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 김대식의 로마 제국 특강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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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불안한 중국과 미국, 세계의 화약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그 주위 이슬람 국가들, 나를 잊지 말아요 러시아, 있는 듯 없는 듯하나 세계 최고의 역량을 가진 인도, 사려 깊고 이성의 나라인 듯하지만 결코 패권을 놓을 생각이 없는 독일, 극심한 빈부격차로 언제나 아수라장인 남아메리카 등 오늘도 역사의 한 페이지는 다사다난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세계정세는 오래전부터 불안했지만, 최근 10년간 극도로 불안해진 건 사실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본주의의 추악한 모습, 세계 패권에 도전장을 낸 중국과 이에 대해 심기가 불편한 미국,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쏟아져 나오는 난민 문제로 세계는 지금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듯하다. 또 이와 맞물려서 세계 경제 흐름도 크게 나빠지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었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워낙 유명한 말이며,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에도 언급되는 말임)... 역사에 희극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비극은 계속 되풀이되는 듯하다. 그래도 역사를 공부하고, 오늘을 읽으면 그나마 나은 내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읽은 책이 김대식 교수의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이다.


     이 책을 읽은 이유

일단 김대식 교수의 책이라서 읽었다. 김대식 교수의 책은 출간되는 족족 다 읽고 있다. 아마 처음 접했던 책이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일 것이다. 한창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인공지능이 관심을 많이 받던 때다. 그때 김대식 교수의 책을 읽었는데, 좋았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문체는 간결하며 가독성은 좋아 이 사람의 책은 다 읽겠다고 결심하고는 다 읽었다. 워낙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글을 쓰는 분이다 보니, 각 책에 대한 인상은 다 달랐지만 대체로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 김대식 교수의 이 책이 나와서 읽었고,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 것이다.

또 김대식 교수의 다른 책에서인지, 칼럼에서인지 로마가 왜 멸망했는지 쓴 글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지금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위기가 꼭 로마가 망하기 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글이었는데, 인상 깊었다. 그래서 책 설명에 이 책이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뤘다기에 주저 없이 읽었다.


     김대식 교수는 취미 역사가?!

김대식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뇌과학. 이런 분이 로마 역사에 관한 책을?! 물론 전공이 역사가 아니고,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서 책 중간중간에 논란이 될 만한 서술이 있다. 그럼에도 다른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역사 책을 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읽어보니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료 수집도 열심히 하신 것 같다(네이버에는 검색이 안 되는 고대 유물의 사진이나 소개가 꽤 된다. 로마인들의 변기솔 같은 거... ㅋㅋ 아마 외국 학계에 발표된 걸 수록한 듯. 아무튼 이런 자료는 우리나라에서는 귀하다) 사실 취미로 역사 공부를 하거나 역사책을 쓰는 분들이 꽤 많이 있긴 하다. 또 그분들 중 소수이기는 하지만 학계에 이름을 남긴 분도 계신데, 어쨌거나 취미로 역사 공부를 하시는 김대식 교수! 덕분에 교수님이 역사를 소화한 만큼만 글로 쓰다 보니 대체적으로 내용이 쉽고, 간결한 편이다. 그래서 로마에 대해 잘 모르는 분도, 이 책을 읽기에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쓴 책일수록 책 내용이 어려울 때가 많다)





     책의 주제 및 내용

책은 로마가 어떻게 부흥하여 지중해와 유럽 패권을 장악하고 확장하다가, 쇠퇴 후 망했는지 쓰고 있다. 단순히 로마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고, 김대식 교수에겐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 있다(사실 이 책은 건명원이라는 곳에서 강의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강의가 먼저고, 책은 그다음이다).

위대한 제국 로마도 결국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영원한 제국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제국을 세운 로마보다, 제국을 다시 잃은, 멸망한 로마가 오늘날 우리에게 더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로마는 멸망하기를 거부했기에 어쩌면 여전히 오늘날까지 먼 거울로서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비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18쪽

로마 제국은 남유럽 모든 영토와 라인강 동쪽 독일을 제외한 서유럽 국가의 대부분, 발칸반도와 터키, 시리아, 오르단,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그리고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와 모로코로 구성된 북아프리카까지 지중해를 둘러싼 모든 영토들을 정복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룸', 즉 '우리의 바다'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결국 전 세계를, 지구를 지배하는 문명의 시작은 로마인 것이다. - 20쪽

로마는 멸망한 지 1,500여 년이나 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세계 패권을 장악한 나라가 유럽과 미국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의 근간은 바로 로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은 시대마다 그 모습을 달리했지만, 약탈적 팽창 정책을 취했고 이는 로마 제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서양의 것을 변형해 받아들인 우리나라나 다른 동양 나라들도 어느 정도 로마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정치 체제나 경제 체제의 장단점은 로마 시대에도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로마 시대 때 문제들에 비춰보고 고칠 수 있는 건 고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극복하자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걱정을 한다. 직업의 47퍼센트가 사라진다는 예측에 실질적인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과정을 로마 역사 속에서 봤다. 

