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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논어 (20만 부 기념 골드 리커버 에디션) -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 ㅣ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최종엽 지음 / 유노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아직도 헛살았다. 50년 넘게 살았지만, 책을 제대로 골라 읽을 지혜조차 없다. 단언컨대 <오십에 읽는 논어>는 교묘하게 자기 계발을 권하는 책이다.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이라는 띠지는 지난 시절 <논어>을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했다. 그래 잘 읽어보자며 다짐했다. 그런 점에서 <오십에 읽는 논어>는 나이 오십에 들어선 나를 제대로 낚은 책이다. 50이라는 숫자에 속았다.
변명하자면 퇴근 하면서 곧장 집으로 가지 못했다. 요즘 가슴에 돌 하나를 얹은 듯 묵직한 것이 걸린 듯 답답했다. 그저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서점에 들렀다. 잡지 판매대에서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다 2층으로, 3층으로 올라가다 서고에서 이 책에 시선이 꽂혔다. 50이라는 숫자가 왜 그렇게 크게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의례 그렇듯 책 표지에 눈길이, 아니 이미 구매해서 읽어보려는 마음이 절반은 넘은 나는 책 표지를 읽고 저자 이력을 살폈다. 마치 면접위원이라도 된 양 신입사원이 왜 이 회사에 입사하려는 지, 회사가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그들을 보듯 책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책 표지에 속아 책을 사다가 집에서 읽으려는 마음은 보면 햇살에 녹는 눈처럼 녹았다. 저자 ‘최종엽은 삼성전자 엔지니어, 인사과장, 경영혁신처장, PA부장으로 20여 년 근무했고 현재는 카이로스 경영연구소 대표,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면접전문위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문구는 고개를 가로 절게 했다. 이른바 명품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명품의 가치를 믿는다. 브랜드가 주는 묵직한 울림을 좋아한다. 전문가라는 이들이 쓴 책이 주는, 전문지식을 귀하게 여긴 나에게 이 사람은 잡학 다식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주저하게 했다.
‘<공자의 말>, <공자의 담론>, <지금 논어>, <원려, 멀리 내다보는 삶>, <일하는 나에게 논어가 답하다>, <논어, 직장인의 미래를 논하다> 등이 있다’라는 저자가 쓴 책 소개에 의문은 사라졌다. ‘잡학 다식하다고 헐뜯을 사람이 아니구나, 전문가로 거듭났네’ 나는 이미 저자를 평가 내렸다. 회사 사장으로 이 사람을 꼭 뽑아서 일 시키리라는 다짐이 생겼다.
‘오십의 공허, 논어로 채우다’라는 글귀는 퇴근길 배고픔도 잠시 잊게 했다. ‘방황하는 오십은 공허하다-나만 잘하면 되고, 나만 똑똑하면 되고, 나만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라는 자기 고백은 내 말이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자는 내 거울처럼 내 모습이 슬핏슬핏 보였다. 덕분에 서점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어 가며 선 채로 이 책을 읽었다.
‘오십에는 논어를 읽어야 산다’라며 ‘숨 막히게 달려왔던 경쟁의 속도를 줄이고, 인생 후반 목표와 함께 균형 잡힌 삶, 주도적인 삶, 성숙한 삶, 공감하는 삶을 생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고수처럼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고 싶었다.
하지만 북채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했다. ‘지금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한 분야의 책만 읽었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역으로 바꿔 보는 게 좋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잘하는 분야를 관심 있는 분야를 더욱더 잘하면 좋지 않을까. 도전 없는 삶이라고 욕할지라도 익숙한, 전문 분야에서 빛을 발하면 그만 아닌가. 때로는 반박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저자의 글은 공자의 말씀이라는 <논어>를 바탕으로 내게 은근슬쩍 밀어붙이려 했다. 삶이 흔들릴 때 나를 다잡아 준 논어
대기업 다녔다고, 지금은 어느 번듯한 명강사로 이름 좀 난리 났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냐며 책을 내려놓고 싶었다. 읽는 중간에 책 끝으로 후다닥 내달렸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왜 중간에 나왔을까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20년 직장 생활을 하고 40대 중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왔습니다.’ 퇴직 이유가 감상적이네. 헤어질 결심을 영화처럼 주인공처럼 멋지게 하고 싶었네. 퇴직 이후 가족은 어쩌려고. 은근히 부아가 낫다. ‘퇴직 전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걸 목도헀을 때, 제 인생이 예상에 없던 궁한 상태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는 사실을 왜 미처 몰라서 퇴직했단 말이냐. 나가라고 등 떠밀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꼭 붙잡고 있어야지. 솔직히 나 역시 다가오는 퇴직 이후가 두렵고 무섭다.
퇴직한 저자는 점심시간에 새로 창업한 회사 사무실 잠실 석촌호수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천자문>을 외우기 시작한 단순한 호기심이 한 단계 더 나아가 <논어>를 읽기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논어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오십은 용기를 내기에 절대로 늦지 않은 나이’이고 ‘우리의 부모들만큼 우리도 멋진 삶을 자식들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시작’이라고 꼬드긴다. ‘시작하기에 아주 적절한 나이가 바로 오십 지천명’이라며 생각을 바꾸기 가장 적절한 나이라고 권한다.
