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능동태다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머리말

말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말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 5쪽


1. 말의 참모습

말은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말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니, 인간이 인간임을 드러내는 궁극의 모습일지 모른다. (...) 말이 곧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요, 우리 자신이다. 결국 한 인간이 사용하는 말은 곧 그 인간이요, 한 겨레가 사용하는 말은 곧 그 겨레이며, 한 세대가 사용하는 말은 곧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 역사의 한 세대인 셈이다. 그런 말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 9쪽


2. 사전의 풍요로움

'보이는 사전(책으로 된 사전- 먼지잼 주)'은 의지만 있다면 전혀 모르는 항목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 12쪽

우리말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면, 아니 막는 것은 언감생심 꿈꾸기 어렵다면 조금 늦추기 위해서라도 우리말 사전을 책상마다, 교육 현장마다 놓을 일이다.  - 17쪽


3. 주어 찾기

우리말 문장에서는 주어가 없는 경우, 동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 20쪽

결국 우리 문장과는 본질부터 다른 것이 영어 문장이다. 그리고 그런 문장을 끝없이 접하면서부터 우리 언어생활은 상처를 받기 시작한다. - 23쪽

주어 없는 세상인 우리말에서는 당연히 사람이 주인이다. 반면에 주어가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영어 문장에서는 세상 만물이 다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주어의 등장은 훨씬 심각한 우리말 소멸을 가져온다. - 24쪽


4. 수동태라는 괴물

수동태가 영어 문법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수동사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말에는 피동사가 있다. 그러니 우리는 엄밀히 말하면 수동태가 필요 없다. - 28쪽


5. 우리 집인가 내 집인가


6. 다수는 늘 옳은가

사실 언어생활이라는 것이 누구나 알다시피 언중, 즉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시민들의 실천적 사용을 전제로 하기에 언중의 결정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도 언어의 기본 틀을 벗어나면서까지 언중의 뜻을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 나라의 언어는 언제든 틀을 벗어나 전혀 다른 언어가 되거나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56쪽


7. 한글 애국주의 대 한자 사대주의

우리말은 한글전용 주의를 채택한 후 조어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 81쪽


8. 글을 맺으며

언어가 단일화된다면 문화가 단일화되는 것이요, 단일 문화가 된다면 민족 또한 단일화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족의 단일화란 다양성의 소실이니 이는 곧 수많은 민족의 멸종을 의미한다. (...) 지금 당장 우리말, 그리고 한글의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을지 모른다. - 87쪽




저자의 직접적 의견이 담겨 있는 책으로, 자기주장이 강해서 꼭 저자와 마주 앉아 저자의 말을 직접 듣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우리말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분으로, 현재 영어 문장에 영향받아 파괴되고 있는 우리말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나 또한 저자처럼 우리말을 사랑하고 우리말이 잘 보존되길 바라지만,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주장엔 동의하고, 어떤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토론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 봤다) 


말은 생물과 같아서 주위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영미 문화권에 속한다 할 수 있고, 당연히 영어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영어의 여러 영향 중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우리말에 거의 쓰지 않던 '주어'나 '수동태'의 빈번한 사용이다. 


우리말은 용언이 무척 발달해서 문장에 주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 반면 영어는 동사나 형용사가 우리말처럼 세밀하지 않아 주어를 꼭 넣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주어의 남발을 걱정하지만, 구어에서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문제 같다. 문어 중 번역 문장은 좀 공론이 필요한 것 같고(번역가들도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순수 우리 문학에서 주어를 남발하는 건 지극히 작가의 자질 문제라고 본다. 


문제는 수동태의 남발이다. 수동태 사용은 학교에서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보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음 그리고 수동태는 단순히 우리 언어생활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문제도 스며 있다고 본다. 우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과 미 군정 시기 때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역사가 거의 단절돼 버렸다고 본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조선 500년이지만 어쨌든 자기주장 확실한 꼬장꼬장한 선비들의 나라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와 한국전쟁, 분단국가란 현실 속에서 자기주장을 확실히 내기 힘들었고, 수동적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했다. 우리 의식도 능동보다 수동, 피동이 강하다. 스스로 책임지기보다 남 탓하는 문화가 강한 것도 이런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내가 우리말에 정말로 감탄했던 때는,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읽었을 때다. 『임꺽정』은 조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조선 최하층민인 백정과 길바닥 인생들의 이야기가 교차로 이어지며 펼쳐지는데, 이때 벽초 선생의 문장 다루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조정의 일은 당시 조정에서 쓰던 딱딱한 한문으로 묘사하셨고(한문이라서 읽어도 뭔 말인지 하나도 모름), 길바닥 인생 이야기는 오롯이 우리말, 우리 리듬대로 묘사해 조정과 길바닥 인생의 교차가 얼마나 극명하던지. 이 책을 정말 벽초 한 사람이 쓴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문장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홍명희 선생 외에 박경리 선생이라든지, 『혼불』을 쓰신 최명희 선생의 글도 마찬가지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속에서 그나마 조금 이어져 오던 우리말과 우리 문장을 홍명희, 박경리, 최명희 선생님 등은 익히고 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현재는 그런 분위기 속에 자란 아이도 없고, 그래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멸종되었다고 본다. 아직 연세 많으신 분들 중엔 간혹 좋은 글 쓸 수 있는 분이 계시겠지만, 40~50대 이하로는 없다고 본다. 


단순히 영어 영향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밈(Meme)이라는 것이, 격동의 세월을 겪는 동안 완전히 꺾이고 달라져 버렸다고 본다. 


그래도 이 책의 저자, 김흥식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의식적인 노력은 해야겠죠. 

단순히 영어에 대항하려는 자세보다, 우리 고전을 즐겨 읽고 사라지고 있는 우리 말과 우리글의 리듬을 체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