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논어 (20만 부 기념 골드 리커버 에디션) -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최종엽 지음 / 유노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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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헛살았다. 50년 넘게 살았지만, 책을 제대로 골라 읽을 지혜조차 없다. 단언컨대 <오십에 읽는 논어>는 교묘하게 자기 계발을 권하는 책이다.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이라는 띠지는 지난 시절 <논어>을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했다. 그래 잘 읽어보자며 다짐했다. 그런 점에서 <오십에 읽는 논어>는 나이 오십에 들어선 나를 제대로 낚은 책이다. 50이라는 숫자에 속았다.


변명하자면 퇴근 하면서 곧장 집으로 가지 못했다. 요즘 가슴에 돌 하나를 얹은 듯 묵직한 것이 걸린 듯 답답했다. 그저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서점에 들렀다. 잡지 판매대에서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다 2층으로, 3층으로 올라가다 서고에서 이 책에 시선이 꽂혔다. 50이라는 숫자가 왜 그렇게 크게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의례 그렇듯 책 표지에 눈길이, 아니 이미 구매해서 읽어보려는 마음이 절반은 넘은 나는 책 표지를 읽고 저자 이력을 살폈다. 마치 면접위원이라도 된 양 신입사원이 왜 이 회사에 입사하려는 지, 회사가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그들을 보듯 책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책 표지에 속아 책을 사다가 집에서 읽으려는 마음은 보면 햇살에 녹는 눈처럼 녹았다. 저자 최종엽은 삼성전자 엔지니어, 인사과장, 경영혁신처장, PA부장으로 20여 년 근무했고 현재는 카이로스 경영연구소 대표,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면접전문위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문구는 고개를 가로 절게 했다. 이른바 명품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명품의 가치를 믿는다. 브랜드가 주는 묵직한 울림을 좋아한다. 전문가라는 이들이 쓴 책이 주는, 전문지식을 귀하게 여긴 나에게 이 사람은 잡학 다식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주저하게 했다.

‘<공자의 말>, <공자의 담론>, <지금 논어>, <원려, 멀리 내다보는 삶>, <일하는 나에게 논어가 답하다>, <논어, 직장인의 미래를 논하다> 등이 있다라는 저자가 쓴 책 소개에 의문은 사라졌다. ‘잡학 다식하다고 헐뜯을 사람이 아니구나, 전문가로 거듭났네나는 이미 저자를 평가 내렸다. 회사 사장으로 이 사람을 꼭 뽑아서 일 시키리라는 다짐이 생겼다.

오십의 공허, 논어로 채우다라는 글귀는 퇴근길 배고픔도 잠시 잊게 했다. ‘방황하는 오십은 공허하다-나만 잘하면 되고, 나만 똑똑하면 되고, 나만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라는 자기 고백은 내 말이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자는 내 거울처럼 내 모습이 슬핏슬핏 보였다. 덕분에 서점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어 가며 선 채로 이 책을 읽었다.

오십에는 논어를 읽어야 산다라며 숨 막히게 달려왔던 경쟁의 속도를 줄이고, 인생 후반 목표와 함께 균형 잡힌 삶, 주도적인 삶, 성숙한 삶, 공감하는 삶을 생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고수처럼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고 싶었다.

하지만 북채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했다. ‘지금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한 분야의 책만 읽었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역으로 바꿔 보는 게 좋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잘하는 분야를 관심 있는 분야를 더욱더 잘하면 좋지 않을까. 도전 없는 삶이라고 욕할지라도 익숙한, 전문 분야에서 빛을 발하면 그만 아닌가. 때로는 반박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저자의 글은 공자의 말씀이라는 <논어>를 바탕으로 내게 은근슬쩍 밀어붙이려 했다. 삶이 흔들릴 때 나를 다잡아 준 논어

대기업 다녔다고, 지금은 어느 번듯한 명강사로 이름 좀 난리 났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냐며 책을 내려놓고 싶었다. 읽는 중간에 책 끝으로 후다닥 내달렸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왜 중간에 나왔을까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20년 직장 생활을 하고 40대 중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왔습니다.’ 퇴직 이유가 감상적이네. 헤어질 결심을 영화처럼 주인공처럼 멋지게 하고 싶었네. 퇴직 이후 가족은 어쩌려고. 은근히 부아가 낫다. ‘퇴직 전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걸 목도헀을 때, 제 인생이 예상에 없던 궁한 상태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는 사실을 왜 미처 몰라서 퇴직했단 말이냐. 나가라고 등 떠밀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꼭 붙잡고 있어야지. 솔직히 나 역시 다가오는 퇴직 이후가 두렵고 무섭다.

