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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중국 : 중국의 확장 - 한 지역 한 글자만 알면 중국이 보인다 한 글자 중국
김용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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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라~”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한 글자 중국- 중국의 확장>을 소개한 포스트를 읽은 내 한 마디다. 중국을 어떻게 한 글자로 소개한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김구라처럼 어떻게 구라를 치는지 궁금했다. 책을 손에 넣고 단숨에 읽은 까닭이기도 했다.

 

구라치기에 나름 진지한 저자 김용한은 연세대 물리학을, KAST에서 Techno-MBA를 전공했고 ()하이닉스반도체와 국방기술품질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등 나름 인생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삶이 너무 재미없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이 재미없다니 배부른 투정이야 하고 단정하기에 저자는 직장 일 때문에도 자주 갔던 중국에 인연이 생기고 그 인연을 토대로 더 자주 가서 중국의 34개 행정구역 중 티베트를 제외하고 33개를 밟았단다.

 

<한 글자 중국>2권으로 이뤄져 있는데 1중국의 탄생은 황허 중류의 작은 마을이 어떻게 큰 나라로 성장해 중원이 되었는지 살펴보는 순서라고 서문에 적혀있다. 내가 읽은 2권인 중국의 확장편은 중국의 외연이 크게 확장되는 과정에 있었던 지역을 살펴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가는 우리 동포가 많이 사는 길림성을 비롯한 동북 3성과 내몽골, 신장 등이 등장한다.

 

중국 자동차 번호판에 있는 지역을 상징하는 한 글자를 따라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읽기 쉽다. 즐겨 있었던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어디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더욱더 솔깃했다. 천하무적 여포의 고향이 오늘날 네이멍구 바오터우시(포두시) 주위안구(구원구). 이런 식으로 친근하게 말을 건넨 저자 덕분에 책은 간단하게 중국 이야기를 역사와 문화까지 속속들이 훔쳐보는 기분이다.

 

객가인들은 불안했다. 전쟁의 공포는 아직도 생생한데, 생경한 땅에 와서 모든 것이 낯설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거친 오랑캐들이 득시글거렸다. 산은 임자가 없는 대신에 거칠고 험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약자에게는 단결만이 살길이었다.

그래서 객가인들은 함께 피란온 사람들끼리 뭉쳤다. 거대한 원형의 흙집인 토루(土樓)를 짓고 온 마을 주민들이 두세 채의 토루에서 함께 살았다. 산속의 요새를 방불케하는 토루는 마을 주민들의 공동 숙소이며 병영이었다. (42)’

 

1950년대 미군이 핵 군사시설로 착각할 정도로 큰 거대한 원형의 흙집인 토루(土樓)가 객가인들의 살기 위한 요새요 공동숙소고 병영이었다고 들려준다.

 

역시 먀오족이 은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다는 이유도 역시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오족이 왜 오지에 사는가? 살기 좋은 땅을 한족에게 빼앗기고 숨어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왜 은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다는가? 한족이 침략할 때 쉽게 피난하기 위해서다. 먀오족은 한족에게 밀려 계속 피난을 가야 했다. 피난 때마다 짐을 챙기기 힘들기에, 먀오족은 전 재산을 은장신구로 만들어 항상 걸치고 다녔다. 언제 피난 가더라도, 극단적으로 아무 짐도 못 챙기더라도 제 한 몸만 건사하면 중요 재산을 보전하는 셈이니(93)’

 

한때 우리가 자유중국이라 불렀던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스물세 번째 성인 타이완성도 아니고 쑨원의 적통을 이어받은 중화민국도 아니었다.

