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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아 : 내일의 바람 ㅣ 사계절 1318 문고 120
이토 미쿠 지음, 고향옥 옮김, 시시도 기요타카 사진 / 사계절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지진, 쓰나미...
실제 겪어보지 않았던 나는, 다른 나라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자연 재해쯤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지금 역시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며,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걸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재해란 것이 나만을 피해 타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데, 우리들은 마치 타인에게만 일어나는 사고라고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물론 이 책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거나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그 어떤 방법과 수단을 다루지도 않는다. 다만 그 상황 속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차분히 보여줄 뿐이다.
자신을 믿을 수 없고 누구와도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치야는 3개월째 학교에 가지 않고 버티고 있던 어느 날, 지진으로 엄마를 잃었다. 엄마를 구하려던 자신을 기절시켜 쓰나미로부터 구해준 택시기사 가타기리를 원망하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을 한다.
7년 전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자신을 원망하며 지냈던 가타기리 역시 이치야의 원망을 받으면서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을 뿐이다.
계속된 여진과 쓰나미로 인해 한 건물에 대피한 9명의 조난자들 각자 사연들이 있었고 내색하지 않은 채 현재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
지붕 위에 쓰러져 있는 여학생을 구하고 다친 가타기리, 그런 가타기리를 위해 원망을 하면서도 약을 찾아 나서는 이치야와 이구치, 그리고 지진 소식을 듣고 밤새 도쿄로 달려오는 이치야의 삼촌 겐스케...
“나는 살아가려고 한다.”(220쪽)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겠다가 아니다, 그저 살아 있으니 너도 나도 주어진 삶을 살아갈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