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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은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해답에 목말라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조언을 듣고 때로는 직접 부딪쳐가면서 답을 구합니다. 저는 김육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으로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분이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나에게는 삶을 던져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가?'를 고민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삶이 뭐 다 그렇지'라는 말 대신 '삶은 이런 거지'라는 말로 바꿔봤으면 합니다. 그런 귀중한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는 이전보다 더욱 충만하게 채워질 테니까요.
190-191쪽
역사 강사로 유명한 최태성 선생님의 신간 『역사의 쓸모』
최태성 선생님이 역사를 공부하며 만난 사람의 이야기로 역사를 통해 오늘의 '나'가 무엇을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지 서술한 책이다. 사실 역사는 시간이란 것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과 역사적 사건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다양한 무늬를 수놓은 직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짜인 역사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대상은 다양하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역사에서 사건이 보일 수 있고, 흐름이나 발달과정이나 전개 과정일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역사에서 사람이 보일 수 있다. 최태성 선생님은 이 여러 것 중에서 '사람'을 꼽는다.
어떤 사람은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은 착각이고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는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예요. 역사를 공부했음에도 살아가는 데 어떠한 영감도 받지 못했다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7쪽

이 책은 최태성 선생님이 역사를 통해 만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거의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인데,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그들의 이야기는 살짝 그동안 몰랐던 그들의 이야기이다. 가령 대동법의 전도사(?) 김육을 들 수 있다. 아마 잘 기억은 안 날 테지만, 그래도 국사 시간에 대동법을 배운 기억이 있는 사람은 '김육'도 살짝 기억이 날 거다. 김육은 오랜 우여곡절 끝에 관직에 나아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대동법의 전국 실행을 위해 헌신을 다한 사람이다. 대부분 '대동법-김육' 이렇게만 기억하고, 김육이 왜 대동법 확대에 애썼는지 그 이면의 이야기는 잘 모를 것이다(나도 배운 기억이 없음). 이 책에 그 이야기가 적혀 있다. 김육은 12살이던 때 임진왜란이 터져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얼마 안 돼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피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육은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성균관 유생들이 처벌을 받았고 김육 또한 대과 응시 자격을 잃고 높은 관직에 나갈 길을 잃는다. 조정은 연일 시끄러웠고 김육은 귀농한다. 김육의 일가는 가난하게 살았는데, 집 지을 돈이 없어 움막 생활을 하고, 숯 장사를 한다. 가평에서 숯을 만들어 한양에 가 숯을 팔았다. 이렇게 가평에서 서울을 오가며, 힘든 생활을 하면서 바닥에서 김육은 백성들이 얼마나 피폐한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임금이 바뀌었고, 김육은 관직에 나갈 기회를 얻는다. 말단 관료로서는 세상을 바꿀 힘이 약해 다시 과거를 보았고 장원 급제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50대가 되어서야 관직에 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대동법 이야기를 꺼낸다. 반발이 심상치 않았다. 대동법은 땅을 많은 가진 사람에게 불리해서 대신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육은 본인의 인생을 대동법에 걸었고, 틈만 나면 대동법을 주장했다. 그래도 대동법의 전국 확대는 요원해 보였는데, 나이 70에 새로운 효종이 김육을 조정에 붙잡아 두기 위해 충청도 지역에 대동법을 시행해 준다. 그리고 79세가 되어 김육은 임금에게 유언 상소를 올리는데, 바로 호남 지역의 대동법 시행이었다. 한 평생을 다 바쳐 대동법 시행에 앞장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교과서만 보고 '대동법-김육'으로 외우면, 대동법 시행 이면에 있었던 사람 '김육'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대동법 옆에 있는 김육이란 사람을 만나면, 곧 또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내 생을 다 바쳐 무엇을 이룰 것인가 하는.
또 이 책을 통해서, 나혜석을 만났다. '나혜석'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냥 단순히 그 당시에 파격적인 행보를 한 신여성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나혜석의 글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중략)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그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그러니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255쪽, (「이혼고백서」 재인용)
상당히 시대를 앞서는 글이다. 한이 서릴 수 있는 인생을 살다간 나혜석. 말년이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글이나 그림으로나마 그녀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여성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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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를 읽고 나만의 역사에서 만난 사람이 떠오른다. 실존 인물은 아니고, 조선 초기 김시습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에서 만난 인물이다. 금오신화에는 귀신이 나온다. 대부분 한 맺혀 죽은 귀신들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한 맺힌 귀신이 아니다. 한이 맺힌 건 같지만, 한의 이유가 완전히 다른다. 그냥 결혼을 못 해보고 죽어서 한이란다. 그래서 똑똑한 남자를 유인해서 서로 멋진 시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통하고, 그날 밤 탁! 몸도 통한다. 귀신은 며칠 더 정을 통하다가, 이승에 대한 미련일랑 탁 털어버리고 쏘 쿨~하게 저승으로 올라간다. '배우자를 못 만난 게 한이었는데, 내 일생의 배우자를 만난 것으로 치고 더 이상 미련 두지 않고 저승으로 올라가련다' 귀신은 이런 마음이었던 거다.
조선 전기여서 나올 수 있었던 내용인 것 같은데, 어쨌거나 참 멋졌다. 인물들이 하나같이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하고, 배우자 선택도 부모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남자나 여자나 본인 스스로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쏘 쿨하게 지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향은 똑부러지게 표현한다. 조선 중기 몇 차례의 전쟁으로 세상이 보수적으로 변했지만, 조선 전기만 해도 이렇게 사람들이 멋지게 살았구나 싶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금오신화라는 책으로, 나는 조선 전기 때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나도 이렇게 멋지게 살겠다고 결심했었고. 물론 결심대로 잘 안되지만.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엮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를 읽고, 내가 만난 역사 속 인물들이 떠오른다. 그 사람들이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너는 어떻게 살래?'라고. 왠지 손을 뻗으면 가닿을 수 있는 멋진 세계가 펼쳐질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나 자신아. 나는 어떻게 살래?' 『역사의 쓸모』를 덮으니, 이 질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