 

타이완의 약칭은 땅이름 대()’자다. 다양한 원주민이 살던 타이완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찾아왔다. 시라야족(서랍아족) 원주민은 희한하게 생긴 네덜란드인을 타이오안(외국인)’이라 불렀고, 네덜란드인은 이를 땅 이름이라 여겼다. 사람은 가도 이름은 남았다. 훗날 네덜란드인을 몰아낸 중국인은 이 이름을 음차하여 중국식 명칭 타이완(臺灣)’을 만들었다.(189)‘

 

대만이라는 이름 속에 깃든 역사를 통해 오늘날 중국과 대만 관계를 살피는 기회였다.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올 길라잡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나는 중국을 안다고 알은체를 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은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다. 남북한을 합쳐도 중국 하나의 광역구역보다 작은 데 달랑 2쪽 분량의 작은 지도에 중국을 어깃장으로 꾸겨 넣었다. 읽고 있는 내가 지금 어디쯤인지 살펴볼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중국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의 힘을 안겨준다. 우리가 놓쳤던 중국을 새롭게 보는 기회다. 벌써 읽지 못한 1<한 글자 중국-중국의 탄생>을 읽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갈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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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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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절정이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덥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땀은 얼굴에서 그대로 흙바닥에 떨어졌다. 바싹 마른 흙은 땀방울을 흔적조차 없이 한껏 빨아들인다. 이런 날 소설 <군함도>를 읽는다면 숨 막히는 역사 속에 아마도 천불이 나서 견디기 더욱 어렵다.

 

부처님을 믿거나, 예수님을 믿거나 알라신을 믿는 사람은 결코,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결코 이 책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알라신도 없는 멀지 않은 과거를 온전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니다. 한편으로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옥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군함도 1편과 2편의 표지는 같은 듯 다르다. 먼저 1편은 어둡지만 옅은 잿빛 하늘 사이로 군함도를 찾아 날아가는 검은 갈매기들이 보인다. 2편은 오히려 검은 군함도 우로 미군 B-29 폭격기들이 난 그냥 지나간다.

 

<군함도>를 펼치면 작가 소개와 함께 검은 바탕에서 일본 제국주의 해군이 만든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일본어: 武蔵 むさし)가 드러난다. 미쓰비시 나가사키(長崎) 조선소에서 당시 세계 최대의 함선으로 만들어진 무사시는 일본의 기대와 달리 제대로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레이테만 해전에서 미국 함재기의 집중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일본 제국 해군의 전함 무사시가 떠오르게 하는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항구에서 19km 떨어진 타카시마 해저탄광 섬에서 다시 5km 정도 가면 축구장 3배 크기의 하시마(瑞島) 섬이 실제 이름이다. 끔찍한 굶주림과 폭력에 끌려간 600여 명의 조선인 중 20%가 죽어서야 섬을 벗어났다. 이곳을 일본은 강제노역의 역사는 숨긴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받았다.

 

‘“저쪽이 조선이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진홍빛으로 물들었던 바다가 잿빛으로 어두워진다. 섬을 둘러싸며 휘돌아간 방파제 위에 작은 섬처럼 서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기 먼 어디쯤 조선이 있겠지.‘라고 소설 첫 도입부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광경과 달리 군함도는 한번 들어오면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섬이었다. 불과 60년 전에만해도.

 

‘“누구 없소, 누구 없냐구...”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입 속에 지걱지걱 탄가루가 씹히면서 목구멍이 타는 듯 아파왔다. 모든 것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아물아물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뽕나무가 푸르게 너울거리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1310)‘

명국이 낙반사고로 석탄더미에 파묻힌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침 6시에 시작해서 밤 8시간까지 15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사고는 끝이 없었다. 죽어나가는 사람도 태반이었으니 소설은 실화 그대로다.

 

‘“당신이나 나나...여기까지 끌려온 몸. 쉴 사람은 있는데 쉴 곳이 없네.”

거칠게 없는 것 같던 여자였다. 저 사는 모습대로 살다가 그저 그뿐. 그렇게 사는 여자 같았었다. 그랬는데, 귓가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하느작거리는 나비처럼 오가고 있었다. 이 여자도 저 살고 싶던 모습은 다 잃어버린 채 그렇게 하염없이 살고 있었던가.(1344, 우석과 금화의 만남)‘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 우리가 기억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할머니 뿐 아니라 이용가치 있는 조선인은 모두가 강제로, 속아서 끌려왔다.

