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평점 :
이 모든 게 꿈이었을까, 환각이었을까, 상상 혹은 망상이었을까.
다 읽고 나서 학창 시절에 배웠던 「구운몽」이 떠올랐다. 성진이라는 승려가 하룻밤 꿈을 꿨는데 그 꿈속에서 성진은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살며 파란만장한 生을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점은 꿈속의 양소유의 삶이 보다 현실적이고, 꿈밖의 성진의 이야기가 되려 꿈 혹은 환상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최수철의 5년 만의 소설 『독의_꽃』도 그러하다.
『독의_꽃』의 시작은 이렇다. 어떤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남자가 한 달여 여행을 다녀온 후 냉장고 속에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고 급성 식중독에 걸려 병원으로 실려온다. 응급처치를 받고 깨어났지만 비몽사몽 한 남자. 입원실로 옮긴 후 다소 기운을 차린다. 하지만 걷잡을 수없이 쏟아지는 잠과 무기력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도 그의 몸과 마음을 오싹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병실 바로 옆 환자였다. 그 환자도 본인처럼 중독 상태로 입원한 듯했다. 몰골은 오싹하고, 기이했으나 어딘지 고고해 보이기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외모가 아니었다. 병원 관계자들이 병실에 없으면, 이 환자는 염불을 외듯, 이상하게 웅얼거리는 소리로 어떤 말을 했다. 처음엔 알아듣기 힘들고 기분이 너무 나빠 듣기 싫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정신을 집중해 그의 말을 듣기 시작하다 곧이어 빠져든다. 묘한 흡입력과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렇게 시작하고, 소설의 중심축은, 바로 옆 환자의 웅얼거리듯 끊임없이 말하는 독과 관련된 본인의 연대기이다.

소위 액자식 소설이다. 위에 잠시 언급한 「구운몽」과 비슷한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독의_꽃』 주인공의 이름이 '조몽구'이다. 이름 뜻을 풀이하면 '아홉 개의 꿈', 그렇다면 '구운몽(아홉 구름의 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구운몽」이 떠올랐고, 『독의_꽃』 소설은 마치 첩첩산중에 그 산 사이사이로 안개가 스며들어 한 치 앞도 안 보이다가, 어느 순간 안개가 그쳐 모든 게 또렷이 보이고 또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안개로 뒤덮여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이 안 된다.
나 개인적으로 안개 낀 산을 좋아한다. 너무나 매혹적이고, 선선한 느낌이 나를 정화하는 듯 신비로운 느낌이 감돈다. 이런 느낌은 아마도 산에 있는 대부분의 생명들, 즉 식물들이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개가 짙어지면 일제히 어떤 화학 물질을 뱉으며 자라는 느낌이 든다. 모든 식물이 그러하기 때문에 각기 식물이 자란다기 보다, 산 자체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자라는 느낌이 든다. 정말 묘하고, 매혹적인 느낌.... 그런데 인간은, 이런 순간이 위험하다. 안개가 꼈을 때 앞을 분간할 수 없어 길을 잘못 들거나 발을 헛디뎌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수철의 『독의_꽃』은 이런 느낌을 준다. 문체가 간결하고 좋고, 소재로 다루는 독도 어딘가 매혹적이어서 계속 읽게 된다. 하지만 이 느낌은 결코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밝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서 어떤 보랏빛을 띠는 작은 맹독성 입자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도 든다. 소설의 인물도 결코 밝지 않다. 그 끝이 다 비극적이다. 독으로 인한 죽음. 독으로 인한 죽음도, 끔찍한 사고로 인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인이 보기 힘든 형상이다. (만약, 『독의_꽃』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몇 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 <곡성>과 비슷하지 않을까. 본 지 오래되어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영화에도 독성 물질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의 주요 화두는 독과 약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으며, 때로 독이 약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는 약이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경계가 모호하며, 중요한 것은 '상황'과 '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한약이나 양약이나,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은 일반인에게는 '독'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건 한약과 양약 모두 약을 섭취하는 양이 중요하고, 언제 먹는지도 중요하다.
독과 약의 경계가 모호할 진데, 우리 인간관계도 똑같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화자와 화자의 부모의 관계다. 화자의 부모, 즉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상당히 이상야릇했다. 어머니가 속아서 결혼했다고 할 수 있는데,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어머니는 아버지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 싫어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은 화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본래 어머니는 화자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싫어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수를 써서 기어코 임신을 시켰고, 어머니는 화자를 잉태한다.
