문학 작가 '미하엘 엔데'가 떠오른다. 그의 단편집 『자유의 감옥』을 읽으면 '로마'가 얼마나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인지 알 수 있다. 어떤 문을 통과하면 원근법에 따라 실제로 사람의 크기가 작아지는 곳이 있고, 한 공간이 다차원으로 이루워져 있다든가, 수없이 많은 문을 놓고 어떤 문을 선택할지 기로에 선 남자가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이 남자는 결국 장님이 되고 예언자 같은 사람이 된다), 찾으려고 하면 결국 찾는다는 환상 동화 이야기에는 트로이의 유적지를 찾은 하인리히 슐리만 이름이 짧게 언급되기도 한다. 거기에 '철학'까지 얹어 놓으니 더 좋다.

로마 건축에 있는 수많은 문들과 기둥, 원근법을 보면 이런 작가적 상상이 절로 들 것 같고, 폐허에서 옛 사람들을 생각하면 절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로망, 로마』를 읽으니 미하엘 엔데가 로마에서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지 조금 알것 같다. '로마'는 이전에는 나에게 '그냥 로마'였는데, 이제는 좀 다르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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