 

‘“내선일체. 총독부에서 내세워온 것이 내선일체 아닙니까. 조선인에게 의무가 있다면 일본에는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국민을 징용했으면 당연히 보호해야 하고, 그래서 징용기간이 끝나면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와 처자식 앞으로 보내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닙니까.”(2126. 남편 지상을 찾아온 서형이 일본인 노무계장 이시까와에게 하는 말)’

 

일본이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소설은 일본의 책임을 묻는다.

 

‘“우석이 너 수평사(水平社)라고 들어봤어? 일본에도 조선의 백정처럼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어. 그걸 부라꾸민이라고 하는데 그 부라꾸민 차별철폐운동을 벌인 단체가 수평사야. 그 단체 사람들도 조선 광부를 돕겠다고 나섰지.”(2339)’

 

조선 광부들의 쟁의 초기에는 일본노동연맹과 부라꾸민 해방운동을 벌여온 인권단체 수평사의 도움도 있었다. 단순히 민족적 감정으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재 와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우리는 차별과 편견으로 멸시하지 않는지 돌아보게 한다.

 

땅 밑의 감자마저도 익게 만든 처참한 원자폭탄의 피해 속에서도 빗물에 젖은 땅을 뚫고 부서진 집더미 속을 헤치며 풀이 올라오고 있었다. 옆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는 명아주였다. ~젖은 땅 위에는 보랏빛이 가득했다. 목이 메여, 지상은 무리 지어 핀 조그만 제비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이 솟아오르면서 잎과 잎이 비벼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2469)’는 구절은 소설 읽는 내내의 갑갑하고 어두웠던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사진 제공 : 창비 블로그(http://blog.changbi.com/)


젊은 독자들이 이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주신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하신다면, 이 작품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라고 한수산은 작가의 말에서 대신한다.

 

사진 제공 : 창비 블로그(http://blog.changbi.com/)


거친 바람을 마주하며 쌓아온 군함도의 역사는 핍박받았던 조선인의 아픈 현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가슴 속을 항해한다. <군함도>를 통해 멀지 않은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돌아본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미래로 이어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준다.

 

어제를 기억한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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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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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는 53쪽에서 멈췄다. 찬 바람 부는 겨울에서 시작해 초록빛이 싹트는 봄을 지나 무더위가 절정을 이룰 때까지 책갈피는 요지부동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의 책상에 꽂힌 책은 내 직장에도 있었다. 왜 이 책을 샀는지 궁금했다. 개를 무척이나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는 개 나오는 소설이라고 샀다고 했다. 아이가 고른 책은 정유정이 쓴 소설 <28>이다.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개 아닌 사람 몇 명도 주인공이다. “할퀼 곳을 찾으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고양이 같은 눈이었다. 이 여자는 결혼했을까. 개 나이로 세 살은 거뜬히 넘겼겠는데.”라는 수의사 서재형이 신문기자 김윤주를 만난 첫 느낌을 묘사한 대목처럼 소설은 팀버 울프의 혈통을 이어받은 늑대개 링고를 비롯해 박동해, 노수진 등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독특함이 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것처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낯설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생각으로 삶을 살아온 다양한 사람과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낯선 시선이 어려운 모양이다. 아들 책꽂이에서 마치 책 속에 숨겨둔 비상금을 찾으려는 듯 책을 뽑아 휘리릭 넘겼다. 비상금 따위는 없었다. 넘기는 책에서 개백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잊었다.