퇴직한 저자는 점심시간에 새로 창업한 회사 사무실 잠실 석촌호수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천자문>을 외우기 시작한 단순한 호기심이 한 단계 더 나아가 <논어>를 읽기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논어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오십은 용기를 내기에 절대로 늦지 않은 나이이고 우리의 부모들만큼 우리도 멋진 삶을 자식들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시작이라고 꼬드긴다. ‘시작하기에 아주 적절한 나이가 바로 오십 지천명이라며 생각을 바꾸기 가장 적절한 나이라고 권한다.

인생의 하프타임,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평범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모두가 저자처럼 될 수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더 늦었다!!! 머릿속이 오히려 복잡해진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부정하려는 무렵 서점 직원이 문 닫을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주저하는 나는 결국 서점에서 책을 샀다. 부랴부랴 집에 와서 마저 읽었다. 자정 넘겨 새벽 1시까지 읽고 5시에 일어나 출근했는데 몸은 피곤하지 않다. 이미 나는 이 책의 꼬임에 넘어갔다. 목표를 잡고자, 인생 2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신입사원처럼 회사에 출근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


나는 아직도 헛살았다. 50년 넘게 살았지만, 책을 제대로 골라 읽을 지혜조차 없다. 단언컨대 <오십에 읽는 논어>는 교묘하게 자기 계발을 권하는 책이다. ‘굽이치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이라는 띠지는 지난 시절 <논어>을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했다. 그래 잘 읽어보자며 다짐했다. 그런 점에서 <오십에 읽는 논어>는 나이 오십에 들어선 나를 제대로 낚은 책이다. 50이라는 숫자에 속았다.

변명하자면 퇴근 하면서 곧장 집으로 가지 못했다. 요즘 가슴에 돌 하나를 얹은 듯 묵직한 것이 걸린 듯 답답했다. 그저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서점에 들렀다. 잡지 판매대에서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다 2층으로, 3층으로 올라가다 서고에서 이 책에 시선이 꽂혔다. 50이라는 숫자가 왜 그렇게 크게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의례 그렇듯 책 표지에 눈길이, 아니 이미 구매해서 읽어보려는 마음이 절반은 넘은 나는 책 표지를 읽고 저자 이력을 살폈다. 마치 면접위원이라도 된 양 신입사원이 왜 이 회사에 입사하려는 지, 회사가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그들을 보듯 책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책 표지에 속아 책을 사다가 집에서 읽으려는 마음은 보면 햇살에 녹는 눈처럼 녹았다. 저자 최종엽은 삼성전자 엔지니어, 인사과장, 경영혁신처장, PA부장으로 20여 년 근무했고 현재는 카이로스 경영연구소 대표,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면접전문위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문구는 고개를 가로 절게 했다. 이른바 명품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명품의 가치를 믿는다. 브랜드가 주는 묵직한 울림을 좋아한다. 전문가라는 이들이 쓴 책이 주는, 전문지식을 귀하게 여긴 나에게 이 사람은 잡학 다식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주저하게 했다.

‘<공자의 말>, <공자의 담론>, <지금 논어>, <원려, 멀리 내다보는 삶>, <일하는 나에게 논어가 답하다>, <논어, 직장인의 미래를 논하다> 등이 있다라는 저자가 쓴 책 소개에 의문은 사라졌다. ‘잡학 다식하다고 헐뜯을 사람이 아니구나, 전문가로 거듭났네나는 이미 저자를 평가 내렸다. 회사 사장으로 이 사람을 꼭 뽑아서 일 시키리라는 다짐이 생겼다.

