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태어났으니 산다 - 열심히 살기는 귀찮지만 잘 살고는 싶은 나를 향한 위로의 한마디
해다홍 지음 / 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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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태어났으니 산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누구나 다.


어떤 삶을 살든 중요한 건 그 삶이 나에게 만족스러우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샤르트르의 『닫힌 방』을 읽었다. 샤르트르의 희곡 작품 중 가장성공한 작품으로 몇 겹의 은유가 있으나 표면적인 이야기는 어렵지 않다. 그냥 남자 하나, 여자 둘이 한 방에 갇히고 갈등하는 이야기다. 여기 닫힌 방은, 열리지 않는 방이다. 방 안을 비추는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어두워 지지 않는다. 항상 밝다. 밝게 우릴 비춘다. (아, 이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부담스럽다) 그리고 배도 고프지 않아 먹지 않아도 된다. 아니, 먹을 게 없다. 먹을 게 없고 배도 고프지 않다. 방안엔 오직 색이 칠한 벤치 3개만 놓여 있을 뿐이다. 보통은 닫힌 방, 그것도 더운 방에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이 갇히면 에로틱한 상상을 할 테고 어딘지 즐거운 면이 있겠다 싶지만 이들에게는 이것이 지옥이다. 꺼지지 않는 불, 어두워지지 않는 방, 잠도 오지 않는 하루, 아니 시계도 시간도 없어 하루라는 것도 닫힌 방에서는 무의미한 것, 없는 것이다. 이곳은 과연 어디일까. 이곳은 바로 지옥이다. 샤르트르가 만들어낸, 그가 생각하는 지옥!



<타인은 지옥이다!>



현재 동명의 드라마가 제작 중인 것으로 아는데,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바로 샤르트르의 「닫힌 방」에서 나왔다. 이 책을 읽고 해다홍 님의 『일단 태어났으니 산다』를 읽으니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강하게 떠올랐다.




뭔가 책은 샤방, 가벼운 느낌이지만 음 책 느낌은 다소 무겁다. 그렇다고 어렵거나 슬프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음, 쉽게 말하면 우울할 때 보면 더 우울해지는 책이랄까. 어떤 분들은 위안을 얻는다고 하는데 나는 위안보다는 우울을 얻었다. ;ㅅ;



어쩌면 지금의 내 사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샤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처럼, 언젠가부터 집이 나에게 '닫힌 방'이 되었고, 닫힌 방 속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 나에게 지옥이 되었다. 이런 말이 너무 과격하고, 좀 맞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닫힌 방」을 읽으면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달 전에 독립을 했고, 근 한 달 동안 나는 정말 말그대로 천국을 맛보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본가에 간 어제 또 그 지옥의 느낌을 조금 느끼고 급 우울해 하며 집으로 왔지만.



나는 『일단 태어났으니 산다』를 그릴 해다홍 님이 무슨 이유로 우울하고, 타인에 대해 그런 느낌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 이유는 나오지 않고 감정만 직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인데, 그래서 어딘가 공감이 되면서도 지금 나에게는 위험한 것 같았다. 타인에게서 받는 울화를 느끼지 않기 위해 현재 나온 나로서는.



나도 사는데 이런 이유, 저런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꼭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내 생이 그리고 내 오늘과 지금 이 순간이 만족스러웠으면 한다. 이 만족은 말초적인 만족이나 흥분과 다르며, 억지로 나를 누르고 인내하는 것과도 다르다. 내 오늘 하루와 생이 하나의 게임처럼 내가 정한 룰에 따라 즐겁게 하나, 하나씩 완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못하다가 game over가 뜨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처럼. 어딘가 깊이, 느껴지는 만족감. 이만하면 됐다, 좀더 잘했으면 싶다, 이쪽을 좀 더 손볼까. 등등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어쨌거나, 사람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늘 움직이고 변화하는 존재로 만나는 책도 그 때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나와 좀 맞지 않았지만 가끔 생각날 때 아무 데나 펼쳐서 읽으면 공감되고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이렇게 재밌는 장면도 있으니. ㅋ 피식 웃으며 공감했다.




덧붙임> 참, 저자의 강아지가 예전에 내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랑 똑같아서 정말 반가웠다. 룽지 +ㅁ+, 성은 누요, 이름은 룽지. 누룽지. 갈색이, 정말 누룽지 빛깔이 감돌아서 내가 지어준 이름이었고 그 이름이 참 좋았는데. 이 이름을 학교에 가서 친구에게 말했고, 이 말이 또 다른 친구 친구들에게 흘러흘러가, 자기들끼리 "어떻게 같이 사는 강아지한테 먹는 걸로 이름 붙일 수 있지?"라는 말을 들은 게 기억이 난다. 그냥, 내가 그 애한테 못 마땅해서 그렇겠지, 정말 먹는 걸로 이름 지어서 그런 말을 했을까 싶다. 햐, 왜 갑자기 이런 기억이 떠오르지? 악. 타인은 지옥이다,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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