잉태한 다음에도 싫은 마음은 계속 있었던 지라, 어머니의 몸에서 독소를 만들어 태아를 공격했다. 태아는 독의 공격을 받으며 역시 독으로 맞섰다. 엄마의 독은 아이에게 치명적이었고, 아이의 독 역시 엄마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기적적으로 살았고,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자 엄마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둘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웠는지, 아버지는 그 둘을 심하게 질투한다. 이 질투심은 훗날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아버지의 마음에 언제는 독이 있었고 이 독이 어머니를 잠식해 간 것이다. 이런 기묘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화자 역시 기묘한 운명을 타고 날 수밖에 없었다. 독에 관해 남들과 다른 체질적 반응을 가진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말 그대로 '독'이기도 했으며 '약'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독특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의 침이나 정액은 남들과 달랐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화자에게 끌렸지만, 키스를 하거나 사랑 행위를 하고 나선 기겁하여 그를 떠났다. 보통의 여자들에게 화자의 침이나 정액은 독이었기 때문이다. 화자는 그렇다고 외롭거나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과 섞일 수 없다는 걸 본인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운명 같은 여성들이 나타났고, 그 여성과는 사뭇 다른 관계를 맺었다. 서로에게 독처럼 작용을 하기도 하고, 해독제인 것처럼 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독제도 본래 독이다. 해독 후에 더 강한 독으로 서로가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런 독과 해독제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도 참 닮았단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주제처럼 세상만사 독 아닌 것이 없고, 약 아닌 것이 없고 모든 게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지금 인류야 많은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그냥 고개를 숙여 길바닥 아스팔트 틈으로 난 작은 이름 모를 한 송이도 매 순간 처절하게 세상과 싸우고 있고, 이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독을 품는다.
지구가 생기고 처음 대기라는 것이 생겼을 때 지구에 산소가 희박했다. 또 기껏 생긴 생명체들은 산소를 싫어했다. 산소는 어느 산소보다도 독하고 몸에 유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체들은 호흡하고 소화하며 몸에 해로운 산소를 몸밖으로 배출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그들이 뿜어낸 유해 가스인 산소가 지구에 많아지면서, 생태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 유독한 산소를 흡입하여 살기 시작한 생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 생명체의 머나먼 후손인 우리는, 그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유독한 산소를 흡입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유익한 산소라는 것도 너무 많으면 산소에 중독되어 죽고 만다. 모든 것은 적정량이 중요하다. 이 양이라는 것은 마치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유해와 유익의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사실 독뿐만 아니라, 위에 말했듯 인간관계도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파멸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적당한 선을 지키고 그 사이에 선선한 바람이 오가도록 유지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서로의 독에 영향받지 않고 공존공생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오랜만에 참 괜찮은 한국 소설을 읽었다. 구성도 탄탄하고 문체도 좋다. 한국 소설 특유의 파괴적인 낭만주의적 성향이 느껴진다. 주제나 소재는 다르지만 탐미주의 소설인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가 떠올랐고, 본인의 예술을 위해 딸을 죽음으로 내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도 떠올랐다. 『독의_꽃』에서도 이 소설들과 똑같지는 않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느끼거나 얻기 위해 여럿 죽음으로 내몰린다. 이런 이야기들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어떤 호기심에 끝까지 읽게 된다. 아무튼 요즘 작가들도 이런 소설을 쓰는지 몰랐는데, 근래 읽은 현대 한국소설 중 가장 잘 읽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몇몇 구성에서 틈이 보인다는 것. 조몽구의 부모가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다닌 사람들인데, 나중에 보면 조몽구는 거의 21세기 대학생 같다. 학교에서 막 프레젠테이션 하고 삼촌네 집에서 컴퓨터를 하며 소일한다. 왜?! 좀 이해하기 힘든데, 뭐, 이게 다 독으로 인한 환각, 망상이었다면 몰라도, 좀 납득은 안 간다.
또 군데군데 상당히 에로틱한 부분이 있다. 흥미로운 건 딱 저자가 남성임이 드러난다는 것. 이 말인즉슨, 군데군데 남성들의 판타지가 스며있다. ㅋㅋ (간호사가 갑자기 페로몬에 홀린 듯 거기에 입을 갖다 댔다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