오십의 공허, 논어로 채우다라는 글귀는 퇴근길 배고픔도 잠시 잊게 했다. ‘방황하는 오십은 공허하다-나만 잘하면 되고, 나만 똑똑하면 되고, 나만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라는 자기 고백은 내 말이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자는 내 거울처럼 내 모습이 슬핏슬핏 보였다. 덕분에 서점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어 가며 선 채로 이 책을 읽었다.

오십에는 논어를 읽어야 산다라며 숨 막히게 달려왔던 경쟁의 속도를 줄이고, 인생 후반 목표와 함께 균형 잡힌 삶, 주도적인 삶, 성숙한 삶, 공감하는 삶을 생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고수처럼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고 싶었다.

하지만 북채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했다. ‘지금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한 분야의 책만 읽었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역으로 바꿔 보는 게 좋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잘하는 분야를 관심 있는 분야를 더욱더 잘하면 좋지 않을까. 도전 없는 삶이라고 욕할지라도 익숙한, 전문 분야에서 빛을 발하면 그만 아닌가. 때로는 반박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저자의 글은 공자의 말씀이라는 <논어>를 바탕으로 내게 은근슬쩍 밀어붙이려 했다. 삶이 흔들릴 때 나를 다잡아 준 논어

대기업 다녔다고, 지금은 어느 번듯한 명강사로 이름 좀 난리 났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냐며 책을 내려놓고 싶었다. 읽는 중간에 책 끝으로 후다닥 내달렸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왜 중간에 나왔을까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20년 직장 생활을 하고 40대 중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왔습니다.’ 퇴직 이유가 감상적이네. 헤어질 결심을 영화처럼 주인공처럼 멋지게 하고 싶었네. 퇴직 이후 가족은 어쩌려고. 은근히 부아가 낫다. ‘퇴직 전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걸 목도헀을 때, 제 인생이 예상에 없던 궁한 상태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는 사실을 왜 미처 몰라서 퇴직했단 말이냐. 나가라고 등 떠밀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꼭 붙잡고 있어야지. 솔직히 나 역시 다가오는 퇴직 이후가 두렵고 무섭다.

퇴직한 저자는 점심시간에 새로 창업한 회사 사무실 잠실 석촌호수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천자문>을 외우기 시작한 단순한 호기심이 한 단계 더 나아가 <논어>를 읽기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논어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오십은 용기를 내기에 절대로 늦지 않은 나이이고 우리의 부모들만큼 우리도 멋진 삶을 자식들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시작이라고 꼬드긴다. ‘시작하기에 아주 적절한 나이가 바로 오십 지천명이라며 생각을 바꾸기 가장 적절한 나이라고 권한다.

인생의 하프타임,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평범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모두가 저자처럼 될 수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더 늦었다!!! 머릿속이 오히려 복잡해진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부정하려는 무렵 서점 직원이 문 닫을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주저하는 나는 결국 서점에서 책을 샀다. 부랴부랴 집에 와서 마저 읽었다. 자정 넘겨 새벽 1시까지 읽고 5시에 일어나 출근했는데 몸은 피곤하지 않다. 이미 나는 이 책의 꼬임에 넘어갔다. 목표를 잡고자, 인생 2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신입사원처럼 회사에 출근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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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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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30여 년 전 중학교에 들어가 한자를 배울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다. 비단 <한문>시간 뿐 아니라 국어 교과서 등 어디 허투루 끼이지 않은 적이 없다. 교과서를 비롯해 학교는 물론이고 어른들의 일상 속에도 쉽게 접했다. 바로 <논어>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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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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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 <논어>를 읽다

 

라떼는 말이야

30여 년 전 중학교에 들어가 한자를 배울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다. 비단 <한문>시간 뿐 아니라 국어 교과서 등 어디 허투루 끼이지 않은 적이 없다. 교과서를 비롯해 학교는 물론이고 어른들의 일상 속에도 쉽게 접했다. 바로 <논어> 구절이다.