인생의 하프타임,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평범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모두가 저자처럼 될 수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더 늦었다!!! 머릿속이 오히려 복잡해진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부정하려는 무렵 서점 직원이 문 닫을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주저하는 나는 결국 서점에서 책을 샀다. 부랴부랴 집에 와서 마저 읽었다. 자정 넘겨 새벽 1시까지 읽고 5시에 일어나 출근했는데 몸은 피곤하지 않다. 이미 나는 이 책의 꼬임에 넘어갔다. 목표를 잡고자, 인생 2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신입사원처럼 회사에 출근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
나는 아직도 헛살았다. 50년 넘게 살았지만, 책을 제대로 골라 읽을 지혜조차 없다. 단언컨대 <오십에 읽는 논어>는 교묘하게 자기 계발을 권하는 책이다.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이라는 띠지는 지난 시절 <논어>을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했다. 그래 잘 읽어보자며 다짐했다. 그런 점에서 <오십에 읽는 논어>는 나이 오십에 들어선 나를 제대로 낚은 책이다. 50이라는 숫자에 속았다.
변명하자면 퇴근 하면서 곧장 집으로 가지 못했다. 요즘 가슴에 돌 하나를 얹은 듯 묵직한 것이 걸린 듯 답답했다. 그저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서점에 들렀다. 잡지 판매대에서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다 2층으로, 3층으로 올라가다 서고에서 이 책에 시선이 꽂혔다. 50이라는 숫자가 왜 그렇게 크게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의례 그렇듯 책 표지에 눈길이, 아니 이미 구매해서 읽어보려는 마음이 절반은 넘은 나는 책 표지를 읽고 저자 이력을 살폈다. 마치 면접위원이라도 된 양 신입사원이 왜 이 회사에 입사하려는 지, 회사가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그들을 보듯 책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책 표지에 속아 책을 사다가 집에서 읽으려는 마음은 보면 햇살에 녹는 눈처럼 녹았다. 저자 ‘최종엽은 삼성전자 엔지니어, 인사과장, 경영혁신처장, PA부장으로 20여 년 근무했고 현재는 카이로스 경영연구소 대표,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면접전문위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문구는 고개를 가로 절게 했다. 이른바 명품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명품의 가치를 믿는다. 브랜드가 주는 묵직한 울림을 좋아한다. 전문가라는 이들이 쓴 책이 주는, 전문지식을 귀하게 여긴 나에게 이 사람은 잡학 다식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주저하게 했다.
‘<공자의 말>, <공자의 담론>, <지금 논어>, <원려, 멀리 내다보는 삶>, <일하는 나에게 논어가 답하다>, <논어, 직장인의 미래를 논하다> 등이 있다’라는 저자가 쓴 책 소개에 의문은 사라졌다. ‘잡학 다식하다고 헐뜯을 사람이 아니구나, 전문가로 거듭났네’ 나는 이미 저자를 평가 내렸다. 회사 사장으로 이 사람을 꼭 뽑아서 일 시키리라는 다짐이 생겼다.
‘오십의 공허, 논어로 채우다’라는 글귀는 퇴근길 배고픔도 잠시 잊게 했다. ‘방황하는 오십은 공허하다-나만 잘하면 되고, 나만 똑똑하면 되고, 나만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라는 자기 고백은 내 말이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자는 내 거울처럼 내 모습이 슬핏슬핏 보였다. 덕분에 서점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어 가며 선 채로 이 책을 읽었다.
‘오십에는 논어를 읽어야 산다’라며 ‘숨 막히게 달려왔던 경쟁의 속도를 줄이고, 인생 후반 목표와 함께 균형 잡힌 삶, 주도적인 삶, 성숙한 삶, 공감하는 삶을 생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고수처럼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고 싶었다.
하지만 북채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했다. ‘지금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한 분야의 책만 읽었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역으로 바꿔 보는 게 좋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잘하는 분야를 관심 있는 분야를 더욱더 잘하면 좋지 않을까. 도전 없는 삶이라고 욕할지라도 익숙한, 전문 분야에서 빛을 발하면 그만 아닌가. 때로는 반박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저자의 글은 공자의 말씀이라는 <논어>를 바탕으로 내게 은근슬쩍 밀어붙이려 했다. 삶이 흔들릴 때 나를 다잡아 준 논어
대기업 다녔다고, 지금은 어느 번듯한 명강사로 이름 좀 난리 났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냐며 책을 내려놓고 싶었다. 읽는 중간에 책 끝으로 후다닥 내달렸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왜 중간에 나왔을까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20년 직장 생활을 하고 40대 중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왔습니다.’ 퇴직 이유가 감상적이네. 헤어질 결심을 영화처럼 주인공처럼 멋지게 하고 싶었네. 퇴직 이후 가족은 어쩌려고. 은근히 부아가 낫다. ‘퇴직 전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걸 목도헀을 때, 제 인생이 예상에 없던 궁한 상태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는 사실을 왜 미처 몰라서 퇴직했단 말이냐. 나가라고 등 떠밀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꼭 붙잡고 있어야지. 솔직히 나 역시 다가오는 퇴직 이후가 두렵고 무섭다.
퇴직한 저자는 점심시간에 새로 창업한 회사 사무실 잠실 석촌호수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천자문>을 외우기 시작한 단순한 호기심이 한 단계 더 나아가 <논어>를 읽기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논어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오십은 용기를 내기에 절대로 늦지 않은 나이’이고 ‘우리의 부모들만큼 우리도 멋진 삶을 자식들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시작’이라고 꼬드긴다. ‘시작하기에 아주 적절한 나이가 바로 오십 지천명’이라며 생각을 바꾸기 가장 적절한 나이라고 권한다.
인생의 하프타임,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평범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모두가 저자처럼 될 수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더 늦었다!!! 머릿속이 오히려 복잡해진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부정하려는 무렵 서점 직원이 문 닫을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주저하는 나는 결국 서점에서 책을 샀다. 부랴부랴 집에 와서 마저 읽었다. 자정 넘겨 새벽 1시까지 읽고 5시에 일어나 출근했는데 몸은 피곤하지 않다. 이미 나는 이 책의 꼬임에 넘어갔다. 목표를 잡고자, 인생 2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신입사원처럼 회사에 출근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