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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우리는 허지웅 작가를 까칠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가 한 발언들도 직설적인 것이 많았으며, 날이선 모습이 익숙했을 것이다. 그의 저서나 쓴 글들에서도 그 모습이 잘 드러났고, 예능에서도 자신의 방 청소를 열심히 하고,깔끔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우리가 예전에 기억하던 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악성림프종에 걸리고, 다시 돌아온 뒤에 보여준 모습은 전혀 달랐다. 조금은 여유로워지고, 무뎌진 그런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전의 그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정말 다른사람인 것만 같다고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번에 그의 에세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궁금했고, 마침 서평단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해 운이 좋게도 당첨이 되었다. 평소 그의 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기에 이번 책엔 어떤내용이 담겼을지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중
첫 내용부터 충격적이었다. 물건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은 손, 헛구역질, 알약 스물 여덟알. 항암치료를 하면서 느꼈을 고통과 고뇌가 무척 잘 느껴져, 절로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이런 고통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피로, 그리고 불안과 공포로 병을 치료했던 시간 동안 그가 느꼈을 여러 아픔들이 글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아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파왔다.
그런 아픔을 보고 나서일까. 그 뒤의 글들은 뭔가 고요하고, 정적인 울림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추상적인 얘기를, 때로는 본인이 겪었던 얘기를 보여주면서, 살아있음의 가치와 삶의 자세, 그리고 여러 가치들에 대한 허지웅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은 무딘 문체로, 덤덤하게 적어낸 그의 글은 조용히 가슴 속에 감동을 주고 있었다.
과거는 변수일 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 같은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삶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불행을 다스린다면
그리고 그걸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서평단이어서가 아니라 이 책은 정말 올해 읽은 책 중 손꼽을 정도의 깊은 울림을 선사해주는 것 같다. 원래도 글을 잘 쓰시는 분이셨지만, 이번 에세이는 그의 철학과 경험을 묵묵하게 담아낸 좋은 진국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책속의 글에선 예전 날카로운 모습은 조금 덜했지만, 뭉툭해진 그의 새로운 모습은 인간미가 넘쳐 글 속에 정이 느껴지고, 더욱 위로가 되어 친숙하게 다가오는 듯 했다. 그의 유려한 글솜씨는 이번에도 빛을 발했고, 더 인간적이어서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런 감동을 다른 사람들도 느껴보았으면 한다.