 

기원전 551, 중국 노나라 추읍 창평향(오늘날 산둥성 곡부)에서 태어난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 어록을 제자들이 사후에 기록한 책이 <논어>. 일종의 격언집이요, 명언집이다.

 

그런 까닭에 <논어>는 산문이라기 보다는 운문이다. 길지 않은 한자들이 모여 던지는 말들이라 전후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나치기 쉽다. 더구나 라떼는 영어에 비해 점수는 낮지만 외울 것은 많은 한문 과목은 기피 1순위였다. 온통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고 보았던 글들을 나이 오십에 읽었다.

 

명확하게는 현대지성에서 펴낸 <논어> 서평단 모집에 응모했다. 운이 좋아 서평단으로 뽑혔다. 책을 받고 정해진 기간(925)까지 읽고 서평을 올리는 과정이다.

 

간단하면서도 지루한 과제다. 가만히 앉아서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튜브 영상도 아니고 내 눈으로 천천히 읽어가는 고단한 독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편으로 구성된 <논어>492, 600여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동양의 성경과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번이나 마주친 적이 있지만 어려운 한자가 몇 번의 장벽을 쳐 중간에 그만두기를 거듭했다. 라떼로 돌아가야 하니 고역도 이만한 고역이 없다. 그런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금 <논어>를 읽고자 하는 바람은 간단하다. 나이 탓이다.

 

공자는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으며, 쉰 살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다.”고 했다. 물론 쉰을 넘긴 지금도 천명은 모른다.

 

단지 쉰을 넘긴 지금에야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밥맛을 조금 안다. 밥맛처럼 천천히 씹으며 음미하기 위해 <논어>를 펼쳤다.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안부지일불은, 불역군자호!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呼. 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呼.”

 

학교에서 학문 공부를 배운 우리 세대는 <논어> 1학이편에 나오는 이 구절을 모르지 않는다.

 

이 책은 ()’익히다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한다. 한자의 본래 뜻이 어린 새가 날기를 연습한다는 것이다. 결국 공자가 가르친 것은 배우서 실천하라는 뜻이란다.

 

라떼 배운 내용과 달라 첫 장부터 마치 새로 만나는 듯 반가웠다. 덕분에 택배로 책을 받은 후부터 차근차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때로 지루하면 순서를 뛰어넘어 읽기도 했다. 어느 편에서 읽어도 삶의 지혜가 되는 말이라 찬찬히 곱씹으며 읽었다.

 

자왈: 부지명, 무이위군자야. 부지레, 무이립야, 부지언, 무이지인야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논어> 마지막 구절이다. 책은 천명을 알지 못하면 곧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입신할 수 없으며, 말을 판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라고 옮겼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아직은 천명을 모른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될 수 없다. 단지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 심심풀이 땅콩처럼 일생이 힘들고 지루하면 펼쳐 읽을 셈이다. 살아가면서 옆에서 잔소리가 아닌 조언해줄 책 한 권은 가졌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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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리다
정상천 지음 / 산지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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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해가 누구야? 미국에 이승만, 유럽에 서영해라니.’

 

우연히 본 산지니에서 펴낸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서평단 모집 글에서 호기심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런 까닭에 서평단에 지원했고 용케 뽑혀 책을 읽었다. 두툼하지 않은 책과 본문보다 더 재미있는 부록을 읽고 나자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로렌스와 지바고를 하나로 합친 모습이다.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17세에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이듬해에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막내로 활동하다가 192012월 프랑스로 단신 유학을 떠났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한 편 같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서영해는 대하 드라마 속 이야기를 정말 실제와 같이 살아왔다. 17살의 나이에 독립운동에 나서고 부모 곁을 떠나 홀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과정 자체만도 한 편의 드라마다. 선생이 쓴 <해외에서 지낸 십오성상(十五星霜)을 돌아보며>는 말이 통하지 않는 속에서 다시금 중등교육과정을 밟아가는 과정과 파리의 대학생 풍경을 그린 이야기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재미나고 흥미롭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의 유고 이후 재정 지원이 어려워 공부를 잠시 미루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과정에서도 독립운동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는 교민들이 거의 없어 동포 사회에서 재정적 후원은 받을 수 없었다. 더구나 임시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은 기록도 없다.