 

무더위가 절정으로 내달리는 7월 어느 날, 문득 파란색의 글자가 뱀처럼 휘감아 도는 음습한 분위기가 나는 <28>의 표지가 떠올랐다. 무더위를 식혀줄 책일까 싶은 마음에 쉬는 날, 선풍기 바람과 함께 읽었다. 아이가 읽은 53쪽까지 한달음에 읽었다. 또한, 후회도 그만큼 빨리 몰려왔다. 책은 내 기대와 달리 전혀 더위를 잊게 해주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직장과 학교로 떠난 뒤에 오롯이 남은 나만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28>은 서울과 인접한 화양이라는 도시에 치사율 100%의 인수공통전염병이 발병해 도시 전체가 군대에 의해 봉쇄된 28일의 기록이다. 나 역시 <28>에 하루 동안 봉쇄된 채 어서 빨리 첫날 밤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새신랑처럼 끝을 향해 읽고 읽었다. 집 거실 의자에 앉았다가 바닥에 엎드렸다가 그마저도 더워서 시원한 커피숍에서도 냉커피와 함께 읽었다. 5시간여 만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를 바란 495쪽 작가의 말을 끝으로 나도 <28>에서 풀려났다.

<28>은 쉽게 읽히지만, 역겹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들은 잔인하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서재형과 김윤주의 사랑은 생매장당한 개들을 살리기 위해 흙을 파는 링고와 스타의 사랑과 닮았다. 사람과 개라는 거죽을 떠나 두 커플은 지고지순하다. 문득 작가 정유정은 생매장당한 개나 국가에 봉쇄당한 화양 시민이나 똑같은 처지였듯 사람도, 개도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님 생명을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열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는 이미 오래전에 학습한 바 있었다.”는 구절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물었을까.

 

살처분이라는 허울 속에 구덩이 속에 던져진 개들은 흙 속에서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꿈틀댔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한시도 멈추지 않고 꿈틀거렸다. 꿈틀거림이 멈추는 순간, 그 생명도 끝난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기 때문이다.

작가도 돼지 생매장 동영상을 접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AI조류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실제 감염 확인된 수는 얼마 되지 않는데도 수천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 당했다. ‘살처분’,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대로 처리한다는 생매장이다.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멀쩡한 오리와 닭, 돼지, 소들을 그대로 불도저로 밀고가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쓸어 넣은 뒤 울부짖는 동물들 위로 흙을 덮어 죽여버린다. 정부 당국은 전염을 막기 위해 대부분 예방 차원에서 한다고 했다.

 

나 역시 뉴스 등을 접하면서도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를 위해 소()가 희생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정작 나는 다수를 위해 희생할 마음은 없었다. 나는 결코 그런 처지가 되지 않으리라는 자만이 가득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살고 싶지 않습니까?” <28>에서 그려낸 화양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는 1980년 광주처럼 봉쇄당한 광장에서 광주 시민들이 외쳤던 처절한 절규로 들렸다.

 

봉쇄당한 화양이라는 도시 이름에서 처음에는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먼저 떠올랐다. 같은 날 한 아파트로 이사 온 두 남녀가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외도하는 것을 알면서 외로움에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배우자가 있다는 도덕관념에 번민하다 헤어진다는 영화처럼 일탈이 끝나고 아무런 일 없었다는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나도 첨엔 당신처럼 생각했죠.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양조위의 대사처럼 틀렸다. 화양 시민 29만의 문제가 아니라 5천만 생명이 걸린 전쟁이라는 당위성에 봉쇄는 당위성을 인정받았다. 봉쇄당한 화양 시민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 구덩이에 던져진 개들과 처지가 다를 게 없었다.

생매장당한 개들의 꿈틀거림 환상 때문에 1주일에 한 번은 아무렇지도 않게 기름에 튀긴 닭고기를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켜는 내 즐거움은 한동안 사라졌다. 생매장당한 개처럼 AI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당한 수많은 닭의 비릿한 냄새가 한동안 내 속을 울렁거렸다.

