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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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는 늦가을, 무민 가족이 없는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의 마지막 작품, 『늦가을 무민 골짜기』 마지막 작품인데 이 작품 어디에도 무민이나 무민파파, 무민마마, 스노크메이든이 없다. 무민의 부재, 무민이 없는 만큼 겨울을 코앞에 둔 늦가을이 더욱 쓸쓸하고 허전한 것 같다. 하지만 무민 가족이 없는 무민 골짜기에 새로운 인물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엮는다. 무민 가족과 다른 방식으로, 다른 느낌으로.



개인적으로 무민 시리즈 중에서 『늦가을 무민 골짜기』가 제일 좋았다. 다른 소설들도 다 재밌고 좋지만, 다른 소설들은 주로 '모험'이 주요 소재다. 지구가 너무 뜨거워진다든지, 겨울잠 자는 무민이가 혼자 잠에서 깨 긴긴 겨울을 혼자 나야 한 이야기 등 어딘지 무섭고 세기말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무민의 둥글둥글한 외모와 달리 무민이가 겪어야 한 일들은 뾰족뾰족 날 서 있고 위험한 이야기가 많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했었다. 동화라 할 수 있지만, 음, 뭐랄까 정말 토베 얀손만의 동화적 느낌. 마냥 아이들을 위한 상냥한 이야기가 아니고, 그렇다고 신나는 모험도 아니고, 어딘가 묘하고 모호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무민이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그런 중에 연작소설의 마지막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어딘가 여유롭고, 마음에 긴장을 풀고 읽을 수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없고 단지 무민 가족의 부재만이 있다. 이 부재도 나에겐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무민 가족은 꼭 돌아올 거야.'라는 안전한 믿음을 가지고 읽을 수 있고, 무민네가 없는 동안 개성 만점의 여러 캐릭터들이 무민이 집에서 일상을 소소하게 보내는 이야기가 어딘지 안심이 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민의 시리즈 중 가장 긴장을 덜 하며 읽은 책이라고 할까. 가장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은 책이라고 할까.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같은 걸 보면, 언제나 번외 편을 더 재밌게 봤었다.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는지가 늘 궁금했다. 내가 제일 애정하는 소설인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도 작가가 중간중간 스쳐 지나가는 캐릭터의 이야기도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이 좋았다. 아마 『늦가을 무민 골짜기』도 주인공 없는 번외 편 같은 이야기 느낌이라 제일 마음에 들게 읽지 않았나 싶다. (모순적이게도 주인공의 중심 이야기가 있어야 번외 편도 있는 것이라 중심 이야기부터 재밌게 읽어야 한다는 모순 아닌 모순이 있닼)


또 토베 얀손이 중간에 스쳐 지나가듯 쓴 문장들이지만, 사물이나 세상 그리고 감정을 세심하게 잘 표현한 부분들이 있다. 한 줄도 다 채우지 못하는 문장도 있는데, 짧지만 어떤 통찰력이 느껴져 좋다. 책 속에 점점이 뿌려진 보석 같은 문장들로, 이런 문장을 발견하면 언제가 기분이 좋다. 토베 얀손이 무심하게 짧게 스쳐 지나가듯 썼지만, 저자 본인도 심혈을 기울인 문장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참 좋다.


무민의 연작 소설은 여기서 끝났다. 하지만 우리에게 책이 좋은 것은, 읽었던 책을 펼치면 새로운 이야기처럼 예전과 같은 듯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책을 재독, 삼독하는 걸 좋아한다. 읽는 동안 나는 달라졌기에, 그리고 읽을 때마다 나는 다른 맥락 속에 놓인 존재이기에 책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 무민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몇몇 시리즈는 재독을 했는데 다른 느낌이었다. 『늦가을 무민 골짜기』도 당연히 다음번엔 또 다른 감상을 하지 않을까.


이 책이 먼 곳으로 놀러 갔다가 무민 골짜기에 돌아오는 무민 가족이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장면에서 끝났듯 곧 다가올 새 만남을 기약하며 『늦가을 무민 골짜기』의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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