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일본 영화를 좋아한다.
작가가 책에서 써놓은 일본의 거리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은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이었다.
2년 전쯤 마음이 복잡했던 날, 그 드라마를 보고 났더니 마음속이 정리되었고 내가 머무는 주변까지 단정하게 정리하고 싶은 다짐을 하게 됐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은 동네의 골목, 낮은 1층 집들과 가게들, 고급은 아니지만 단정하게 정리된 주방
작가 부부의 도쿄 여행기를 읽으며 정말 일본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얇고 가벼운 책이라서 읽는데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었다
나중에 도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작가의 여행 코스를 그대로 다녀봐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내 취향과 비슷했던 여행 코스
특히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은 츠타야 서점과 장어덮밥집 치쿠요테이다
밑줄 그은 곳
p19
그리고 최소한의 만족을 반갑게 만나기를 바란다. 이 정도면 내 삶은 정말 충분하다는 느낌. 그게 소위 말하는 한 개인의 꿈이고 행복이 되어 주지 않을까.
p30
그러니까 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무계획으로 다가올 모든 것을 온몸으로 맞는 것이다. ··· 무엇보다 의도가 아닌 우연에 몸을 맡기다 보면, 모든 일이 운명처럼 낭만적이기도 하니까.
p44
삶은 단 한 번도 우리의 뜻대로 호락호락한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삶은 계속 장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유감이지만 그것이 삶이다. 중요한 것은 계속 마주하게 될 장애에 대한 태도다. 당연하게 주어진 장애를 당연하게 극복하려는 태도. 그러니까,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똑바로 마주하고 물고 늘어지고 이겨낼 것이다. 그렇게 매 순간 극복해 내고, 장애를 넘는 근육과 힘을 길러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떤 문제라도 어떻게든 해결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진짜 강한 사람이다.
p52
어떻게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두 개의 시작점을 짚는다. 하나는 '존중'. 그들의 취향도 그럴 수 있다고 존중하는 것, 그들의 일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존중하는 것, 그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존중하는 것. 그리고 다른 시작점은 '무관심'.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는지,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그저 모르는 것. 어떠한 통제도 처방도 없는 관심 밖의 영역은 생물이 자유롭게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는 최적의 곳이니까.
p97
그 동네에서 산책하는 어떤 남자의 단정하고 편안한 옷차림이 '참 생활 자체가 윤택한 사람 같다'라는 인상을 주었던 날. 옷이 좋은 옷이어서 그렇게 느꼈을까. 산책하는 짧은 순간에 옷이 좋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하나 확실한 건, 그 사람의 옷에는 아무 브랜드 로고도 보이지 않는 조용한 디자인이었다는 거다. 거대한 브랜드 로고가 "나 브랜드야!"라고 소리치는 옷이 아니라서, 나는 멋진 옷이 아니라 윤택한 사람을 볼 수 있었던 거다. 그때부터 나는 소리치지 않는 디자인의 단정하고 편한 옷을 찾았다. 편한 생활 속에서도 단정하고 싶어서, 그리고 브랜드에 묻히고 싶지 않아서.
이 부분을 보고서 제일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원색의 화려함 대신 옅은 베이지색 느낌이 나는 사람
색조 화장을 하기보다는 그냥 맑은 피부이고 싶고, 고운 머릿결의 머리칼을 그냥 무심하듯 단정하게 묶고 싶고, 휘황찬란한 보석보다는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다이아 목걸이 정도가 좋고, 무늬가 들어간 니트보다는 캐시미어의 질감만 보이는 옷을 입고 싶다
이러한 사람이 되려면 내면이 맑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먼저라는 걸 잘 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말이다
p114
읽는 일을 좋아한다 글자도, 사람도, 도시도, 시간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주도적으로 대상의 언어를 감각하고 해석하며 받아들이는 일. 내가 나아가지 않으면 진전없는 일. .그래서 내가 의지를 가져야 하는 일. 그런 의미에서 읽는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인 각오다.
p146
식사 내내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직원들의 친절은 감동적이었고 그런 직원들을 대할 땐 나도 모르게 절로 몸이 숙여졌고, 실수로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부드럽게 행동했다. 신기했다.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생겼다. 언젠가 느껴본 적 있었던, 친절의 힘이었다.
p152
순간, 아쉬우면서도 '놀만큼 놀았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하는 마음이 앞다투는데 여행 마지막 날 갖는 이 느낌이 항상 좋다. 무엇인가와 영영 이별하는듯한 애틋함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과의 반가운 재회가 뒤엉켜 설명하기 어려운 맛을 내는 와인 같아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