 

오히려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사무실을 얻어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한 선생은 프랑스 파리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알리고 한국을 소개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는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이라는 장편 소설과 거울, 불행의 원인이라는 이름의 한국 전래민담, 구두장 수의 딸과 같은 단편소설을 쓰게 한 힘이 되었다.

 

더구나 1932년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으로 도산 안창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유럽에서 석방 교섭에 나서기도 했다.

 

그를 비롯해 대부분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운동에 매진한 이들이 단란한 가족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듯 서영해도 예외는 아니다. 단란한 가족생활은 아마도 프랑스 파리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유학온 엘리자와 결혼한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으로 임신한 아내와 생이별을 당하고 구금되었다 풀려났다. 3년 넘게 나치 독일 치하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하며 생사를 기로를 넘나들 때마다 아내와 아들을 만날 희망을 품었지만 해방된 프랑스에서 들려온 아내의 소식은 암담했다. 엘리자는 연락이 끊기자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한 뒤였다.

 

해방된 조국에도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몇 해 뒤에 돌아왔다. 십수 년을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그에게 해방된 조국은 전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의 혁명동지들아! 우리가 나라를 잃고 왜놈의 총칼 밑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지가 벌써 30년이 되었다. ~ 혁명 경험이 적고 정치 훈련이 없던 만큼, 통일 덕으로 강적을 대할 줄 몰랐던 우리는 3.1운동 이후로 자상 어육의 당파싸움으로 원통한 실패를 얼마나 거듭하였더냐!~ 나라가 있고 난 뒤에야 주의와 당도 뜻이 있을 것이니 제발 당파싸움을 고치자!”

 

194081일 자 <신한민보>에 실린 고려통신사의 외치는 소리중에 나오는 말처럼 해방된 조국도 좌우로 갈라지고 이승만과 김구 등으로 나눠어졌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답게 남한 단독정부의 대통령인 이승만을 중심으로 해방 정국은 움직였다. 서영해는 이승만이 19335개월간 제네바에 머무를 때 서영해는 그와 숙식을 함께하며 활동을 지원했다. 심지어 이승만이 오스트리아에서 거주하는 프란체스카 여사의 연애편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나중에 결혼식 들러리를 서기까지 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의 독선과 아집을 앞에서 비판하기도 했던 과거의 미운털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더구나 이승만이 아닌 김구를 추종했기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국내에 들어와 보니 내가 파리 일본대사관에서 박해를 당하여 쫓겨 다닐 때 나를 밀고하고 조선 민족을 부인하던 그러한 종류의 인물들이 공공연하게 나와 다니는 것과 정신을 잃은 허깨비의 정치 객들이 많은 것에는 눈에서 쌍심지가 날 지경이었다.”

서영해의 탄식처럼 자신을 밀고했던 친일부역자가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는 모습과 허깨비와 같은 정치객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귀국한 뒤 결혼한 황순조와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갈 뜻을 폈지만 뜻하지 않게 중국에서 헤어졌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천명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시오. 그래서 오늘 같은 안타까움도 웃어넘길 만큼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을 테지만 서영해는 그 후의 행적이 묘연하다. 황순조는 1952년 부산제일여자고등학교에 복직하며 교편생활을 계속하며 부산지역 여성 교육자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 평생 서영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198563세로 생을 마감했다.

    

만약 한편의 가슴 뜨거운 영화 한 편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영화처럼 뜨겁고 가슴 찐하게 살다간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선생의 기고문과 조소앙과 주고받은 편지 등에서 독립운동사의 한 장면 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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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중국 : 중국의 확장 - 한 지역 한 글자만 알면 중국이 보인다 한 글자 중국
김용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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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라~”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한 글자 중국- 중국의 확장>을 소개한 포스트를 읽은 내 한 마디다. 중국을 어떻게 한 글자로 소개한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김구라처럼 어떻게 구라를 치는지 궁금했다. 책을 손에 넣고 단숨에 읽은 까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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