 

바람이 지나간 곳에 다시 바람이 분다. 바람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나도 김윤주처럼 서재형의 묘를 찾아 돋을새김처럼 새겨진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를 어루만지고 싶다. 생태계 최고 포식자로서 그저 동물을, 우리와 다른 먹을거리를 죽였을 뿐이라 생각한 내 잘못을 빌고 싶었다.

내 아이들 어쨌어?”라고 묻던 썰매 개 마야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에 실려 카랑카랑 들려온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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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의 작게 걷기 - 유명한 곳이 아니라도 좋아, 먼 곳이 아니라도 좋아
이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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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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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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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운동가 21명의 글이 인포그래픽 20개로 이루어진 <탈바꿈>을 읽고

 

책은 시종일관 핵발전소라고 적었다. 내가 배우고 알고 있던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라고 했다. ‘핵발전소는 원자력이 아니라 핵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이란다. 손바닥만 한 탈로 얼굴을 가리고 하늘만 한 자유를 얻는 게 이다. ‘원자력이라는 을 쓰고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효율성과 안정성을 자유롭게 얻었다. 그러나 <탈바꿈>을 통해 원자력발전소에 씌워진 을 벗기자 핵발전소라는 민낯이 드러났다.

 

<탈바꿈>은 탈핵 운동가 21명의 글이 인포그래픽 20개와 함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삶을 위협하는 핵발전을 통해 발전소의 위험성을 진단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와 현재 상황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안전 문제, 핵폐기물 처리와 경주 핵폐기장을 둘러싼 쟁점 등을 전달한다. 2방사능 먹거리와 안전에서는 방사능과 건강에 대해 다룬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학교, 어린이집, 봉사단체의 급식 실태, 방사능 먹거리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방법,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특히 내부피폭의 위험성, 논란이 되고 있는 방사능 괴담에 대해 말하고 일본산 수입 식품과 수산물의 방사능 검사 현황을 중심으로 먹거리 안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3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에서는 대안에너지와 탈핵 운동의 역사, 구체적 실천 방법을 말한다. 핵발전이 정말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지 검증하고, 독일은 어떻게 탈핵을 선언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돌아보며, 우리는 탈핵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소개한다.

 

<탈바꿈>을 읽으면서 사용후핵연료는 적어도 10만 년 이상 핵폐기물로 보관돼야 한다는 사실에 내 두 눈을 의심했다. 2014년 한 해를 통틀어 가장 슬픈 비극은 아마도 수백 명의 아까운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는 상상이라도 했던가? 누가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할 줄 알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원전 르네상스니 하는 말로 원자력발전이 안전하고 저렴한 에너지라고 선전하고 있다.

 

‘10만 년 동안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는 핵폐기장 기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기술로는 약 50년 정도 사용 가능한 방폐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을 건설할 수 있다.’라는 글자들이 가슴을 후벼 파는 듯 쓰라렸다. 10만 년이라는 시간은 구석기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의 시간이다. 그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우리는 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이 설계수명이 다해 폐쇄될 때까지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에 화났다.

 

핵발전 중대 사고 확률은 1로년(원자로 1기가 년 동안 가동하는 기간을 의미)당 약 100만분의 1입니다. 사실상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상정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 40여 년 동안 스리마일 섬,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대형 핵발전소 사고만 세 차례 발생했습니다. 고리원전 단지에서 후쿠시마 규모의 사고가 발생한다면,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320만 명이 직접 피해를 보고 전 국토의 11.6퍼센트가 오염될 것입니다. 아직도 수습이 불투명한 후쿠시마 사고의 처리 비용은 이미 100조 원을 넘었습니다.’

 

절대 안전하지도 않는 핵발전에 나와 내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 잡을 수 없다. 여러 핵발전소가 한 부지에 우리는 몰려 있다. 부지 네 곳에 가동 중인 핵발전소 23기가 있다. ‘2012년 일본 원자력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를 지하에 영구 격리 처분하는 비용을 최소 185조 원(핵발전소 1기당 평균 31,400억 원)으로 계산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현재 가동 중인 23기를 기준으로 약 72조 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해체해본 경험이 없습니다.’는 말은 핵발전이 결코 안전하지도 싸지도 않다는 증거다.

