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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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오랫동안 안 써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까먹었다. 생각하기를 오랫동안 멈춰서 생각하는 법도 까먹었다. 그냥 하루를 살고 있고, 살아가고 있다. 책은 꾸준히 읽고 있다.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러 다닌다. 글 쓰는 법을 까먹어서 후기를 못 올릴 뿐이다.


능동적인 게 뭘까. 스스로 생각하기, 스스로 선택하기, 결심을 실천하기, 실천으로 유익한 뭔가를 생산하기... 이런 것이 '능동'인 것 같다. 요즘의 나는 과연 능동적으로 살았던가. 먹고살기 위해 돈은 벌고 있으나 능동적이기보단 수동적이다. 살아 있으되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 지는 꽤 오래전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웃은 지도 오래되었네. 웃는 법도 까먹은 것 같고... 아, 주문을 외자. '웃어라, 웃어라, 내 얼굴!'


웃음에는 '능동성'이 내재되어 있으니까, '웃어라'라고 명령을 내려도 부지불식간에 수동성이 능동성으로 변환될 테지. 어쨌건 웃어라고 내 얼굴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리뷰도 써보려고 한다. 일단 글을 쓰면, 시작이야 수동성이더라도 곧 능동적으로 변하겠지.







몇 달 전에 읽었던 『놀러 가자고요』의 저자, 박종광 작가의 신작 산문집 『웃어라, 내 얼굴』을 읽었다. 짧고 간결한 잡문을 엮은 책인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에 실린 글이 짧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만 간결하게 담겨 있다. 긴 글만 읽으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나에게 좋았다.


그리고 대부분 생활밀착형 에세이로, 글 대부분 나도 이해 가능한 내용이라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다. '보통 에세이는 거진 생활밀착형 글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세상은 넓고, 세상엔 오만 에세이들이 다 있다. 그냥 에세이라고 하기엔, 뜻을 알 수 없고 모호하며 뜬구름 잡는 글도 많고 중2병에 빠진 사람이 쓴 글이라든지, 익명 처리 후 자기 가족이나 자기 지인에 대해 섭섭했던 일들만 열거하는 글, 자기자랑을 하거나 혹은 어떤 투철한 정신으로 독자 계몽을 위해 쓴 에세이 등등 세상엔 참말 많은 에세이가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에세이 대부분이 소설가의 산문집으로 읽히기보단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시민'의 이야기로 읽혔다. 대출 이야기, 주공 아파트, 국민체육센터, 먹고사는 이야기를 읽을 때 그러했다.


그러니까 소설가의 에세이집이라 해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후까시(...?!)'가 박종광 작가의 에세이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무리 힘을 빼고, 일상 그대로의 에세이를 쓴다고 해도, 돈 걱정 없는 세계적인 작가의 하루는 매일매일 생활비 걱정을 해야 하는 작가의 에세이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 듣고 언제나 고뇌에 차 있던 엘리트 작가, 전혜린의 에세이와도 천지 차이.


지금 『웃어라, 내 얼굴』의 여러 이야기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국민체육센터' 이야기인데, 나도 작가님과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극 동감하며 읽었다. 예전에 남자친구와 국민체육센터에 배드민턴을 치러 갔었다. 기계로 코트를 예약해야 해서 막 기계를 누르려고 하는데, 어디서 우릴 지켜봤는지 배드민턴 동호회 사람들이 개떼같이 몰려와 자기들이 쳐야 하는데, 자기들이 사람이 많아서 어쩌고저쩌고 말을 많이 해서 그냥 나와버렸다. 작가님처럼 며칠 동안 분노한 정도는 아니지만, 텃세에 밀려난 느낌으로 좀 짜증이 났다. 철새에게 작은 공간 하나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텃세 부리는 텃새마냥... 흥, 나빴어!


대부분 이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들쑥날쑥한 수입에 직장인보다 불안정한 생활과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민들이 많이 적혀 있다. 그 고민은, 아내와 부모님에 대해 쓴 글에 많이 녹아 있다. 현재 내가 하는 고민과도 비슷하다. 위에 썼듯이 요즘 내가 글 쓰는 법을 잊고, 생각하는 법도 잊고, 웃는 법도 잊고 하루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대부분 이런 데서 비롯했다. 연말이 되니 좀 더 그런 듯.

어쨌거나 작가님도 빠듯한 생활비로 살면서도 스스로의 선택대로 20년 차 생계형 소설가로 살아오셨듯, 나도 나대로 살아갈 테지. 참, 작가님이 9년 전 불혹을 앞두고 쓴 글에 붙인 제목이 「웃어라, 내 얼굴」이다. 작가님과 띠도 같고 몇 년 후면 나도 불혹... 한 살 더 먹기 전 연말인 지금, 나도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웃어라, 내 얼굴! 웃어라, 내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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