제국의 팽창 결과 전쟁의 장기화로 시민들은 생산력을 상실하고 극심한 부채에 시달렸다. 여기에 정복을 통해 증가한 노예들 때문에 직업까지 잃는 상황에 처했다. 극심한 양극화로 당시 로마 공화정을 유지하던 중산층은 결국 붕괴하고 이는 후에 로마 멸망의 주된 이유로 기인한다.

로마와 현재 우리가 다른 점은 영토의 혁신이 기술의 혁신으로, 새로운 생산적 노동이 노예에서 기계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당시에도 노예 수준의 일을 했었던 사람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었던 것과 같이, 지금도 같은 수준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실업자가 될 것이라 예상 가능하다. 여기에서 오는 양극화의 문제 또한 이미 로마 역사에서 답습한 내용이다.

로마는 불평등한 부를 다시 분배하고자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투쟁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공화국을 뒷받침할 중산층이 무너지자 결국 로마는 포퓰리스트 아우구스투스의 등장과 함께 제국으로 탈바꿈한다.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각국의 '강한 남자'들은 오늘날 세계화로 촉발된 극심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자극하며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 325~326쪽

기계/노예로 인한 실업 문제, 극심한 불평등으로 분리되는 사회(보수/진보), 로마 시민들의 여성과 어린이, 외국인에 대한 혐오(이 시대 여성과 난민에 대한 혐오), 이에 편승해서 나타난 대중 영합 주의자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이미 로마인들이 겪었던 문제들이다.

김대식 교수가 뇌과학을 전공한 분으로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면서 앞으로 어떤 사회가 도래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준 것이 아마 '로마'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전공이 완전히 다른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책을 써낼 만큼 깊게 공부하신 게 아닐까 싶다.

정말 지금의 모습과 로마가 망할 때의 모습이 많이 닮았다. 역사란 나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지만, 어쨌거나 조금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역사의 흐름에 휘말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사실 요즘 세계정세가 안 좋아서 걱정이 많고(일단 피부로 와닿는 건 경제 문제 특히 금리다),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이란 '낯선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럴 때 로마의 역사를 읽는 건 지금 우리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어떤 해결 실마리는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또 인간은 몰라서 막막한 것과 조금이라도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인간은 문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때 안심하는 존재이므로. 아무튼 카오스 같은 현재 우리에게 로마가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빈부 격차와 우리 아닌 타인에 대한 혐오의 문제는 이런 문제를 겪었던 로마를 타산지석 삼아 극복해야 할 것 같다(하지만 과연 쉽게 극복이 될까).

나는 이 책에서 특히 로마 이전의 시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노아, 미케네 문명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제0차 세계대전과 이후 암흑기에 대한 이야기도... 어쩌면 로마보다, 그리스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각 문명이 전쟁했던 이야기가 더 우리에게 시의적절한 지도 모르겠다. 외교 면에서는 그렇다.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는 로마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외교 문제는 그리스 이전 지중해 나라들이 각축을 벌이고 멸망하던 그때가 우리에게 유의미한 교훈을 주는 듯하다. 우린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므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을 다 멸종시키고 혼자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의 피는, 고대인들을 거쳐 지금 우리 현대인들에게까지도 이어져 흐르고 있다.

세계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궁금하신 분들, 과거에서 오늘의 갈등에 대한 해결 실마리를 찾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가독성이 좋고, 내용도 쉬워서 잘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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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마추어가 쓴 역사서로 일정 부분 단점과 한계가 있다. 일단 사견이 많고, 오류 또한 있다. 특히 269쪽이다. '임진왜란 때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용병들이 참여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때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일찍이 앞선 서양의 기술들, 특히 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임진왜란 당시 전 세계에서 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일본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라는 이 부분이다. 일본이 무엇에 승리했다는 것인지? 문맥상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런데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망할 직전까진 갔어도 결코 망하진 않았고, 일본도 따라서 승리하지 않았다. 왜구들이 한반도에서 썰물 빠지듯 쏵 물러갔는데 일본이 승리했다니. 이 부분은 엄청난 오류다. (김대식 교수의 여러 글에서 우리 한국을 문제 많고 답답한 나라로 서술하여 읽을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넘겼는데, 임진왜란에 대한 저 말은 좀 많이 아니다. 중쇄 들어가면 저 부분은 꼭 수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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