 

결국 핵발전은 싸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신용평가 금융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발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 11대 핵 산업 관련 기업 중 7개사의 신용등급이 강등했다고 합니다. 핵발전의 숨겨진 비용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전기가 부족하면 어찌하느냐는 말에 나는 핵발전을 필요악이라고 여겼다. 당장 내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함께하는 휴대전화의 충전과 텔레비전, 냉장고 등의 전기를 어디에서 만들어야 하느냐고 묻는 말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기 중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양이 약 3분의 1인 처지에서 참 난감한 답이었다. 그런데 가동 중이던 8기의 핵발전을 하지 않는 독일은 전력난이 없었다. 친환경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면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로 핵발전을 부추겨 온 현실에서 독일은 사례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독일의 전기료는 갈수록 대폭 인상되는 추세란다. 이웃 국가인 프랑스에 비해 두 배, 미국의 거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 ‘2002~2012년 사이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83퍼센트가 증가했으며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고치라는 말에 결국 핵발전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전기요금이 높은 데는 재생에너지에 투자한 사람들을 위한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는 에너지 대기업들은 재생에너지만이 원인인 듯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기존의 발전소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생태 전기가 비씨다고 합니다. 환경오염이나 독일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충당되는 보조금을 고려하면 화석연료 및 핵에너지 발전이 훨씬 비싸다는 점입니다. 2012년 독일 국민들이 전기요금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지원한 금액은 화력 및 핵발전소에 세금을 통해 지원한 금액의 3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독일 시민들은 그럼에도 핵발전과 기존 화석 연료를 이용한 에너지 대신 재생에너지를 통한 이점이 더 많음을 알고 있다. 기존의 에너지 대기업 대신 지역의 소규모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 이점으로 탈핵, 근교에서 생산된 에너지, 고장의 일자리 창출 등을 꼽습니다. 즉 화석연료나 우라늄을 사용하지 않는 깨끗한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고, 근교에서 에너지가 생산되므로 초고압 송전망이 추가로 확보되지 않아도 되며, 새로운 에너지 공급망이 형성됨으로써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나는 밀양 송전탑이 떠올랐다.

 

우리가 돈을 달라고 하나, 쌀을 달라나, 밥을 달라나, 우리 재미있게 오순도순 엎드려 사는데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 이대로만” (<섬과 섬을 잇다> 중에서)

마치 전력 자급률 1%인 도시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자급률 190%인 영남권이 발전소와 송전탑을 강요하는 모순은 없어져 한다. 같은 책에서 전기가 그리 좋으면 송전탑을 서울로 다 가지고 가라.”는 외침은 여름철 예사로 에어컨을 돌리며 원활한 전기 공급에만 관심을 둔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탈바꿈>은 그런 부끄러운 나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탈핵을 위한 실천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변기 수조에 물을 채운 페트병을 넣으면 25퍼센트 가량의 절수 효과가 있고, 양치컵을 사용하거나 씻을 때 물을 받아서 쓰는 일도 일상에서 실천할 방법입니다. 물을 절약하면 물 생산과 관리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입니다. 결국, 물도 전기를 이용해 펌프를 돌려 각 가정으로 보내지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에 무릎을 딱 쳤다. “옳거니

 

첫발을 떼는 것이 가장 힘들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건 어렵지 않다. 넘어지면 다시 운동화 끈을 단디(단단히)’ 묶는 것처럼 할 수 있다는 굳은 마음이 있다면 탈핵은 희망이다.

 

껍질을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계란후라이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핵발전에 관한 그릇된 신화의 껍질을 깨지 못하면 계란후라이가 아니라 우리는 끝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주변에 알려 혼자가 아니라 우리 함께해야 라는 말에 밑줄 긋고 실천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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