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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트랜스휴머니즘
엘로이즈 쇼슈아 지음, 이명은 옮김 / 그림씨 / 2018년 12월
평점 :
2018년에 본 액션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업그레이드>가 있다. 영화 <업그레이드>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아내가 죽고, 본인은 신경이 절단돼 얼굴 말고 다른 신체 부위는 단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불수가 된다. 그런데 이 남자가 현존 최고의 AI 칩을 이식받고 몸의 기능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로 거듭난다. AI 덕분에 슈퍼 초사이언 급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은 아내를 죽게 만들고 자신의 몸을 불구로 만든 사람을 잡으러 다니는데, 잡고 보니 그들은 주인공과 비슷하긴 하나 조금 다른 '트랜스 휴먼'이었다.
범인들은 전쟁에 참전했다가 몸이 만신창이로 망가진 제대 군인들이었다. 주인공 아내는 실력 좋은 엔지니어로, 제대군인들에게 놀라운 기술이 탑재된 기기를 이식했고 그 덕분에 장애를 가졌던 그들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식한 눈으로 건물벽을 투시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을 본다든지, 팔에 심은 총으로 총알을 손바닥으로 쏘아댄다든지 인간이었던 그들은 말 그대로 몸 전체가 병기가 되었다.
AI 칩을 심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된 주인공과 상한 몸에 기기를 이식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된 악당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주인공은 컴퓨터이고, 악당은 이 책의 제목과 관련 있는 '트랜스 휴먼'이다.
│ 트랜스 휴머니즘 개념 :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 및 능력을 개선하는 것 (133쪽)

이 만화책은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엘로이즈 쇼수아가 그리고 글 쓴 작품이다. 만화책이긴 하나, 판화 같은 감각적인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어, 단순 만화책보단 이야기가 있는 일러스트 같다.
이 책을 읽고 놀랐던 건, 프랑스의 사실적인 교육이랄까 그랬다. 이 책을 굳이 우리 식대로 설명하면,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한 교육 만화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흔한 교육 만화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일단, 독자를 학생이나 애 취급하지 않는다. 어려울 수 있는 설명을 최대한 쉽게 하고, 학생들이 이 책에서 다루는 것들을 일상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알고 싶지 않지만 꼭 알아야 할 사항들은 회피하지 않고 보여준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우리 신체이고, 또 그 신체가 절단된 사항, 우리 신체 구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누구는 이런 것들을 알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몸속을 아는 것, 이건 오래도록 터부시 되어 온 것이니까 사람으로서 근본적 거부감이 있다(사실 이런 터부 때문에 동양과 서양 모두 외과가 오래도록 발전을 못하다 근대 들어서 급속히 발전했다). 보기 꺼려지는 신체 구조를 이 책은 최대한 간결하면서 정확하게 그려낸다. 의사에 꿈이 있는 아이들에게 무척 유익할 듯하다.
그리고 서양 교육의 특징인 '연역(+ 역사)'을 세밀하게 밟는다. 저자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개념과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를 이끌어 내기 위해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인 아브루아즈 파레를 주인공의 안내자로 설정해 서양 절단술의 연역을 밟고(고대 그리스인 히포크라테스나 로마인 켈수스부터 시작-), 오늘날에 이르렀다가 미래에 마주하게 될 문제를 던지며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철학적 사유를 끌어낸다(히야, 진정 '바칼로레아'의 나라답다).
일반인들은 일상에 크게 와닿지 않고, 생각하기엔 너무 먼 문제인 '트랜스 휴머니즘'. 그래도 가끔씩 티비(보통 해외 토픽)에 나오는 장애우들을 위한 신체 도구나 기기들을 보면 생각보다 트랜스 휴머니즘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그냥 '와, 좋다', '절망에 빠졌던 장애우분들께 희망이 되었네요'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는 돈이나 권력을 쥔 사람들이 그들의 신체 기능을 월등히 향상시킬 기기를 이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신체가 개선된 트랜스 휴먼들이 세상을 다스리고(주인), 일반 인간들은 그들에게 지배받는(노예)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여기까지 이르는데,

그래, 진짜 우생학적이다.
만화로 풀어쓴 트랜스 휴머니즘에 관한 책이지만 곧 닥칠, 혹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트랜스 휴머니즘을 알고 생각하기에 좋을 작품이다. 학생들에게 추천하나, 어른이 읽어도 좋다. 외국의 교육 만화는 어떻고 어떤 수준인지도 체감할 수 있어 추천한다.
+ 만화를 번역해 내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인데 이명은 박사님의 번역이 상당히 좋고, 사용된 한글 활자나 활자 배치 등이 원작 그림과 내용 진행에 어울리도록 출판사에서 세심히 신경 써서 만든 게 느껴진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과 일반인께 강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