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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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과 『불멸의 신성가족』을 쓰신 김두식 교수님의 신작. 

대학 때 『헌법의 풍경』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벌써 14년의 시간이 흘렀다(흐르는 시간이 무섭다). 『불멸의 신성가족』도 읽은 것 같은데 실제로 내가 읽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냥 '읽어야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안 읽었을 수 있다. 어쨌든 예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사법부 쪽에 문제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우리 법조문의 아버지들(?!... 외국은 뭐 만든 사람을 다 아버지라고 하길래)이 친일파라는 거], 김두식 교수님의 책을 읽고 단순히 '문제가 있다'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법부 쪽에 깊은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법률가들』은 보다 깊이 우리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를 파고든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구조적 문제'는 사법부의 형태나 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광복 후 나라의 헌법적 기초를 세우고 판사/검사/변호사로 활약한 인물이 누군인지, 그 인물들이 지금까지 우리 사법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자세하게 짚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조직화되어 있는지 파고든다. 자세히 따져보는 수준이, 초정밀 현미경 수준이다! 

내가 읽은 책은, 정식 출판본이 아닌 총 4장까지만 인쇄된 가제본이었다. 그래서 뒤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단 내가 읽은 부분은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후 사법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해방 후 법조계로 진출한 사람은 크게 4분류로 나눌 수 있다. 


① 제1법률가군 : 일제강점기 때 고등시험 사법과 합격 후 판,검사를 지낸 인물들. 대부분 지역 유지 집안 출신의 초엘리트 군으로, 친일 행적은 문제지만 법을 해석하는 능력과 자격은 확실함.  


② 제2법률가군 :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사람들. 제1법률가군에 비해 스스로 노력에 의해 법조계에 입문했고, 따라서 친일 문제에서도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또한 시험에 통과한 수재들로 법 해석 능력을 신뢰할 수 있음.


③ 제3법률가군 : 일제강점기 시 서기나 통역생 출신. 미군정 시기에 부족한 인력을 급하게 채우기 위해 시험 없이 판검사에 임용된 사람들. 이들의 법 전문성과 자질을 신뢰할 수 없음.


④제4법률가군 : 해방 후 각종 시험 출신으로, 시험을 치르는 기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시험 응시생들이 시험에 응시했다는 이유만으로 합격을 요구해 법조계에 입문한 사람들. 역시 법 전문성과 자질을 신뢰하기 힘들다. 


내가 볼 때는 다 문제인 거 같은데, 그래서 오늘날까지 사법부는 말 많고 탈 많은가 보다. 일단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법조계에는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많다. 대를 이어 판사나 검사, 변호 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 사법부 집안끼리 결혼을 하고, 그 자식이 또 법조계에 들어오고... 그래서 인망이 두텁고, 능력도 인정받는 법조계 인물이지만 선대의 친일 행적이 발목 잡는 경우가 많다(보통 사법부에서 입법부로, 그리고 입법부에서 행정부 수장을 꿈꾸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환경에서 탄생한 빨간색 콤플렉스. 이 빨간색 콤플렉스는 자격에 흠이 있는 사람에게 유용한 도구로 작동했다. 사법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 영향으로 철저하게 학력 위주로 편재되어 있었다(학력 서열, 대학 서열 등). 또 어느 시험에 합격해 임용됐는지도 중요했는데, 그래서 시험을 치지 않고 어부지리로 임용된 사람들은 사법부에서 차별과 홀대를 받았다. 그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에 맹목적인 충성을 하며 공안 검사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며칠 전 판결에 불만을 품은 할아버지가 화염병을 대법원장 차에 투척한 사건이 있었다. 언론은 '사법부 권위 추락'이라고 말한다. 음, 우리나라에 언제 사법부에 권위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공안 시절의 영향과 국민 대부분 법에 대한 약자로서 항변을 못하지만, 뒤에서는 국민들이 법조계 사람들을 친일파(후손)라고 깔보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이 책은 오늘의 사법부가 있기까지 그 근본과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는 서적이다. 저자의 자료 수집과 자료 이해에 많은 시간을 공을 들인 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불편할 수 있을 것 같고, 누군가는 우리 역사에 울분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뭔가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크게 어긋나고 잘못된 느낌이 드니까. 그래도 알 건 알아아죠. 우리 역사를요. 가제본을 읽은 터라 책의 뒷부분을 못 읽어서 참 안타까운데 저자가 어떻게 글을 마무리했을지 많이 궁금하다. 정본 읽어야지. 


법조계와 우리 역사에 관심 있는 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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